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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난 곳이 명승지’ 합천인물열전 (1) – 월광태자(月光太子)의 역사루트를 찾아 (1)

합천군 야로면 월광리에는 대가야국의 월광태자가 세웠다는 월광사지(月光寺址)가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대가야국(大伽倻國)은 시조왕(始祖王)으로부터 역년(歷年)이 520年 16世라 하고 말왕(末王)을 도설지왕(道設智王)이라 기록(記錄)하고 있다. 그러나 이전(異傳)인 최치원(崔致遠)의 도순응전(道順應傳)에는 말왕(末王)이 월광태자(月光太子)로 기록하고 있다. 월광태자(月光太子)가 세웠다는 월광사(月光寺)에 대한 기록(記錄)으로는 동국여지승람에 [월광사화 야로현 북5리 세전 대가야 태자 월광 소창(月光史花 冶爐縣 北五里 世傳 大伽倻 太子 月光 所創)]이라 하였다.
대가야의 마지막 태자인 월광태자는 어머니의 품에 안겨 난을 피하고 있었으나 나라의 운명은 기어코 신라에 빼앗기고 말았다. 왕자는 자라서 [거덕사]라는 절에 입산하여 중으로 지냈다. 후에 지금의 야로면 월광리(당시 대가야권)에 월광사(月光寺)를 세워 대가야를 회복하려는 염원을 갖고, 돌아가신 부왕(父王)의 명복(冥福)을 빌었다 한다. 월광사는 조선 중엽에 없어젔지만 3층 석탑 2기는 그 자리에 남아 있다. 보물 124호인 이 석탑은 2층 기단위에 탑신이 세워져 있고 옥착석(玉着石)이 3층으로 되어 있고 양우 주조각(兩隅 柱造刻)하여 옥착석(玉着石)에는 5단의 받침이 조각되어 있어 통일 신라의 정형탑(定型塔)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주위에 광범위하게 흩어저 있는 기와 파편으로 보아 창건 당시의 절이 얼마나 웅장하였음을 짐작케 하며 월광태자의 모습과 여운이 은은히 떠오르는 것 같다. 단 지금의 월광사는 1971년 보광당 김주성 화상(普光堂 金周成 和尙)이 재건하였다. 보광당은 수년전 입적하였으나 사모께서는 2022년 봄에 돌아가셨다. 사모는 제자의 모친이라 필자와는 긴 인연이었다. 월광사 재건 당시 출토된 유물이 두 점 있었다. 석등의 초석 1점은 아름다우며, 언젠가는 몸체와 만나기를 기대한다. 어딘가에 소중하게 쓰였을 경계석 1점도 말이 없다.
어리석은 필자는 월광태자가 난을 피하여 넘어왔다는 그 역사 루트를 찾아가기로 하였다. 현재 그 루트는 임도(林道:숲을 가꾸기 위하여 만든 도로)가 개설되어 소형 차는 통행이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1톤 포트로 사전 답사를 하였다. 2015년 12월 초 하룻날은 눈도 얼음도 산길의 통행을 방해하지 않았다. 야로면 월광사에서 10시에 출발하여 11시에 중화저수지(고령군 대가야읍 낫질못)에 도착하고 우륵의 마을 가얏고에서 사전 답사를 마쳤다. 이날은 험한 초행 길이라 부인과 동행을 하였다. 나는 이 역사 루트(야로면 월광사낫질 재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동 당간지주)를 태자가 넘은 길이란 유래에서 [태자로(太子路)]라고 이름하였다.

태자로(太子路) 답사(踏査 )
나흘 후 12월 초 닷샛날 간단한 등산 차림으로 태자로 답사에 나섰다. 자동차로 사전 답사한 바에 의하면 산길이 험하고 무인지경이며 산짐승이 출몰할 가능성이 있는 곳이라 생각하고 평소에 산행을 같이하는 친구분께 동행을 요청했으나 채가 멀어서 무리하다는 이유로 거절 당하고, 하루 전 대구에서 와 있는 사위에게 반 강요하는 식으로 답사의 가치를 부여하여 동행 허락을 받고나니 마음이 든든하였다. 월광사는 해인천과 숭산천이 합수하는 곳으로 배산임수(背山臨水)하여 풍광(風光)이 아름다우며 4대강 지류 정비 사업으로 보(洑)막이가 마무리되면 댐이 형성되고 다리 건너 다목적 공원이 조성되면 운치가 더욱 좋은 곳으로 관광지화 될 예정이다. 이곳에 차를 세워 두고 출발(09:52분)하였다. 월광태자가 농사를 지었다는 월광 들을 지나 월광태자의 이름에서 유래(由來)한 월광 부락을 지나면 나대2구 마을 회관(10:13분)이나온다. 여기에서 [나대(羅帶)]라는 마을 이름은 대가야국의 월광태자 일행이 신라군에 쫓겨 피난해 넘어 오면서 비단으로 만든 허리띠를 풀어 놓고 쉬었다하여 나대(羅帶)라 유래(由來)되었다. 비탈진 들길을 따라 잠시오르면 나대 1구 마을 회관(10:33분)이 나온다. 처음 쉰 곳이라 하여 나대 1구를 상나대(上羅帶)란 이름이 유래하였다. 임도 표시석을 지나면(10:40) 곧 바로 독립 가옥이 3~4채 보이고 꼬불꼬불한 오르막 산길이 이어진다. 장기간 초겨울 비가 이어지더니 오늘은 모처럼 산길을 걷기에는 최상의 날씨이다. 타박타박 걷는 동안 등에는 땀이 나고 사위는 음료수를 권하면서 잠시 쉬어 가자고 한다. 우리가 쉬어 가면 태자가 쉬는 곳처럼 의미가 부여될까! 오늘 우리가 걷는 길은 차가 다닐 수 있지만 1500여년 전 태자가 넘을 때는 얼마나 험악하였을까! 백성과 궁궐을 버리고 피난 길에 오른 태자 일행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여부를 생각하면서 걷는 동안 낫질 고개에 도달(11:15분)하였다. 경남북의 경계이자 합천군과 고령군의 경계이다. 여기에서 [낫질]이란 말은 “임금이 나들이 하신 길”에서 유래(由來)된 말이라고 한다. 이 고개에는 고령군에서 음향 시설도 하고 이정표도 설치하였다. 생태 숲(1.55k),문수봉(1.12k), 미숭산 (1.08k) 등이다. 이곳에서 준비한 커피 1잔 하는 동안 고령 쪽에서 부산의 토요산악회원 들이 올라와 미숭산으로 향하였다. 낫질 고개에서 대가야읍을 향하여 출발(11:26분)하였다. 지금부터는 계속 내리막 길이다. 신동 저수지를 지나 옥담 경로당(신리회관:12:38분), 중화 저수지(13:32분),대가야읍 지산동 당간지지주(14:10분)에서 태자로(太子路) 답사를 마무리 하였다. 월광사에서 출발(10:05)하여 대가야읍 지산동 당간지주까지(14:10분) 총 4시간5분이 소요되었다. 태자로를 완주하는 것은 단순한 산행이 아니다. 이 역사루트를 찾아가면서 지명 유래를 찾고, 태자 일행의 나라잃은 설움에서 충효정신(忠孝情神)을 체험하게 되었다.
태자가 고행(苦行)한 그 길, 태자로(太子路)를 모두가 음미(吟味)하는 역사루트가 되었으면 한다. /시민기자 하재효

※본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