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군 3·1독립만세운동 재현행사를 보고 – 이호석 논설위원
지난 3월 21일 오전 합천읍 시가지 일원과 일해공원 내 3·1운동 기념탑 앞 광장에서 3·1독립만세 운동 재현행사가 있었다. 이 행사는 십수 년 전부터 개최되었지만, 오랜만에 이 행사에 직접 참여한 것이다.
이 행사는 합천문화원에서 주최하고 관내 각 단체가 모인 추진위원회 주관으로 진행되었다. 이날 오전 8시 반경 농어촌공사 앞에 참가자들이 집결하였다. 관내 유림회, 바르게살기, 새마을 지도자, 여성단체 협의회 등 많은 기관 단체가 참석하였고, 소재지 남녀중학교 1, 2학년생 등 모두 3백여 명이 모였다. 3년간은 코로나19로 행사를 치르지 못하다가 4년 만에 행사를 치르게 되어 모처럼 이렇게 많은 인원이 모여 생동감이 흘렀다.
행사에 따른 모든 준비는 주최 측인 합천문화원에서 하였다. 크고 작은 여러 종류의 태극기와 태극기가 새겨진 머리띠. 장대에 나부끼는 큰 깃발들을 참가자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앰프를 통해 3·1절 노래가 계속 흘러나왔다. 정각 9시에 시가행진이 시작되었다. 읍 소재지 중앙 큰 도로를 따라서 일해공원 행사장까지 약 1.5㎞를 행진하였다. 행진은 유관기관 공무원 군의회 의원들이 앞장서고 그 뒤로 유림 등 각급 사회단체 회원들, 그다음으로 학생들 순으로 행진을 하였다.
행진하는 모습을 가만히 보니 왜경 제복을 입고 총을 들고 있는 사람 네 사람과 그 옆에는 일본출생으로 우리나라에 귀화한 세분의 여성이 일본식 옷과 게다(나막신)를 신고 행진을 하고 있었다. 그런 신발로 제법 먼 거리를 행진한 세분이 많이 힘 들었지 싶다.
긴 줄로 늘어서 시가지 행진을 하는 동안 작은 손수레에 앰프에서는 3·1절 노래가 계속 큰 소리로 흘러나왔고, 3, 4십 미터 거리 마다 앞에서 마이크를 든 사람의 선창에 따라 대한독립만세를 우렁차게 부르며 행진하였다. 시가지 중심부 사거리에서 행진을 잠깐 멈추고 앞에서 왜경이 독립 만세를 부르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퍼포먼스를 연출하고 다시 행진이 시작되었다.
목적지인 일해공원 3·1운동 기념탑 앞 광장에는 큰 무대가 만들어져 있었다. 모두가 집결한 후 무대 위에서 무용단의 진혼무(鎭魂舞)를 비롯하여 만세운동 주모자를 왜경이 체포하고 사살하는 재연극과 삼일독립선언문 낭독, 기관장들의 인사와 축사 순으로 이어졌다.
나는 이 행사를 함께하는 동안 여러 생각을 하면서 솔직히 씁쓸한 심경이었다.
첫째는 예전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 학교에서 삼일절 행사를 마치고 학생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시가행진 할 때는 도로변에 많은 사람들이 나와 구경하며 박수를 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날은 그 많은 사람이 만세 삼창을 하며 요란스럽게 행진을 하였는데도 길가에서 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조용한 시가지가 마치 유령도시처럼 보였다. 그만큼 인구가 줄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니 괜히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둘째는 104년 전의 불행했던 과거사를 지금도 많은 군민을 모아 이런 형식적인 행사를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행사를 각급 기관과 학교에서 간략하고 경건하게 시행한 후 공무원이나 학생들에게 애국심을 가다듬는 교육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셋째는 요즘은 흔히 지구촌이란 말을 많이 쓴다. 실제 전 세계가 한 나라처럼 지내고 있다. 특히 현 정부가 경제, 안보적 차원에서 또 국가 미래를 위해 가까운 일본과 좀 더 긴밀해 지기를 바라는 분위기에서 104년 전의 일을 재연하면서 당시의 국민감정을 그대로 표출하는 게 현 시국 정서에 맞는 것인지를 생각해 보기도 하였다.
넷째는 이날 행사에 일본에서 귀화한 세 분의 여인을 초청하여 왜경으로 분장한 사람들과 같이 움직이게 한 것이 잘한 것인지? 행사에 참석한 그 여인들은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 자기의 선대들이 힘이 약한 이웃 나라를 침탈하여 저지른 악행에 대해 조금이라도 반성하는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혹시라도 이 나라를 식민지로 지배한 민족으로서 우월감을 가지고 이런 행사를 비웃는 마음은 아니었는지? 염려스럽기도 했다.
다섯째는 우리의 이런 행사를 TV를 통해 세계인들이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그 당시의 나약한 국력으로 침탈당한데 대해, 우리 스스로 열등의식을 가지고 계속하는 행사로 비쳐지지는 않을 까? 하는 등 온갖 생각을 해 본 것이다.
아무튼, 이날의 행사는 나에게는 아주 의미 있는 행사였다. 처음 모여 왁자지껄 떠들어 되는 모습은 선대들이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하던 그런 숙연한 분위기를 전혀 찾아 볼 수가 없어 행사 자체를 조금 부정적으로 본 게 사실이다. 그러나 종각 앞에서 마지막 행사인 당시 돌아가신 분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한 진혼굿과 왜경들이 독립 만세운동에 앞장섰던 사람들을 체포하고 사살하는 재연극을 보면서 당시 우리 선조들이 독립을 갈망하며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부르면서 피 흘려 쓰러졌던 그 현장을 상상하니 저절로 눈물이 나고 마음이 너무나 아팠다. 바로 이런 마음을 느끼게 하기 위해 오늘 같은 행사가 필요한 게 아니었을까 싶었다.
모든 군민이 이 행사를 하나의 형식적인 행사로만 볼 것이 아니라 선조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생각하고 애국심을 가지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