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수필| 세월보다 자연의 변화가 두렵다 – 이호석 수필가
내 나이 벌써 일흔을 훌쩍 넘었다. 언제 나이를 이렇게 먹었나 싶어 스스로 놀랄 때도 있다. 하루와 일 년의 시간은 똑같은데 청소년 시절과 직장을 다닐 때와 노년의 세월은 크게 다르게 느껴진다.
전자의 세월은 인생 진로에 대한 준비와 직장일, 자녀들의 뒷바라지 등으로 압박감을 가진 시간이었다면, 후자의 세월은 이 압박감을 모두 털어버리고 취미생활, 건강관리, 친구들과 함께하는 등 즐겁게 지내다 보니 더 빠른 것 같다.
우리는 흔히 빠른 세월을 유수流水와 같다고 한다. 나는 가끔 세월을 유수와 같다고 한 표현이 적절한 것인지 엉뚱한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흐르는 강물은 가뭄이 심할 때는 마를 수도 있고, 저수지나 댐을 만나 쉬었다 내려가기도 하고, 굽이굽이 산야를 돌아 온갖 구경을 하며 서서히 흐르기도 한다.
이에 비하면 세월은 아무런 장애도 받지 않고 단 1초도 지체 없이 사방팔방 직진으로 흘러가니 강물의 흐름에 비할 바가 아니다. 애초 사람들이 강물의 흐름을 감히 삼라만상의 독보적인 세월에 비견한 것 자체가 조금은 궁색하고 무리했던 것 같기도 하다.
세월은 이 세상 모든 것에 공평하여 누구에게도 원망을 듣거나 비난을 받아야 할 대상은 아니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세월을 원망하고 아쉬워하기보다는 생을 조금이라도 더 즐겁고, 보람되게 살다가 미련 없이 웃으며 떠나는 게 좋을 것 같다.
시인 천상병 시詩 ‘귀천歸天’ 을 떠올려 본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나 하늘로 돌아가서/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나는 요즘 세월의 빠름보다 자연의 변화에 더한 두려움을 가진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동안 자연이 너무나 많이 변했음을 새삼 깨닫기 때문이다.
먼저 겨울 날씨를 생각해 본다. 내가 어릴 적 겨울은 지금보다 더 추웠다. 마을을 가로질러 흐르는 도랑이나 무논, 마을 옆 저수지 등 물이 있는 곳이면 모두 꽁꽁 얼어붙어 곳곳이 아이들의 스케이트장이 되었다. 가끔 따뜻한 온돌방에서 긴 겨울밤 잠을 자고 이른 아침에 깨어나면 문종이로 바른 어둑한 방문이 갑자기 훤해져 깜짝 놀랄 때도 있다. 방문을 열어보면 밤사이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온 천지를 눈부시게 해 놓았다.
그때 겨울에는 삼한사온三寒四溫이란 기온이 있었지만, 당시 겨울은 매섭게 추웠고, 어떨 때는 눈이 3,40㎝ 넘게 쌓일 때도 있다. 눈이 제법 많이 내린 날이면 마을 강아지와 아이들은 추운 줄도 모르고 주변 산과 들을 쏘다니며 종일 신나게 뛰놀았다. 집집에서는 경쟁하듯 눈사람을 큼직하게 만들어 마당 끝에 세워두고 서로 자랑을 한다. 마을 청년들은 골목길 곳곳에 눈사람을 만들어 보초를 세워놓고 양지바른 뒷산으로 올라가 토끼몰이를 하고, 때로는 한두 마리씩 잡아 오기도 했다.
그랬던 겨울이 지금은 도랑물이 제대로 얼지도 않고 눈발이 휘날리는 정겨운 모습도 보기 힘들다. 올여름 장마기와 같이 과거 장마와는 달리 폭우가 장기간 전국 곳곳에 쏟아지면서 큰 피해를 주었다. 기후가 이렇게 크게 변하고 있다.
음력 정월과 2월을 설 기분에 들떠 금방 보내고 나면 어느새 도랑 가 버들강아지에 물이 오르고 논밭 두렁에는 제비꽃 같은 자잘한 꽃들이 장식을 한다. 이때가 되면 강남 갔던 제비들이 쏜살같이 날아와 ‘지지배배’ 지지배배’ 반가운 목소리로 봄소식을 전한다.
어릴 적 나는 매년 봄이 오면 제비가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했다. 제비를 보면 먼저 흥부 놀부 이야기가 떠올라 좋았다. 착한 일을 하면 내게도 흥부 네처럼 좋은 박씨를 물어다 줄까, 하는 기대를 하며 나름대로 착한 일거리를 생각해 보기도 하였지만, 제비에게 감동을 줄 만한 일이 도통 떠오르지 않았다.
제비는 아름답고 인정 많은 농촌에서 농민들의 애정을 받으며 살았다. 초가집 처마 밑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운다. 수시로 마루에 분비물과 둥지 부스러기가 떨어져 주변을 불결하게 하지만, 순진한 농심들은 항상 그를 길조吉鳥로 여기며 아끼고 사랑해 주었다.
나에게 매년 아름다운 추억과 꿈을 가지게 하던 제비가 농촌에는 아예 나타나지 않은 지가 벌써 15여 년이 더 된듯하다. 나는 지금까지도 서운한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제비가 없어진 농촌 풍경은 주인공이 빠져버린 뮤지컬처럼 공허하다.
올가을에도 농촌 풍경에 중요한 역할을 하던 또 하나 매개체가 사라졌다. 매미 소리가 서서히 줄어들 때쯤부터 어디서 날아오는지, 들녘과 집 주위에 무리를 지어 날아다니며 가을 하늘을 수놓던 메밀(고추)잠자리가 사라져 버렸다. 마을 옆 저수지 물 언저리에서 암수가 꼬리를 깝죽거리며 연애질하던 말잠자리도 볼 수 없고, 지난봄 모내기 한 논에서 그렇게 울어대던 개구리조차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것뿐이 아니다. 몇 년 전부터는 농가에서 기르던 벌들이 집단 폐사를 하고, 나비, 여치, 메뚜기들도 차츰 개체수가 현격히 줄어들어 보기가 힘들다. 이런 변화를 보면 평소 풀 속에서 우리 눈에 잘 띄지 않던 자잘한 수많은 곤충도 얼마나 없어졌는지 모른다.
심지어는 우리에게 혐오감을 주며 깜작깜작 놀라게 하던 지렁이, 두꺼비, 뱀 구렁이 등도 거의 보이지 않고, 가치 까마귀 등, 줄어들지 않는 게 없다. 자연이 이렇게 무섭게 변하고 있는 것은 지구 온난화 현상과 무분별한 농약 살포를 원인으로 볼 수 있다. 무서운 자연의 변화를 우리 인간 스스로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보통 사람들은 바쁜 일상과 무관심으로 이런 현상을 예사로 보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다. 전설 같은 이야기로 나의 동심에 감동을 주었던 제비가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난 것처럼, 오랜 세월 애환을 함께하며 친구처럼 우리를 즐겁게 해주고 정서에 도움을 주던 정겨운 곤충과 새, 작은 동물들이 영원히 없어질까 봐 걱정스럽다. 좋은 친구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것은 너무나 슬픈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고령화와 빈집들로 적막한 농촌 마을이 이런 친구들마저 떠나면서 더욱 삭막해지고 있는 것 같다.
자연이 이렇게 크게 변하면서 정겹고 아름답던 농촌 풍경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가끔 자연의 변화가 지금같이 계속된다면, 머지않아 우리에게 더 큰 재앙이 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마음도 함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