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사찰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의 창건유래 (7)
이병생
합천문화원향토사
연구소장
송광사(松廣寺) <3>
지금의 가람은 1983년부터 1990년에 이르는 동안(8년) 새롭게 중창하고 가꾼 모습으로 보조국사의 제1차 중창으로부터 약 800년 동안 제8차의 중창 가람이 들어선 것이다.
송광사에는 3대 명물이 있는데 ①능견난사②비사리구시③천자암의 쌍향수 그것인데 능견나사는 중국의 금나라 황제 장종(1188~1208)이 보조국사에게 보낸 것으로 청동 접시이다.
능견난사(能見難思)는 그냥 접시가 아니라 똑같은 크기와 깊이를 갖는 수십개의 접시다. 難思(난사)는 말로만 듣고는 생각하기 어렵고, 能見(능견)은 눈으로 봐야만 알 수 있다는 의미인데, 숙종이 이름 하였고, 처음 전해진 것은 500점이었다고 하나 세월이 흐름에 1828년 기록에는 50점으로 나오고 현재는 30점만 남아있다.
비사리구시는 싸리나무로 구시를 파서 대중들의 밥을 퍼서 담는 그릇으로 600명의 밥을 담을 수 있으며 남원에서원목을 가져왔다고 한다.
쌍향수는 천자암 뒤뜰에 심어져 있는데 지눌보조국사와 중국의왕자(후에 제9세 담당국사)가 중국에서 돌아 올 때 짚고 온 지팡이를 꽂은 것이 뿌리가 내리고 잎이 나서 자랐는데, 수령이 800년이나 되고 높이가 12.5m나 되며 엿가락 모양으로 꼬여 있으며, 두 마리의 용이 솟구쳐 올라오는 것 같은 모양으로 천연기념물 88호로 지정되어있다.
또 다른 절에는 다 있는데 송광사에는 없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
①풍경②석탑③석등이 없다. 풍경은 시끄러우니까 스님들이 공부하는데 방해된다고 해서 없는데 오히려 해인사에는 풍경의 소리를 듣고 스님들이 수행과정에서 졸음이 올 때 깨어나라고 하고 또 풍경 속 물고기 모양의 양철을 달아 바람이 불면 흔들려서 소리를 내도록 했는데, 그것은 스님들이 졸음이 와도 눈을 뜨고 졸아 라는 뜻이다.
물고기는 물에서 잠을 자도 눈을 뜨고 자기 때문이다.
석탑과 석등은 풍수지리학에 볼 때 송광사 터가 마치 물위에 연꽃이 떠 있는 형국이라서 여기에 무거운 석탑이나 석등을 세우면 가라앉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송광사에도 많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데 국보4점을 비롯하여 국가지정문화재28건(187점), 전남도지정문화재10건(39점)(2010.8.25현재)을 가지고 있다.
오래된 절 집에는 문고리나 툇마루 하나에도 들을 만한 옛이야기가 담겨있기 마련인 것처럼 송광사엔 대웅전 계단 소맷돌 하나에서도 오랜 세월에 묻힌 사연이 묻어나 있고, 구석구석 숨은 이야기들이 빼곡하다.
그 중 하나가 고목이야기다. 고찰 중에는 옛날에 고승이 꽂은 지팡이가 자랐다는 전설이 많다. 송광사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옛날에 스님의 지팡이가 자란 것이라는 고목 세 그루가 아직도 성성하다.
그 첫 번째 나무는 마른(枯) 향나무인 고향수로 살아 있는 나무가 아닌 죽은 나무이다. 송광사 일주문을 지나면 청량각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보조국사가 박아 둔 지팡이에서 “자라다가 내가 죽으면 네가 숨 죽였다가 내가 이 도량에 돌아오면 다시 잎을 피어 나와 더불어 살자꾸나!”했다는 스님의 말을 알아들은 듯이 그가 죽을 때 함께 죽은 것으로 알려진다. 수백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아직 꼿꼿하게 서 있어 불생불멸의 나무로 불리는 이 고목에 다시 푸른빛이 들기를 기다리며 오늘도 사람들은 오가며 합장을 하곤 하는데 여기서 시 한수가 있다.
이 나무를 이름하여 백단수라 한다.
너와 내가 함께 살다가 한날 죽으니,
너를 고마워해야겠지.
네 푸른 잎 다시 열리는 날,
나 역시 다시 태어남을 알리라.
또 다른 지팡이 둘은 송광사에서 나와 조계산 마루 천자암 뒤뜰에서 찾을 수 있다. 두 그루 향나무가 마주 본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 쌍향수란 이름이 붙은 이 나무는 무려 800년이라는 세월이 걸맞게 그 위상이 대단해 보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저 건물과 건물사이에 조용히 서 있을 따름이다. 그 고요를 깨우는 쌍향수가 지닌 의연한 풍모로 나무 전체가 엿가락처럼 꼬인 모습이 마치 두 마리의 용이 솟구쳐 오르는 듯하고 주름진 기둥에선 오랜 세월의 무게를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문화재청에서 ‘아름답고 희귀한 나무’로 뽑았고 천연기념물 88호로 지정되었다. 이처럼 쌍향수의 모습은 특별하다. 비틀어 휘감아 올라간 줄기의 곡선이 그러하고, 한 겨울에도 성성한 푸른빛이 그러하다. 본래 중국과 백두산 지역에만 자생하는 나무로 알려져 있는 이 나무는 고향수와 마찬가지로 보조국사 지눌이 제자인 중국의 왕자(제9세담당국사)와 함께 중국에서 돌아올 때 짚고 온 향나무 지팡이를 이곳에 나란히 꽂은 것이 뿌리가 내리고 가지와 잎이 나서 자랐다고 하는 설화가 담겨있다. 또 쌍향수에 한번씩 손을 대어 흔들면 극락세계에 갈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나무의 영험을 그만큼 크게 믿었던 이 나무와 그만큼 친했던 옛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것만 같다.
전설처럼 전하는 기이한 이야기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마음이 속세의 껍질을 벗고 정토로 건너가며 자유로워진다는 ‘우화각’으로 통하는 능허교 아래에 매달려 있는 엽전 세 닢에서도 만날 수 있다. 일주문을 지난 후 두 번째로 만나게 되는 이 무지개 모양의 다리 아래에는 철사줄에 꿴 엽전 세 닢이 돌로 조아 만든 용머리에 걸려있다. 다리 아래로 숨겨져 있다 보니 대부분 사람들은 무심히 지나치게 마련이지만 여기에도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다리를 완성하고 나서 처음 이 다리를 놓기 위해 받은 시줏돈 중 엽전 세 닢이 남았는데 다리를 놓던 일을 하던 사람이 그걸 제주머니에 넣지 않고 다리 아래 메달아 놓은 것이 지금까지 전해져 온다는 것이다. 누군가 흐트러지지 않은 반듯한 마음으로 엽전을 메달아 놓았고,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 어느 누구도 욕심내지 않고 다리에 걸어둔 마음이 가슴을 훈훈하게 덥힌다. 잘못 쓰면 죄가 되는 무서운 돈을 지킨 이 일화처럼 요즘의 사람들도 이 엽전 세 닢을 마음속에 넣고 욕심이 날 때 마다 꺼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수많은 문화재를 간직한 고찰이지만 그런 문화재만이 송광사의 이름을 빛내는 것은 아니다.
빛바랜 기왓장, 모설리가 닳아 둥그스름한 돌계단, 바람이 불어 올려는 풍경 이처럼 소박한 풍경과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이야 말로 송광사의 오래된 역사를 보다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작은 보물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