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에게서 협치(協治)를 배운다
이현출
전 국회입법조사처 심의관
산상화원이라는 말이 가히 실감나는 계절이다. 황매산 철쭉제를 비롯한 전국의 이름난 꽃 축제가 한창이다. 축제에 등장하는 꽃뿐만 아니라 아카시아 꽃, 찔레꽃, 라일락꽃 향기가 봄을 자극한다. 송나라의 화가 곽희가 춘산여소(春山如笑)라고 한 것처럼 봄의 산하는 온통 꽃으로 물들었고, 봄 산은 마치 웃는 듯한 표정으로 유혹하고 있다.
봄은 꽃들에겐 전쟁같은 시간이다. 키가 작은 야생화는 숲속 나무의 잎이 자라 햇빛을 가리기 전 일찍 꽃을 피우고 번식을 준비한다. 잘 알다시피 꽃들의 수정은 나비, 벌, 바람 등이 도와준다. 봄은 식물이 수정을 위해 벌과 나비를 불러들여야 하는 계절이다. 달콤한 꿀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꽃으로 이들을 유인하여야 한다. 꽃은 벌과 나비를 유인하는 표식으로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여기에서 식물들은 적은 노력으로 멋진 꽃을 만들어내는 전략을 구사하게 된다. 작게 피워 에너지는 아끼되 모든 꽃을 일제히 피워 벌과 나비의 눈길을 사로잡는 전략 말이다. 봄을 알리는 벚꽃을 비롯하여 주위의 모든 식물이 수천만 송이의 꽃들을 한꺼번에 피워 장관을 이루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크고 화려한 하나의 꽃보다는 수많은 작은 꽃이 한꺼번에 핀 꽃송이들이 더 강렬한 효과를 발하는 것이다. 이들 작은 꽃은 하나하나는 너무나 작지만 다같이 모이면 엄청난 존재감을 과시하게 된다.
한없는 그리움을 전하는 지천의 찔레꽃, 가지를 따라 좁쌀처럼 붙어있는 조팝나무 꽃, 겨울철 상고대를 연상케하는 이팝나무 꽃, 춘삼월에 때 아닌 폭설같이 세상을 덮는 벚꽃이 그렇다. 이들은 작은 꽃들이 모여 엄청난 존재감을 과시하며 나비와 벌과 바람을 유혹한다. 한 송이만으로는 매우 나약하지만 뭉쳐서 협력하면 대단한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눈을 야생화로 돌려보자. 봄의 들판은 야생화 천국이다. 특히 황매산은 야생화의 보고이다. 들판에서 자라는 야생화나 잡초들은 작은 꽃이 대부분이다. 꽃이 작아야 바람을 덜 타고 환경변화에 잘 적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꽃이 작아 나비와 벌에게 외면 당할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은 종을 뛰어 넘어 비슷한 시기에 일제히 꽃을 피움으로써 벌과 나비를 유인할 수 있다. 힘을 합치면 작은 꽃도 큰 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조동화 시인은 “나 하나 꽃피어”라는 시에서 꽃 한 송이, 단풍잎 한 장처럼 미약해 보이는 ‘하나 하나’가 모여 꽃밭과 울긋불긋한 산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한 기적이 아니라 자연의 순리라는 것을 강조한다.
나하나 꽃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마라
네가 꽃피고, 나도 꽃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것 아니겠느냐
(하략)
겨울이 남긴 적막한 들과 화단에 하나둘 피어난 야생화가 아름다운 장관을 이루듯, 우리 사회에서도 이종(異種) 꽃들이 만드는 아름다운 하모니를 볼 수는 없을까? 극심한 대립과 갈등의 양상을 보여 온 우리 사회와 정치권에도 협치(協治)의 바람이 불고 있다. 대결과 반목의 자리에 대화와 타협, 화해와 상생의 새로운 퍼즐을 맞추려는 노력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의 정치과정에서 나타난 행정부와 의회의 대립, 여당과 야당의 대립, 보수와 진보의 이념대립으로 국민의 정치적 무관심은 갈수록 깊어졌고, 정치권 모두가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그러나 최근 협치(協治)개념의 대두와 함께 한국 정치과정에서도 대립구도를 완화하기 위한 대화와 토론, 양보와 타협이 강조되고 있다. 이제 정치권 스스로 협치를 통하여 뺄셈의 정치를 지양하고 상생의 정치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각각의 정당이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무질서한 ‘봉숭아 학당’이 아니라 들녘의 야생화와 같이 이종간의 협력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협력과 협치는 혼자 이룰 수 없는 것을 이루게 해주는 삶의 지혜이자 생존전략이라는 것을 봄꽃으로부터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