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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가 역사다(14)| – 오분저지대 – 권길홍 수필가

코로나로 인해 여행을 거의 끊다시피 지내다가 모처럼 떠난 거니 멀리 가자고, 놀러가는 장소를 강원도로 택했다. 함양이니 남해처럼 가까운 장소를 두고 너무 멀리 떨어져 교통도 불편할 거라고 걱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친구들과 함께 가는 여행이니 재미는 있으리라 기대하며 여행의 설렘을 안고 양양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다.
평화는 어떻게 유지가 되고 어떤 사람에게 찾아올까? 또 누가 유지시켜줄까?
우리는 꿈에도 평화로운 세상을 그리고 전쟁이나 혼란이 없도록 간절히 바란다. 그렇지만 과거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우리나라 사람 모두가 평화를 누리도록 애쓰고 준비한 지도자가 얼마나 되었나?
하나의 예로 조선은 나라 전체가 쑥대밭이 되는 1592년부터 1598년에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고도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여 30년도 지나지 않아 1627년의 정묘호란과 1636년의 병자호란이라는 화를 당한다. 이때 중국으로 끌려간 50만의 여자들이 순결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혼을 당하여 쫓겨나고 화냥년이 되는 그 처참한 나라가 바로 조선이었다. 제 백성을 못 지킨 조선은 누가 왕이었고 대신이었나? 평소에 백성들 위에 군림하고 잘난 체 했던 사대부인 양반들은 다 어디 있었나? 백성을 화냥년으로 만든 그 무책임과 무능은 누구에게 물어야 하나?
통일전망대로 달린다. 잘 다듬어지고 잘 닦인 길에 아름다운 주변의 꽃들! 여행으로 들뜬 내 눈에 멀리 있는 산의 울창한 숲에 가로수마저 아름답게 다가온다.
그런 내게 거추장스럽게 다가오는 시설물! 도로위에 설치된 5분저지대라는 그 멋대가리 없는 시설물을 보는 내 마음은 착잡해졌다. 물론 요즘의 물질적 풍요와 경제적인 여유가 5분저지대라는 흉물에도 그림을 그려놓고 페인트칠을 해놓아 50년 전의 우리나라가 못살 때 보여준 시멘트 더미의 투박한 모습과는 조금 다르게 색깔로 치장된(?) 형태로 만들어 놓았지만 도로를 지나가는 차를 바로 위에서 깔아뭉갤 듯 놓인 이상한 모습은 여전했다. 훤하게 뚫린 도로에 저 5분저지대라는 콩크리트 더미가 하나 둘이 아니고 계속 연달아 나오니 아! 아직도 내 나라는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다를 바 없구나! 내 마음이 아리할 정도로 복잡한 상념에 사로잡힌다. 주변의 경치와 잘 어울리는 예술품을 갖다놓아도 시원찮을 텐데 저 이상한 시설물! 우리나라는 어떤 나라라 저런 식으로 어긋나고 비뚜러지게 틀어져서 세워지고 만들어지는 나라냐고!
오랫만에 보아서 그런지 더 이상하고 주변의 풍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걸 보는 내 마음은 서글퍼졌다. 왜 우린 저런 걸 만들어 도로 위에 설치를 해야 하는 나라냐고! 이런 식으로 심사가 조금은 뒤틀려 있는데 마음 한쪽에선 저런 괴상한 물건을 왜 만들었지? 또 저걸 가장 먼저 고안한 사람이 누군가 모르지만 저런 걸 설치해서라도 이 나라를 조금이라도 안전하도록 만들려 했던 사람에 대해 지나가듯 슬쩍 생각해본다. 그 사람도 바보가 아니라 이 나라의 안보를 걱정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어설픈 논리도 자꾸 머리에 떠올랐다.
이런저런 상념 속에 마침내 도달한 통일전망대와 6.25전쟁체험관에서 본 금강산 전망대나 구월산의 전경과 저 위로 더 올라가면 북한지역이라는 안내문에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사는 게 복잡하고 늙어가는 나이라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 때문일까? 이 모든 구경거리는 의례적인 관광코스의 하나일 뿐이었다. 심지어는 6.25 전쟁을 체험하기 위한 전시관에서 들려오는 단말마적인 비명소리! 아마도 전쟁을 실감나게 하여 더 마음에 와 닿게 하기 위해 들려주기 위한 녹음된 목소리지만 그 소리조차도 나와는 관계가 없는 멀리 있는 소리에 불과했다.
