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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곳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라~”(15) – 황강을 지키라는 당부, ‘쌍책면 성산리 느티나무’

조선시대 문화류씨 법성공 유맹지(柳孟智)가 고향 쌍책면 성산리 내촌마을에 심었다는 느티나무는(경상남도 기념물 제240호로 2002년 2월 22일 지정. 쌍책면 성산리 598. 나무 크기는 지정 당시 758㎡. 문화류씨 종중 관리물.) 합천군청 홈피, 2013년에 발간된 《합천군사》, 웹 검색자료로 교차검증해보니 대략 600여년이 넘었다. 나무 곁에는 법성공 유맹지 유적비도 있다. 느티나무가 선 곳은 일제강점기 공출처였던 황강변 성산나루터이기도 하다. 여기서 오동나무, 신, 감, 곡식, 돗자리 등이 강줄기를 타고 낙동강을 만나 김해를 거쳐 부산까지 실려 나갔다고 전한다. 어린 시절 지금의 오서교(쌍책보건소 앞 회전교차로에서 아막재로 이어지는 다리) 전 철제다리를 건너며 내려다본 황강을 기억한다. 구멍이 숭숭 난 철제다리가 흔들려 멀미를 했다. 그 시절 쌍책초등학교는 주변 지역민에게 즐거운 문화교류장이었다. 운동회라도 열리면 외지로 나간 향우들도 가족을 이끌고 고향을 찾았다. 나도 그런 부모 손에 이끌려 다녔던 향우였다. 그 모습을 이 느티나무들도 함께 구경했겠다.
당시 국립산림과학원 소속이었던 권진오(대전충남생명의숲,2004)는 관련 웹 게시물에서 법성공이 후학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법성정에 새긴 글 가운데 일부를 소개하는데 그 가운데 ‘나무 베는 것은 조상을 욕되게 하는 것이며 이 정자나무의 잎사귀 하나, 가지 하나도 상하게 하지 말 것을 강물에 맹세하라’는 문구가 오래 남는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쌍책면 성산리 내촌 앞 황강변엔 아름다운 모래땅과 대숲, 느티나무숲이 어우러져 있었다고 전한다. 해마다 예측을 해도 겪는 물난리는 지역민의 고통이었겠다. 합천댐 공사가 한창이던 시절이다. 합천댐이 건설되고 난 뒤에도 황강가 사람들은 크고 작은 물난리를 겪었다. 산이 많고 땅은 넓고 농지는 부족한 합천에서 황강은 강변을 따라 농사짓는 사람들 중심으로 세를 만들었다. 인구소멸 운운 하며 안팎으로 위기를 겪고 있지만 주민 1명이 살아도 합천은 사람이 사는 곳이고 사람 외에도 많은 생명이 사는 곳이다. 동시에 이 지역은 기억과 기록에 남지 않는 과거부터 농사짓는 이들의 터전이다. 개발논리는 농사짓는 이들에게도 강하다. 콘크리트 벽을 세워서라도 지키고 싶은 자산이 있고 사람의 것만은 아닌 강변 모래도 당장 챙길 수 있으면 꼼수를 부린다.
‘강변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의 강둑 절벽 위에 정자가 있고, 그 느티나무 숲에는 말 백 필을 맬 수 있으며, 느티나무 가지가 사방으로 넓게 펼쳐져 있어서 햇빛이 새어들지 않으니, 여름이면 장날처럼 사람들이 모여 더위를 식혔다. 이 정자에서 법성공이 후배들에게 학문과 예절 가르치기를 낙으로 삼았기에 수백 년이 흐를 동안 풍우가 침노하지 않고, 강물이 침식되지 않으니 이는 하늘이 보살피는 명당이요, 성지이다.’라는 관련 법성정 글귀에 놀라고 부끄럽다. 조상이 염원한 명당에서 우리는 행복한가? /임임분 시민기자

※본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