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출신 월북시인 박산운의 고향은 적중면

합천 출신의 월북시인 박산운에 관련된 생애와 활동 등을 실증·정리한 논문이 발표됐다.
박태일 교수(경남대)가 최근 발표한 논문<박산운 문학의 실증적 바탕>(근대서지, 2021.6)에는, 박산운 시인 고향이 적중면 상부리 출신임을 밝히며, 가족에 대한 행방, 출간된 작품에 대한 실증 등 그동안 불확실했던 내용들을 실증해서 정리했다.
박산운(朴山雲, 1921.9.6.∼1997.7.21.) 시인은 합천군 출신으로 1948년 7월에 월북하여 북한 시문학의 주류로 평가 받으며 성공적인 문학 생애를 살다 간 인물로 평가된다. 박태일 교수는, 이번 논문에 대해 “앞으로 본격적인 박산운論의 바탕을 마련하기 위해 이루어”졌으며, “그의 생애에 밝혀지지 않았던 시기와 발표작품에 대한 실증 등을 마무리한 성과”를 담았다고 했다.
논문에 나타난 박산운 시인의 생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본명은 박인배朴仁培이다. 대가족을 이끌고 있었던 할아버지 아래서 아버지 박명규의 2남4녀 가운데 맏이로 태어났다. 초계공립보통학교를 1934년에 졸업한 뒤 이어 부산제2상업학교(개성고)로 진학해 고향을 떠났다. 부산제2상업학교에서 1937년 4학년 1학기까지 마치고 중퇴한 박산운은 17살인 1937년, 1938년 무렵 일본 동경으로 유학을 떠났다. 일본에서 고된 노동을 하면서 밤에는 중학교 과정에 편입하여 자격을 갖춘 뒤 중앙대학교 예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이후 중앙대학을 중퇴했다.(정확한 진학 해와 중퇴 시점은 알 수 없지만, 1943년부터 시작한 이른바 학병 징집을 피하기 위한 일로 보임) 박산운은 고국으로 돌아와 함경북도 리원에서 광산업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광복을 맞았다. 광복 뒤 시인은 서울에서 언론출판계에 몸을 담고 문학사회 활동을 열성적으로 벌였다. 그러다 1948년 7월 월북하였다. 그리고 월북 50년이 흐른 1997년 사망했다.
이외에도 박태일 교수는, 논문을 통해 그동안 박산운이 낸 시집은 10권(그중 3권은 공저)으로 알려졌으나, 고증 검증 후 시집 8권만이 그의 저서라고 정리했다.
박 교수는 2001년 무렵부터 막연하게 박산운이 합천 출신이란 것을 알고, 어렴풋이 그에 대해 연구하고자 하는 생각을 품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북한 지역문학 관련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2020년 합천 이주홍기념사업회로부터 경남 월북 작가를 다루는 기획 의뢰를 받고 박산운을 본격적으로 찾아나서기 시작했다. 그외 부산국가기록원이나 부산상고 졸업생 명부 등을 오랜 자료 조사도 동반이 되었다. 결국 2020년 11월21일 토요일. 시인이 살던 적중면 상부리 마을을 찾아 옛 생가를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근처에 사는 시인의 사촌동생도 만나고, 박산운 시인의 96세 동생도 찾게 되었다.
박태일 교수는 박산운 시인에 대해 “합천읍의 이주홍과 적중 손풍산, 그리고 가야 해인사 허민을 잇는 현실주의 시의 줄기를 이어 받은 광복기 신진 세대”로 평가한다. 특히 그는 월북한 뒤에도 ‘고향’은 그의 창작에 가장 중요한 동력이었다고 보았다. ‘고향’에 대한 마음을 갖고 문학 활동을 펼쳐나간 ‘고향 시인’이라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이번 논문을 통해 박산운 시인에 대한 기초적인 실증 작업이 완료되었다. 앞으로 박산운 시인의 문학에 대한 더 폭넓은 조사와 발굴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박산운 시인을 배출한 고향에서 그의 생애와 문학에 대한 관심과 조망이 필요해 보인다. 이어 <박산운 시 전집> 발행 등을 기획하는 것도 그를 배출했던 고향에서 할 수 있는 꿈이 아닌가 싶다. /박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