여기 통일전망대는 오래 전에도 친구들과 함께 오기도 했고 내가 소속한 월남참전전우회에서 전적지 순례의 코스로서 훑어본 장소이다.
그 때도 그냥 하나의 구경코스로 스쳐지나가듯 보았을 뿐이었다. 그런 자리에서는 아무 생각도 없다가 세월이 갔는가?
그 별로 볼 것도 없는 5분저지대. 그 별것 아닌 시설에다, 아까까지는 이번 관광의 분위기마저 거슬릴 것처럼 보이는 그 5분저지대가 마음을 자꾸만 건드린다. 왜 저런 걸 만들었고 왜 보기도 싫은 저런 걸 설치했느냐고 나 자신에게 계속 물어본다. 올라갈 때는 마음까지 조금 불편하게 만들었고 눈앞에 펼쳐지는 초록의 산들에 울창한 숲을 가려서 시야까지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는데, 내려오면서 다시 보게 되는 5분저지대라는 그 장애물 밑을 통과하면서 조금씩 다른 느낌이 슬슬 밀고 올라온다. 왜 우리나라는 저런 보기 싫은 걸 설치하고 만들어 설치해야 하는 나라인지, 무엇이 우리의 국방담당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끊임없이 저런 걸 고안하고, 저런 이상한 시설물을 만들면서 적의 침입에 대비하고 이겨내려 했는지, 또 저런 걸 만들어 단 5분이라도 더 버티려 했는지, 그 마음에 약간은 숙연해진다. 정말 거대하고 많은 예산을 들여 건립한 통일전망대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무심하게 흘러가는 마음으로 보았는데, 그 하찮고 투박한 아무 설명도 없는 그 5분저지대 앞에서는 갑자기 두 손을 모아 기도하고 싶을 정도로 엄숙해진다. 6.25전쟁체험관을 보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젠 만사가 다 잊고 귀찮은 나이라 과거에 무거운 군장에 행군하며 발에 물집이 생겨 밤에 잠을 자면서도 괴로워 한 건 다 잊고 살다가 어느 듯 .25전쟁체험관을 보면서 오십년 전의 구보니 훈련이니 하며 지긋지긋하게 나를 괴롭히며 힘들게 했던 그 시절이 생각나서일까? 왜 우린 그리도 악착같이 훈련을 했고 단 5분이라도 더 버텨야 했을까?
5분저지대라는 얘기와 어울리지 않는 얼토당토 않는 생각이지만 혹시 오늘의 이 풍요로운 사회가 어떻게 왔는지 저 이상한 5분저지대라는 콘크리트 더미를 통해 보여주는 건 아닐까? 지난 시절의 우리 사회에 주어진 형벌같은 가난을 단 5분이라도 더 버티면서 견뎌내야 하고 이 아름다운 산하를 지켜내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굳은 결심으로 작정한 어느 누구의 거룩한 뜻은 아니었을까? 우리가 지금 누리는 안정되고 여유로운 생활은 과거에 우리 모두가 꿈꿔왔던 이 사회를 향한 귀한 소망이 녹아있는 거라고! 우리가 살고 있고, 함께 사는 사람들과 그 들의 후손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우리의 그 가난했던 환경을 이겨내면서 좋은 사회로 만들려는 염원이 담긴 시설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니, 저 희한한 5분저지대가 더 귀하고 소중하게 보인다.
저런 괴상한? 시설물을 처음 만들려는 생각을 했을 때 왜 그는 아름답고 주변과 어울리는 멋진 예술작품을 설치하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 분에게 맡겨진 임무인 이 나라를 쳐들어오려는 적들을 향해 적은 수의 군인들과 한정된 경비를 들여 최선의 방책이라 믿고 저 흉측한? 물건을 설치하지 않았을까? 그것도 버젓이 도로 위에다 갖다 놓아야 된다고 생각한 그 마음을 오히려 우린 감사하고 존경을 보내야 되는 건 아닐까?
그래서 6.25전쟁 이후 2021년 오늘까지 70년 동안 거의 외국으로부터의 침입이나 혼란 없이 평화롭게 잘 지내고 있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