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학 50주년 기념 여행을 떠나며 – 정병수 공인회계사
안녕하세요? 73경제과 회장 정병수입니다. 입학 50주년 기념 여행이라고 생각하며 전세버스를 타니 조금은 흥분 되지요? 이번 행사를 이미 오래 전에 계획했지만, 예상치 못한 코로나19가 온 세상을 힘들게 하고, 제 몸도 정상이 아니라서 그만 포기할까도 했습니다만 총무를 자임하겠다고 나서는 동기도 나타나고 트레킹 모임도 잘 되는 것 같아 당초대로 하기로 했습니다. 저도 이 자리에 서니 감개무량합니다.
저는 주위에 고교 졸업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이벤트를 한다는 소리는 들어 봤지만, 대학 입학 50주년을 기념하여 동기생들이 함께 여행을 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연세대학교에도 우리 73경제과를 빼고는 들어본 바가 없습니다. 그만큼 이번 여행 행사는 남다르며 동시에 의미가 컵니다. 공교롭게도 칠순이 되는 친구들도 많아 그 분들은 일석이조의 여행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모교에서 30여 년간 근무할 때의 사무실이 민족시인 윤동주가 한 때 거처했던 옛 기숙사 건물이었습니다. 그 건물 앞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로 시작하는 그 분의 서시(序詩)가 새겨진 시비가 있어 마음이 울적할 땐 찾곤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반세기 동안의 추억을 가슴으로 더듬어 오며 달려가는 여행입니다. 그래서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라는 시(詩)을 일부 개사해 회장으로서 인사에 갈음하고자 합니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 합니다.(중략)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친구를!
나는 별 하나마다 대학 1학년 때 한 교실에서 공부했던 기억과 그 후 50년간의 추억을 더듬어 동기생 이름을 불러 볼까 합니다. 아! 어떤 친구들은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이미 멀리 갔습니다. 그 친구들을 호명할 때 조용히 묵념해 주시기 바랍니다.(이영우, 조수철, 노승철, 김용군, 장건상, 이경학 이상 6명)
다음으로 이 버스에 탄 22명의 이름을 가나다순으로 일일이 불러 보겠습니다. <강건, 강철준, 김갑수, 김도경, 김상해, 김종욱(미국), 김철희, 김홍근, 박주용, 손일태, 신동혁, 유동균, 윤여봉, 이지원, 장성호,장홍범, 전태환, 정병수, 정철환, 최재현, 홍남훈, 홍성찬> 이상 오늘 참석한 22명에 대해서는 내 나름대로의 이미지와 추억이 있지만 시간 관계상 오늘은 두 명에 대해서만 얘기하겠습니다. 첫째는 미국에서 이 행사를 위해 특별히 온 박주용입니다. 우리 집사람과 결혼 전 데이트할 때 박주용이를 아느냐고 묻기에 졸업 때까지 옆자리에 앉아 수업을 한 기억도 없고 대화다운 대화를 한 적도 없었기에 “솔직히 이름과 얼굴은 알지만 잘 모른다고.”고 얼무버린 적이 있는데, 주용이 대한 인상은 ‘부르죠아’ 그 자체로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가방 속에는 경제학 관련 책보다는 팔레트 등 그림도구 등을 갖고 다니면서 경제학 수업에는 어쩌다 나타나곤 했기에 미대생인줄 착각을 할 정도였습니다. 결혼 후 알고 보니 내 아내의 바로 위 작은 처남과 고등학교 때 같은 연극반원이었더군요.
두 번 째는 홍성찬 학장에 대해서입니다. 3학년 1학기 때 필수 과목의 하나가 경제학설사 기말고사 시간이었습니다. 이 과목은 내 학부 학점 중 유일한 D인데 사연이 있습니다. 당시 나는 공인회계사 시험준비를 하느라 경제학과 과목은 집중할 시간이 없을 뿐만 아니라, 어머님께서 갑자기 돌아가셨기에 울적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드디어 계단교실 209호실에서 시험지를 보니 아니나 다를까 답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답안지에 그냥 이름만 쓰고 시험장을 나가는 것이 내 양심에 맞고, F학점 하나쯤 갖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만용으로 답안지를 백지로 남긴 채 나가려 하는데 조교가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조교는 나에게 사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를 봐서라도 제발 한 줄이라도 써 달라고…….” 그 조교가 지금 모교의 경제학과에서 학문적으로나 또 학장으로서 우리 73경제학과의 명예를 날리고 있는 홍성찬 교수입니다. 그때 홍성찬 조교가 나의 백지 시험장을 그냥 받았더라면 F학점이었을 테고, 그러면 제 때에 졸업을 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니, 지금도 어질어질합니다.
공자는 명심보감 교우편에 “노요지마력 (路遙知馬力) 일구견인심 (日久見人心), 즉 먼길을 가봐야 그 말의 힘을 알 수 있고, 세월이 흘러야 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반세기를 지내고 보니 우리 동기생 모두는 참 좋은 친구들입니다. 이제부터 순천 여수 통영 거제를 도는 2박3일 동안 여러분의 가슴에 좋은 추억을 많이 새기길 바랍니다. 봄이면 꽃이 피고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50년 전의 봄으로 돌아가 봅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