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을 뱉어라 – 문계성 수필가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판사(判事) 집단을 존중해온 이유가 무엇일까?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새파란 20대 판사를 영감님이라 호칭할 때가 있었다. 법 지식만 외우다가 임관된 귀때기가 새파란 젊은이를 그렇게 부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법률은 법전만 펼쳐 보면 다 나오는 것이고, 법 지식만 암기하던 사람들에게 무슨 고매한 인품이 있었겠는가? 사람들이 그들을 그렇게 부른 이유는, 그들이 비록 젊었지만 법을 공정하게 집행하는 엄중한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즉, 그들은 법률을 다루는 기능사가 아니라, 목숨을 걸고 법의 공정성을 수호하는 사람이라는 인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머리가 하얗게 센 늙은 변호사가 법정을 들어설 때나 나올 때 판사를 향하여 고개를 숙였다. “당신은 어떤 경우에나, 설사 목숨을 위협당하는 지경에서도 법의 공정성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믿음 때문에 고개를 숙인 것이었다.
법을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집행해야 할 판사집단이, 그의 소임에 주어진 권위를 권력에 아부하는 수단이나, 명리(名利)의 수단으로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
나라의 근간인 사법질서가 무너지고, 사회는 무질서와 혼돈에 빠져버릴 것이다. 사회를 지키는 선악(善惡)의 구분이 없으지고, 사람들은 도둑질을 하고도 부끄러움을 모르게 될 것이다. 마침내는 도둑과 파렴치한들이 수단을 가리지 않고 정치 일선에까지 뛰어들어 국정을 농단하게 될 것이다. 사법부는 그런 위험에서 나라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다.
요즘, 우리가 보는 사법부는 불안하다. 영장실질심사에서 범죄의 내용이나 죄증(罪證)이 구속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영장심사 담당 판사가 누구냐에 따라서 구속 여부가 결정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1, 2심에서 유죄로 판결받은 사건이 대법원에서, 매우 비상식적이고 부자연스러운 논리로 무죄로 둔갑하는 일이 생겼고, 이 사건을 담당한 대법 판사가 이건 피고인의 비리와 관련된 회사의 고문으로 고문료를 받은 것이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이 사건의 피고인이 나중에 권력을 쥐게 되면, 이 판사는 더 큰 보은(報恩)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사람들 모두에게 있을 수 있다.
어떤 판사는, 어떤 피고인의 법정 출석이 5분 늦었다는 이유로 불출석 처리를 하고, 어떤 판사는 10분 이상 법정 춠헉이 늦은 피고인이 고위권력자라는 이유로, 다음부터는 제발 제때 맞추어 출석해달라고 애걸을 하면서 재판을 진행한다면, 이걸 국민들이 어떻게 이해할까? 사법부의 공정성이 살아있다고 생각할까?
사람들이 저 얼굴이 새까만 드라마의 주인공 포청천이란 판관에게 왜 그렇게 열광했을까? 그는 지위가 높은 권력자일수록 더욱 엄격했기 때문이었다.
보다 더 큰 우려는, 국가 정체성에 반하는 이념성 판단이다. 만약, 판사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대하여 반대한다면, 다른 체제의 옹호자라면, 대한민국의 법률을 집행하는 것은 마땅치 않다.
간첩행위가 적발되었고, 수많은 증거 때문에 이들이 구속기소 되었다, 그런데 이들은 1심 재판이 끝나기도 전에 전부 구속에서 풀려난 상태다, 이들이 재판부 기피 등 법률적 허점을 이용한 것이라면, 법률을 지키는 재판부는 마땅히 법률을 지키기 위한 수단을 강구해야 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사법부가 무지랭이들만 만만하게 구속하여 재판하고, 법률을 이용하는 사기꾼들에게는 속수무책의 무능한 집단이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과 같다.
사람들이 사법부를 존중하는 것은, 그들이 법률을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집행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목숨을 걸고 그걸 지킬 것이라는 믿음이 없다면, 국민들이 무엇 때문에 사법부와 그 판단을 존중할 것인가? 그런 직책의 권위를 파는 자들에게 마땅히 침을 뱉어야 할 것이다.
얼마 전 야당 대표가 단식이란 걸 했는데, 이 단식은 단식에 대한 상식을 깼다. 몰래 영양제를 먹는 모습이 잡히고, 호스를 통하여 영양제 주입을 받았다는 소문도 무성했다. 야당 대표가 왜 그런 쇼적인 단식을 연출했는지의 이유는 간단하다, 자기에 대한 수사를 중단하라는 협박이었다. 이 쇼에 발맞추어 반일(反日) 집회가 전국적으로 매우 열심히 열렸다. 전국이 반일(反日) 외침으로 소란하고,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배출을 반대하는 시위가 끊이질 않았다. 국제원자력 기구에서 괜찮다는데 시위자들은 바다 고기를 먹으면 불임이 되고 죽는 것처럼 외쳐댔다. 그러나 이 야당 대표는 단식 하루 선포 전날 목포에서 바다회를 맛나게 먹고, 잘 먹었다는 감상문까지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이 야릇한 야당 대표의 단식이 끝나자마자, 그렇게 시끄럽던 반일 시위도, 후쿠시마 오염수 배출 반대 시위도 일사불란하게 사라졌다. 그 원수 같은 일본도 멀쩡히 존재하고, 후쿠시마 오염 처리수는 지금도 여전히 배출이 진행되고 있는데, 왜 시위는 사라졌을까? 단식이 중단되자 반일 시위가 사라지고, 오염수 반대시위도 사라졌으므로, 이들 세 가지 사건은 모두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국민들의 묵은 정서를 그들이 필요할 때마다 꺼내어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일부 사람들은 이들의 정치 놀음에 허수아비가 되어 열심히 춤을 춘다.
국민을 그들의 정치적 야욕(野慾)의 도구로 생각하는 정치인들에게는 마땅히 침을 뱉어야 활 것이다.
문화는 무질서와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고, 그 속에서 인간다움과 그 아름다움을 구가하는 것이다. 옛사람들은 사람다움을 사단(四端)으로 말했다.
권력이나 권위를 가지고도 국민의 아픔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측은(惻隱)지심이 없는 것이고, 그것을 개인의 영달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수오(羞惡)지심이 없는 것이다. 그러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은 사양(辭讓)지심이 없는 것이고, 그것이 범죄행위임을 모르는 것은 시비(是非)지심이 없는 것으로, 전부 사람다움을 포기하는 일이다.
새삼 군자君子)의 도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맡은 직분에서나마 충실해야 하고, 자기 행위에 대한 부끄러움과 염치를 아는 것이 공직(公職)의 값을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탄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