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2인자 “맹사성” – 김현덕 법무사
- 들어가는 말
아직까지는 코로나로 전 국민이 움추려있지만,짙어가는 녹음과 함께,사회전체가 조금씩 활기를 찾아가는 느낌이다.
신기에 가까운 이성계의 활솜씨로 새왕조 조선을 개창한후 한 30년이 지난후 세종대에 이르러 조선의 문화는 활짝 만개하기 시작한다.
세종 이도(아명 충녕대군)은 대외적으로는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개척하여 조선영토를 자연적인 강을 기준으로 영토를 확정했다.
대내적으로는 세금제도를 개혁하여 백성의 생활을 나아지게 했으며 한글창제로 쉽게 백성들이 까막눈을 면하게 했다.
컴퓨터시대에 얼마나 한글이 인터넷사용에 편리한 글자인지 모든 네티즌들은 동감할 것이다. 명장밑에 약졸 없듯이 명군밑에는 그를 보좌하는 스텝들이 없을수 없다. 8천만 겨레가 인정하는 청백리이자 명재상인 황희정승을 간단히 소개하고, 황희의 그늘에 가려져, 평생 영의정한번 못해본,그러나 진정한 애민의 아이콘 청백리 고불 맹사성을 소개하고자 한다. - 청백리 방촌 황희( 厖村 黃喜 : 1363- 1452)
1) 명재상 황희 하면 떠오르는 아이콘은 청백리이다. 조선은 217명의 청백리를 배출했으며,그중에 청백리 4대천왕이 있으니 방촌 황 희, 고불 맹사성 , 송현 상 진, 오리 이원익 대감 4명이 그들이다. 그중 방촌과 고불이 동시대인 세종대에 영,우의정을 지냈으니, 세종대왕 은 자신도 뛰어난 임금이지만, 뛰어난 스탭들의 보필을 받는,세종 자신이 복장(福將;복을 타고난 장군)이었다. (참고로 성웅 이순신도 정 걸, 좌정운 우희립, 나대용 등 당대 세계 최고의 해군 스텝들의 보필을 받았다)
2)황희는 고려말에 과거에 급제한 원래는 고려조의 신하였다. 고려가 망하자 개경 두문동에서 고려에 대한 절의를 지키다,다른사람의 충고로 조선에 출사했다고는 하나 야사일 확률이 높다.
3)필자가 주목하는 황희의 인생사중 하이라이트는 황희가 얼자(어머니가 천한 노비)출신으로 요즘식으로는 완전 흙수저출신이란것과, 90세까지 장수했다는 것이다. 조선조 평균 남성의 수명이 50이 안되는 통계와 비교한다면, 87세때
자신의 간곡한 간청에 의해 세종이 은퇴를 허락한 것으로 봐서,말년은 어찌보면 종신 공노비였을지도 모른다. (그때 87세면 요즘으로 치면 100세는 넘었을텐데, 아침에 일어나면 출근자체가 지옥이었을것으로 짐작된다) - 청백리 고불 맹사성
(1359-1438)
1) 고불 맹사성을 이야기하면서 빠질수 없는 것이, 고려말 명장인 최영의 손녀사위라는 사실이다. 고불의 바로 옆집에 살았던 최영장군이 어린 맹사성의 영민함을 알고 손녀사위로 삼은 것이다.
2)고려말에 문과에 급제하여,조선 태조 정종 태종 세종등 4명의 임금을 도와 새로운 왕조 조선의 기틀을 잡는데 일조했다.특히 세종조에는 영의정 황희, 우의정 맹사성 투톱 체제가 세종의 태평성대를 이루게 했다.평생 소탈한 성격과 청렴한 생활로 청백리의 상징으로 통했고, 특히 대금(퉁소,피리일종) 을 잘 불어,학문과 예술을 조화한 진정 아름다운 2인자였다. (황희보다 먼저 죽어서인지,황희의 그늘에 가려서인지 영의정은 한번도 못했다)
2)일화 하나
약관도 되지않은 19세에 과거에 장원급제한 청년 고불은 하늘 무서운 줄모르는 기고만장한 청년 문사였다.(당시조선조 문과급제자 평균연령은 30세전후라고 한다). 약관 20세에 경기도 파주목사로 부임한 고불은 근처 사찰에 명 노 고승이 있다는 소문을 듣게된다. 고불은 자신의 학문을 시험해 볼겸 고승을 찾아가게 된다.
노승과 담소를 나누는중 고승이 고불에게 찾잔에 찻물을 따르던중 찻물이 넘쳐서 고불의 옷자락을 더럽히게 된다.크게 놀란 고불이 뭐하는짓이냐고 고함을 치자,고승이 미소을 지으며 한마디한다, “찻물이 넘쳐서 그깟 옷을 버리는 줄은 알면서,재주가 넘쳐서 덕성을 해친는 줄은 어찌 모르십니까?” (재승박덕;才昇薄德)
크게 놀란 고불은 황급히 일어나 방을 나가려다 문틀에 머리를 부딛쳐 넘어지고 만다. 이때 고승이 나직히 한마디 한다. “고개를 조금만 숙히면 평생이 편안한 것을, 쯧쯧”
그날 크게 깨달음을 얻은 맹사성은 바로 호를 고불(古佛: 오래된 부처)고치고,그후로는 남녀노소,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예로서 대하며,평생 청렴한 삶을 살았다. (이동미, 교과서 속의 인물여행;p144-145 참조)
3)기타
우의정이 온다고 미리 길을 정비했는데 소를 타고 고불이 지나간 일화, 오만한 젊은 선비를 업어서 냇물을 건네주고, 문장끝마디에 당,공으로 끝나는 끝말잇기내기 (어디가는공, 과거보러간당,‘’‘’‘) 등 숱한 소탈한 일화를 남겼다. - 정리하면서
고불이 남긴 시조한수를 소개하면서 고불과 고불후손들의 안녕을 기원해본다.
강호에 봄이드니 미친흥이 절로난다.
막걸리 한잔에 물고기 안주 삼아
이몸이 한가로움도 역시 군은(君恩) 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