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곳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라~”(19) – 산신 구렁이 흔적도 찾아보세요 ‘내곡리 청금정’
합천읍 내곡리(內谷里)는 합천읍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뒤로는 산이 마을을 감싸 안고 있으며 앞으로는 논들이 넓은 계단형식으로 있다. 내곡마을은 600여년 전 고려 말 합천이씨 10대손 원경(元慶)공이 처음 이주해 마을을 이룬 후 지금까지 거의 합천이씨 단일성씨가 살고 있다. 이 마을에 지방문화재 자료 제128호인 청금정과 충현사가 있다. 청금정을 찾은 날은 저녁 해가 넘어 갈 시간이라 무척 마음이 바빴다. 올라가는 내내 날이 흐려서 일몰을 기대하지는 않았는데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하게 해가 내려앉았다. 저 노을을 어찌 그냥 놓칠 수가 있을까? 사진 찍으려 들고 있던 핸드폰 내려놓고 가방도 던져놓고 마당에 퍼질고 앉아 먼 산 노을 지는 하늘만 보며 쉬어가기로 했다. 다른 건 뒤로 하고라도 마을 멀리 보이는 먼 산의 자태에 눈은 땔 수가 없다. 유럽에서는 많은 성당과 건물들이 석조로 이루어져 있다. 그네들은 돌로 만들어졌으니 오래 갈 수 있지만, 우리는 건물들은 목조로 500여년의 세월을 견디어 온 것을 생각하면 그 미적 감각과 구조의 치밀함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곳 청금정과 충현사는 화려함 보다는 소박함으로 자연에 묻혀 자연의 싱그러움이 그대로 간직되어있다. 청금(淸襟)이란 말이 참 좋다. 청금이라 함은 맑은 유생을 뜻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마을 후손들도 유독 학자들이 많다고 동네 어르신의 자랑이 끝이 없이 이어진다.
청금정은 이원경의 후손들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사당이다. 이원경은 고려 지현관 직제학 금자광록 대부를 지낸 인물로, 후에 벼슬을 사직하고 합천군 두상면 상상곡에서 살았다. 사당은 조선 숙종 18년(1692)에 지었고, 원래 앞면이 4칸이었으나 후에 양측에 1칸씩 늘려 지었다.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충현사는 3현(이치·이홍조·이일로)을 추모하기 위해 고종 32년(1895)에 지은 사당이다. 원래는 농산서원 안에 있었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서원은 사라지고 충현사만 남아 있다.
화려하지도 않은 노랗기도 하고 붉기도 한 낙엽들이 갈잎에 되어 바람에 구른다. 먼 산의 노을에 취해 청금정 누마루에 앉아있노라니 집집마다 굴뚝에는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아궁이 나무 태우는 냄새가 구수하게 느껴지는 것이 온 후각이 그 곳으로 쏠려 갔다. 노을만 바라보던 눈은 마을의 이곳저곳을 훑어본다. 어느 집 대문을 열고 들어가도 한 상 차려 저녁을 먹자고 권 할 것만 같으니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게 된다. 집집마다 피어오르는 연기를 뒤로하고 청금정을 찾기 위해 바쁘게 스쳐 지나갔던 소사마을에 있는 당상나무로 발길을 옮긴다. 비록 보호수라는 돌 안내판은 가지고 있지 않지만 내 눈엔 수백 년 된 나무보다 더 듬직한 느티나무 옆에는 다른 마을과 다르게 돌무덤이 자리 잡고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돌무덤 안에는 장정 허벅지만한 굵기의 구렁이가 살았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집안에 우환이 있을 때 산신당에서 기도를 드리고는 했는데, 그때마다 구렁이가 돌무덤에서 나와 기도하는 사람 주변을 맴돌았다고 한다. 구렁이가 산신이고 돌무덤은 산신의 집이였을 거라는 말 이기도하다. 산신령의 신심이 워낙 탁월해 이곳에서는 무당이 설 자리가 없었다고 한다. 느티나무와 은행나무 등등 여러 나무들이 가을을 맞아 단풍으로 한껏 뽐내고 있고 떨어진 단풍들은 바닥을 고운 융단 카펫으로 만들었다. 소담하게 솟은 돌무덤은 가을의 한가운데에서 당상나무와 함께 오가는 사람들을 마중하기도 배웅하기도 하면서 마을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신누리 시민기자
※본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