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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후 농사꾼으로 살아온 6년 – 옥철호 퇴직공무원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그 다음해인 1976년도에 공무원 시험을 치루고 출발했던 공무원의 길. 천직으로만 생각했던 평생의 직장을 2016년말 정년을 1년 앞두고 명예퇴직 했다. 40년 동안 집과 직장, 그것이 내인생 전부였다.
그 사이 군대도 갔다오고 결혼도 하여 1남2녀 아들딸도 두었고 자녀들 모두 결혼하여 손자도 셋이나 된다. 늘 마음속에 짐이 되었던 고졸 출신이란 응어리도 야간대학을 졸업하면서 녹아 내렸다.
내가 마지막까지 근무했던 합천군청에서 오를수 있는 마지막 단계인 4급 승진도 했다. 만40년 공직생활 중 6급계장 14년, 4~5급인 과장, 면장, 소장 등 12년을 합해 26년을 군청 간부 공무원으로 근무했다.
퇴직할 무렵에는 같이 근무했던 동료 직원들에게 좀 더 잘해주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기도 하고 퇴직 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여러 가지 걱정도 많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하루빨리 퇴직하여 틀에 박힌 생활에서 벗어나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들을 마음껏 해보고 싶어 퇴직일이 기다려지기도 했다. 공무원이기 때문에 매사 조심스러웠던 언행, 늘 긴장속에서 생활했던 틀을 벗어나 퇴직을 하고 출근을 안 하니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자유롭고 내 세상인 것만 같았다.
늦잠도 자고 옷도 편한 대로 입고 가고 싶은 곳도 내 마음대로 다닐 수가 있고 TV연속극도 실컷 보고 그동안 못 했던 것도 내 마음대로 해보고 생명산업이라고 하는 농사도 철따라 생강, 고추, 고구마, 감자, 무, 배추 등 다양한 작물들을 직접 심어 먹기도 하고 이웃에게 나눠주는 재미도 있다.
이젠 농기계도 제법 확보하고 내 스스로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농사기술도 어느 정도 습득했다고 자부심도 가져본다. 아내도 자기가 좋아하는 채소 등을 직접 심고 가꾸는데 취미를 붙인 듯 농사일을 많이 도와주는 편이다.
누군가 인생은 육십부터라고 했다. 100세 시대를 맞아 60대가 인생의 황금기요, 청춘이라는 말이 있다. 나도 이제부터 제2의 인생을 멋지게 살아 보자고 다짐도 해본다.
그런데 퇴직 후 1년이 지나면서부터 조금씩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만년 청춘이라 믿었던 건강도 여기저기 고장이 나 병원에 가는 횟수도 늘어나고 먹어야 할 약도 가짓수가 점차 많아진다. 직장에 다닐 때 늘 내 편이 되어주고 언제나 함께해 줄 것만 같았던 옛 동료들도 점차 잊혀가고 있다.
군청 과장님으로 근무하다가 퇴직하신 선배 공무원의 말씀이 기억난다. 민원사항이 있어 근무하던 곳을 찾았더니 처음에는 차와 맛있는 밥도 사주면서 반가워하더니 두 번째부터는 슬금슬금 피해 다니더라는 농담 섞인 말씀도 생각난다. 맞는 말인 것 같다. 그것이 현실이고 세상 위치일 것이다.
가정에서는 아내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젊은 시절 남편의 인상만 봐도 고약한 성질을 알기에 먼저 꼬리를 내리던 아내였으나 점차 자기 목소리를 내곤 한다.
주변의 지인들도 삼식이 하지마라 충고도 곁들인다. 직장 다닐 때는 하루에 아침 한 끼 먹고 나가면, 점심 저녁은 거의 매일 외식이고 한 달에 한두 번 일찍 퇴근하여 집에서 가족들과 저녁을 같이 먹을 정도였다.
30대에는 일찍 퇴근하여 아내에게 저녁 챙겨 달라고 전화하면 하던 일을 제쳐두고 곧바로 달려와 저녁을 차려주곤 했는데, 마흔이 넘어가니까 친구들 만나고 있어 못 가니 알아서 챙겨드세요 하더니 퇴직을 앞두고는 왜 전화했어요 하고 귀찮아하는 눈치다. 그것 또한 세상 살아가는 흐름일 것이다.
가정이 편해야 신상에 좋고 한평생 편하다는 말이 있듯이 그동안 가정의 화목을 위해 헌신해온 사랑하는 아내에게 까칠하게 대했던 일들이 후회스럽다. 이제야 철이 드는가 보다.
그렇다. 행복은 가정에서부터 온다고 했다. 아들딸들은 모두 결혼해서 각자 자기들 가정을 찾아 떠나고 이제 우리 부부 둘만 남았다.
남은 인생 자연스럽게 두 사람이 함께할 시간이 많을 수밖에 없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는 두 사람에게 달려있다.
가정의 화목은 내 목소리를 낮추고 성질도 죽이고 알고도 모르는 척 마음을 비우고 사는 것이 나의 건강과 가정의 행복을 지키는 길임을 나 자신에게 다짐해 보면서 자연이 들려주는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 들으며 오늘도 귀엽고, 탐스럽게 자라고 있는 나의 보물 무, 배추 등 농작물을 만나려 새로운 일터이자 나의 놀이터로 발걸음을 옮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