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역사다(22)| 공부만 잘하는 사람 – 권길홍 수필가
지금 대장동 사건을 봐라. 그게 개판이 아니고 뭔가. 그 무대의 주인공들이 다 공부한 인간들이다. 공부만 잘해서 다른 건 모르는 바보들인 인간들. 우리 국민들이 그 비정상적 사건에 얼마나 억울해 하고 속이 상하는지 그 아픈 마음도 헤아릴 줄 모르는 바보들!
과거 조선시대에 성리학을 배운 양반들이 목매어 응시했던 과거시험이나 요즘 우리나라의 사법고시와 행정고시에 매달리는 우리나라의 수재들! 오로지 고시공부만 하는 지금의 이 나라 풍조와 너무 닮았다. 그런데 과연 이런 세태가 옳은가?
또 미국의 오바마대통령이 칭송한 우리 한국인의 교육열, 과연 칭찬받아 마땅한 일인가?
우리 한국인들이 배움에 대한 욕구가 다른 나라와 달리 대단하고 특이한 건 인정해야 하지만 이제 다른 식으로 사고해볼 때도 되지 않았나?
우리 모두는 공부에 대한 집념이 너무 강하고 자식에 대한 사랑도 공부해라 라는 말로 표현하고 대변할 만큼 공부를 강요한다. 정말 공부하여 좋은 성적을 올리라는 말 때문에 부모자식간에 대화도 사라지고, 가족간의 관계가 메마르게 만들어 우리 젊은이들에게 가정의 의미마저 사라지게 한다.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바라는 최우선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라는데 이건 숫제 공부방에나 틀어박혀서 살아라고 자식을 내모는 말의 다름이 아니다. 요즘의 청년들이 결혼하지 않으려 하거나 자식을 안 낳으려 하는 이유도 바로 부모님으로부터 들은 말 “공부해라”라는 말에서 조금은 비롯된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무의식중에 삐져나오는 공부에 대한 갈망은 조선시대부터 비롯되었다. 조선시대에 백성은 대부분 노비와 중인이었는데 이들 눈에 비친 양반의 도포자락 걸치고 책을 읽으며 공부하는 모습은 바로 신선의 모습으로 비춰졌다. 또 그들 양반이라는 사람들이 외곬수로 성리학을 가르칠 때 주눅이 들었으니 얼마나 귀하게 보였을까? 조선의 부패한 양반들의 우쭐거리는 태도에 우리 백성들은 배울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절망했다. 반대로 성리학을 배운 양반들은 우리의 시야를 상거래니 경영이라는 실용적 학문에서 벗어나 중국만 추종하여 사대하게 만들었고, 거꾸로 폐쇄된 사회로 몰아갔다. 게다가 과거에 합격하면 하루아침에 벼슬길이 열리고 관직을 얻게 되는 공부! 이 말을 읊어대는 사람들은 양반이었으니 공부해서 과거에 응시도 할 수 있었지만, 그걸 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르치는 사람이 없어 공부도 할 수 없었고 과거시험 칠 자격도 없는 말 그대로 꿈에도 그려볼 수 없는 신분제약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종이나 평민들은 이런 일을 조선의 5백 년 동안이나 겪었으니 마음속에 한이 맺혀 있었을 것이다. 할아버지 세대에서부터 아니 그 위의 증조부나 고조부에, 그 위의 윗 조상들로부터 못 배운 사람들의 울분을 피맺히게 들어서 알고 있었을 거다.
조선시대에는 누려보지 못한 높은 관직이나 타인의 위에 군림하기 위해 공부가 하고 싶었던 우리의 어른들! 물론 이런 게 전부 다는 아니겠지만 우리 사회가 공부에 집착하면 할수록 더 삭막해지고 갈등이 심해지는 탓도 여기에 연유하지 않을까? 화합하고 어울려 살며 배려하는 인간성을 가진 진정한 사람이 되는 공부는 사라지고 오로지 출세하기 위한 공부가 우리 사회를 빗나가게 만들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아무나 책을 읽고 공부할 수 있는 양반의 독무대였던 과거시험은 사라졌고, 우리 국민이면 누구나 응시할 수가 있는 사회가 되었으니 그 잘난 체하는 양반들에게 평생을 주눅 들어 살다가 이 좋은 시절에 공부를 안 할 수가 없는데 자신은 이미 나이가 들었고 공부할 기회를 놓쳤으니 자식에게만 매달려서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줄기차게 해대는 건 아닐까?
이젠 이런 고리를 끊어야 한다. 공부 잘하는 사람보다 기업을 하는 사람이 존중받아야 하고 더 많이 노력하는 사람이 대접을 받는 사회로 만들어야 한다. 공부가 대단한 건 공부하는 사람들의 노력을 높이 사려는 우리 인간들의 귀한 마음에서 비롯되지만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공부하는 사람보다, 좋은 대학 갔던 사람보다 더 노력하는 직업군들이 많다.
간단히 운동선수들, 그들은 끝없는 자기 연마와 관리에서 조금만 게을러도 패배나 탈락의 비운을 겪는다. 어느 체육고등학교의 교훈에 <이기고 싶은가 절제해라. 더 나아지고 싶은가 노력해라>라는 말에서 보듯 우리나라의 운동선수들은 노력과 절제를 쉼없이 하는 대표적인 사람들이다. 또 우리가 쉽게 보는 바이얼린이나 악기를 다루는 사람들, 이들은 정말 젖을 때자말자 악기를 손에 잡고 시작하여 끝없는 연습속에 학교대회와 지방대회니 전국대회를 다니면서 자신의 실력을 테스트하고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듣는다. 이처럼 운동선수나 연주자들이 절차탁마의 자세를 끊임없이 견지해야 하듯 이런 노력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사회인데 고작 공부 하나로 평생의 출세가 보장된 사회! 잘못된 관행이라도 이런 잘못은 없다.
또 이와는 다른 관점에서 공부에 몰두하는 우리를 바라보자. 자식 잘되길 소원하며 출세를 위해 좋은 직장을 가기 위해 공부를 하였던 우리 사회가 여유로워지고 평안해졌을까? 청소년자살율이 세계1위라는데! 자살율도 문제지만 우리가 느끼는 행복도도 높아졌을까?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공부할 수 없었던 과거보다 더 행복하지 않은 사회에 살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 모두가 주문을 외우듯 공부에 매달리지만 정작 우리의 삶은 역설적으로 공부를 많이 하면 할수록 행복에서 멀어져가는 사람을 만들고 행복하지 않는 사회가 되는 건 아닐까?
물질적인 풍요는 누리고 있고 공부에 매달려 출세는 했지만 그게 우리 모두가 공부를 해서 얻은 건 아니지 않나? 정말 잘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누리는 작금의 이 물질적 풍요와 여유가 공부를 잘해서 얻게 된 건 진짜 극소수의 몇 사람밖에 안되고 대부분이 오래 전 5,60년 전 과거의 기업을 하거나 정치를 잘한 어느 분의 덕택이며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밤잠을 설쳐가며 세계의 비웃음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노심초사하며 노력한 몇 사람 때문이라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행복의 조건에서 죠지 베일런트가 말하는 나이가 들어서도 멈추지 않는 지식의 욕구라면 행복을 주는 요소가 되어 귀하게 생각된다. 또 끝없이 노력하며 배운다면 자신이나 사회가 더 행복해지고 발전하겠지만, 젊어서 단순히 자신의 출세만 추구하는 배움에 대한 욕구는 천박한 이기적인 산물이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