배려가 곧 행복이다 (13) – 변명규
지상낙원
모 소설가의 경험담, 네팔 포카라를 여행하던 중, 자전거를 타고 무작정 산골로 향했다. 두세 시간 달려 깊숙한 골짝에 이르렀을 때 느닷없이 소나기가 쏟아졌다. 비를 피하기 위해 눈에 띄는 집 처마 밑으로 뛰어들었다. 그때였다. 등 뒤에서 문이 열리더니 까맣게 탄 할머니 얼굴이 나타났다. 나는 꾸벅 머리 숙여 인사하고 싱긋 웃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싱글벙글하며 대뜸 안으로 들어오라는 손짓과 눈짓을 하는 게 아닌가. 그 집은 마을 구멍가게였다. 촛불 하나가 침침한 실내를 간신히 밝혔다. 잠시 뒤 나는 마을 사람 스무 명에게 둘러싸였다. 어디론가 나갔던 할머니가 주민을 몽땅 데려온 것이었다. 그들 손엔 악기와 술병이 들렸으며 오직 나를 위해 흐벅진 잔치를 벌이기로 이미 작당한 차였다. 마을 이장쯤 되는 사나이가 드문드문 영어를 섞어 가며 들려준 이야기의 요지. “마을에 들어온 사람은 누구나 우리의 손님이다. 더군다나 너는 우리 마을에 나타난 최초의 외국인 인기라. 진귀한 손님이다. 진귀한 손님이란 말이여. 너를 환영하는 바이니 모쪼록 즐겨주기 바란다.”
잔치가 이어졌다. 네팔 전통주 뚱바와 창이 수시로 내 잔에 가득 찼다. 웃고 떠들며 권커니 잣거니 음악에 맞춰 덩실덩실 춤추며 모두 흥겹게 어우러졌다. 술과 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인정과 신명에 흠뻑 취한 하룻밤이었다. 이장 집에서 잠자고 아침밥까지 대접받고, 이젠 작별할 시간 나는 사례로 약간의 돈을 내놓았으나 끝내 거절,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빠져나오는 나를 여럿이 손 흔들어 배웅해 주었다.
나는 살면서 이렇다 할 착한 일을 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그날 극진한 대접을 받았으니, 실은 민망한 일이었다. 그들이 환대한 유일한 이유는 내가 손님이라는 것이다. 낯선 이방인을 대뜸 손님으로 여겨 환대하는 그들의 대범하고도 유쾌한 풍속이란 대체 어떤 자비로운 신이 알려준 비법이란 말인가. 사람에 대한 무한한 존중과 긍정을 삶의 근본으로 삼아 살아가는 이들의 마을, 이게 지상낙원이 아니고 무엇이랴.
(좋은생각 2016년 8월호에서 옮김)
문명의 혜택이 발을 붙이지 못한 곳. 때 묻지 않는 산골사람들, 외지의 낯선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 오지, 그들은 외지인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외부와 접촉이 거의 없는 지역민들은 대부분 낯선 사람이 나타나면 경계의 대상이 된다. 한데 이 마을의 주민들은 모두가 외지인에게 특별한 환영의 행사를 가졌던 것이다. 조상 대대로 이어진 전통일 것이다. 배려하는 전통 그것이 이들의 정신적 삶의 지주가 아닐까 한다. 그래서 이들은 물질적인 삶은 고단하지만 가슴 속은 언제나 행복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리라.
약자를 떠미는 사람과는
19세기 영국의 작가 찰스 램은 평생 함께 살고 싶을 정도로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 그래서 찰스 램은 결심했다. 그녀에게 프로포즈를 하기로……. 찰스 램은 청혼을 하기 위해 그녀의 집을 찾아갔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만나주지 않았다. 상심한 찰스 램은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편지로 고백했다. 곧 그녀에게서 답장이 왔다. 답장을 받은 찰스 램은 그녀의 마음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당신이 온다기에 창문을 보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우리 집으로 달려오는 당신이 보였습니다. 그러다 당신은 마주 오던 걸인 여자와 부딪혔는데,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하지 않더군요. 그 모습을 보고 생각했습니다. 약하고 초라한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 줄 모르는 사람. 과연 내가 평생을 믿을 수 있을까요?” 이후 찰스 램은 사랑하는 이를 놓친 것을 후회하며 빈부와 지위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친절하려고 노력했다고…….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주었다면 당연히 그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 잘못이 크든 작든 상관없다. 또한 상대가 어린이든 어른이든 고관대작이든 남루한 걸인이든 상관없이 적용되어야 한다. 그것이 상대를 위한 작은 배려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도덕의 기본인 것이다. 그러한 자세가 우리 사회를 부드럽게 돌아가게 하는 윤활유가 아닐까 한다.
투 플러스 원
서울 성수동에서 편의점을 하는 친구가 있다. 그래서 ‘김성수’라고 부른다. 경양식집 접시닦이부터 시작해 주점 웨이터, 옷 장사, 액세서리 좌판, 피시방 등 온갖 고생 끝에 작은 상가를 하나 사들였다. 지금의 편의점을 운영하며 홀로 열두 시간 일하는 악바리 같은 녀석이다. 일을 마치고 종종 찾아가 맥주 한 잔씩 기울이면 친구는 꼭 근처 편의점으로 2차를 가자고 한다. 그리고는 투 플러스 원 제품을 고른다. 하나는 내가 먹고, 하나는 김성수가 먹고, 또 하나는 계산대에 올려놓는다. 아르바이트생이 ‘이게 뭐지?’하는 표정으로 보면 “피곤할 텐데 먹고 힘내요.” 하면서 씩 웃는다.
엊그제도 2차는 편의점이었다. 캑 맥주 두 개, 과자 한 봉지 그리고 투 플러스 원으로 판매하는 아이스크림 세 개를 골랐다. 역시 하나는 아르바이트생에게 건네줬다. 명찰을 보니 중국인이었다. 그는 서툰 한국말로 “무슨 문제가 있나요?”하고 물었다. “아니에요, 드시라고요.” 아르바이트생 얼굴에 금세 미소가 번졌다.
내가 어려움을 겪은 사람이 상대를 잘 이해한다. 내 주위에는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그들에게는 작은 배려가 큰 힘이 될 수 있다. 내 앞만 보고 가지 말고 주위에 관심을 가지고 작은 것이라도 베풀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