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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알프스 도전기 (2) – -빗속을 둘이서 – 정두현 수필가

꼼짝없이 차에 갇혔다. 퍼 붇는 빗줄기를 둘이서 멍하니 쳐다본다. “어쩔 수 없지, 우리 나이에 무리하면 안 되지.” “다치면 모든 게 허사다, 오늘만 날인가, 돌아가자.” 새벽같이 달려왔지만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산행을 포기해야 할 지경이다. 다음을 기약하고 가자니 정성스레 만들어준 도시락이 운다. 그렇다고 시니어 둘이서 무엇을 해보려 해도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되살리고픈 세월 앞에 체면이 서지 않는다.
산행 스케줄을 재 탐색했다. 빗속에 강행할 코스를 물색했다.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잖아, 다른 곳이라도 가 볼까?” 뜻 없이 던진 말이었는데 희망의 불씨가 되었다. 얼음골케이블카를 타려고 핸들을 잡았다. “혹시 우리만 타는 거 아냐” 우려는 금 새 탄성으로 바뀌었다. 주차를 하려는데 만반의 준비를 한 등산객이 걸어가고 있었다. 산에 얼빠진 사람이 우리뿐만 아니었다.
1,200m 고지까지 케이블카에 몸을 의지하니 수월했다. ‘호박소’에 대해 자랑을 늘어놓아 눈 빠지게 내려다 봐도 울창한 숲만 보였다. 단풍 일 때 오면 정말 멋지다는 멘트가 따라 덧붙인다. 관광객을 좀 더 매료시키려면 소를 볼 수 있도록 설계를 했어야 되지 않았을까? 단숨에 올라온 기쁨도 잠시, 마음을 단단히 먹고 빗속을 나섰다.
천황산까지 얼마나 수월한지, 오늘 같은 악천후에 우산을 쓰고 가는 분도 있다. 아마 우리나라 십여개 천황산 중에 가장 가까운 거리가 아닌가 싶다. 좁은 등산로에 물먹은 풀과 흙탕물을 피하려고 발길을 옮겨 보지만 허사다. 고개 한번 숙였다가 치켜드니 정상이다. 예상외로 짧은 거리다. 하지만 매서운 비바람에 인증샷만 남기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사자봉의 포효도, 천황의 배알拜謁도 뒤로 한 채 천황재로 향했다.
내려가는 것은 좀 수월하다. 하지만 깎아지른 급경사에 매서운 비바람은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다. 맞받아치면 힘들어 비틀고 내려가야 했다. 마치 관절이 안 좋아 옆으로 발을 내딛는 것처럼. 우의로 싸매고 배낭끈으로 동여매도 맛 바람의 거센 빗줄기는 몸속을 헤집는다. 이미 질퍽한 신발이라 물구덩이도 피하지 않고 첨벙첨벙 걷는다. 천황산과 천황재는 사이가 좋지 않은지 얄밉게도 너무 멀리 떨어져있다.
빗물이 온 몸에 스멀거려 춥기까지 하는데 전화가 왔다. 배낭 깊숙이 비닐에 싸여 피신하고 있는데 꺼낼 수가 없다. 아니 꺼내기가 싫다. 걱정스런 아내의 전화 같은데 어쩌겠나. 자유스럽게 산다는 친구가 농을 던진다. “우리 마누라는 집에서 나가면 좋고, 더 좋은 것은 들어오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제일 좋은 것은 침대에서 함께 자는 것이네”라고 하니 ‘그건 아니고.’라고 한다.
천황재 쉼터에는 쓸쓸한 탁자들만 비바람에 울고 있다. 여기서도 도시락은 꺼낼 수가 없다. 떨고 있는 탁자를 토닥여 주고 재약산으로 오른다. 재악산載岳山으로 표기 될 정도로 바위산이다. 일제강점기 민족문화 말살정책에 따라 잘 못된 명칭이라 천황산과 재약산은 ⇒ 재악산 하나의 산으로, 재약산은 ⇒ 수미봉須彌峯으로 변경(고유지명 복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친구는 키 작은 숏 다리에 배도 좀 나왔다. 우의를 입고 비에 젖은 옷이 몸을 칭칭 감아 우둔할 수밖에 없다. 빗물에 샤워를 하고 있는 바위는 더 날카롭고 미끄럽다. 돌 모서리를 잡고 발을 올리려고 끙끙대는 모습이 너무 안쓰럽다. 정상의 표지석도 바위 꼭대기에 우뚝 서 있다. 거센 비바람에 몸을 가눌 수 없어 인증샷 하기도 힘들다.
엉금엉금 기다시피 돌무더기를 내려왔다. 바위는 몸의 중심을 잃게 하여 어딘가를 망가트릴려고 하는 괴물처럼 보였다. 그래도 하산 길은 무난할 것 같은데, 표충사까지 5.2km 라는 방향표시를 보고는 몸이 굳어버렸다. 아~ 하는 한숨이 나왔다. 대충은 아는 길이라 더 충격이었다. 식사도 그르고 간식도 못 먹었다.
억새밭 사자평원을 위해 설치한 데크전망대에 그대로 풀 석 주저앉았다. 친구가 신발에 고인 물을 비우고 가잔다. 너무 무거워 힘들다며 물먹은 양말까지 쥐어짠다. 간식으로 싸온 배를 먹는데 빗물도 따라 들어올 정도로 계속 쏟아 붙는다. 전망대의 가시거리는 제로 상태다. 안개로 뒤덮인 사자평원이 아무리 넓어도 눈앞의 가녀린 소나무 가지만도 못하다.
뚜벅뚜벅 끝없는 계단을 내려간다. 이마저 없었다면 몇 번의 엉덩방아로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아득했던 계단의 끝을 내려와 자갈길을 밟으니 너무 좋다. 살아있는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험악한 바위와 돌길이 좋지, 데크는 싫다. 이제 소나무와 울창한 떡갈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간간히 억새도 얼굴을 내민다.
넓은 임도 우측은 ‘불일암’가는 길이다. 부처님 오신날에 매달아 놓은 빛바랜 등이 외로이 안내를 한다. 비 맞은 모습이 너무 초라해 보여 마음이 아프다. 얼른 떼어다 곳간에 놓고 내년을 기약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높은 곳에 절이 있다니. 그 옛날 이곳에는 천여 명의 주민이 살았다고 한다. 믿기지 않으면 ‘고사리 분교’의 자리를 가보면 알터이다.
친구의 안내로 들어선 사자평원 억새밭은 너무나 쓸쓸했다. 빗물에 샤워를 하고 있는 억새는 볼품이 없다. 비 맞은 장닭의 꼬리 마냥 축 처져있다. 씨앗을 모두 날려버린 한겨울의 억새라고 할까? 한때는 얼마나 많은 인파가 몰렸을까. 입장객을 통제하던 출입구가 한적한 발길에 눈물 흘리고 있다.
본격적인 표충사 들입에 쉼터가 있어 겨우 점심을 먹고 에너지를 보충한다. 계곡의 물소리가 요란하다 심상찮다. 멀리서 들려오지만 굉음에 가깝다. “혹시 계곡물이 넘쳐 하산도 못하는 거 아냐” 갑자기 이상한 불안감에 싸이면서 부랴부랴 출발한다. 다급해지는 마음에 발걸음이 저 먼저가려 서두른다.
내려갈수록 협곡을 울리는 물소리는 우리를 더욱 위협한다. 큰일이다. 친구의 숏 다리도 모터를 단 듯 빨라진다. 큰 바위 모퉁이를 돌아서는데 우레와 같은 소리에 고개를 쳐드는데, 엄청난 폭포의 물보라에 놀란다. 와~ 장관이다. 비 오는 날 만 맞볼 수 있는 비경이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또 하나가 있는 층층폭포다. 지금까지의 모든 근심과 걱정, 모든 피로가 폭포의 장쾌함에 모두 날아가 버렸다.
모든 것 내려놓고 폭포에 취해버렸다. 이렇게 멋진 연출을 우리만이 보다니. 백두산의 정방폭포와 제주도의 정방폭포를 겹쳐놓은 듯 한 아름다움이다. 요리보고 조리보고 최대한의 아름다움을 추억으로 담는다. 가다가 다리위에서 또 다시 뇌리에 심어 놓는다. 와~ 정말 멋있다. 내려올 때 “너무 멀어 아마 한사람도 못 만날 것 같다”는 예측은 현실로 다가왔다. 우리만 보기엔 너무나 아까웠다.
구룡폭포를 지나 흑룡폭포에 도착하니 여성 두 분이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올라가자는 분과 내려가자는 분이 결론을 내리지 못해, “층층폭포를 보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겁니다.”라고 해도 하산을 하고 만다. 예전에 아내와 그렇게 멋진 찬사를 했던 흑룡폭포에는 마음이 문을 열지 않았다.
온몸이 물에 젖었다. 어디로 스며들었는지 축축하다. 손가락에 감각이 둔할 정도이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부처님은 뵈어야 한다. 대웅전 입구에 쪼그리고 앉았다. 물에 퉁퉁 불은 축축한 양말을 벗고 대웅전에 들어서는데, 그 어느 때 보다 반가움의 미소다. 마치 염화시중의 미소가 이랬을까?
그렇게 변화무쌍한 손오공도 부처님 손바닥에서 놀았다고 한다. 오늘의 무리한 도전을 어떻게 생각하셨을까. 분명 엷은 미소는 잘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머리 조아려 한참을 그대로 있다. 이제 네 봉을 넘었으니 나머지 다섯 봉을 무사히 잘 완등 할 수 있도록 부탁을 드려본다.
사실 오늘 가장 고마운 것은 우의다. 하찮게 여겼던 우의 덕을 이렇게 많이 본적은 없었다. 이 악조건에서 어쩔 뻔 했을까. 비바람을 막아주고 체온을 유지케 해 주었기 때문에 완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언제 쓰일지 몰라 꼬깃꼬깃 둘둘 말아 쳐 박아둔 우의가 최고의 수훈갑이다.
어떤 일을 잘 완수하는 데는 필요불가분의 중요한 것 보다는, 디테일한 것이 가장 큰 역할을 할 때가 있다. 귀찮다고 그냥 지나칠뻔한 부처님의 배알이 하찮은 일일지는 몰라도 그분의 가피력을 얻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