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피해자 2세 고 김형률 19주기 추모제 열려
『진상규명 및 인권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 촉구
‘핵 없는 세상을 일구기 위해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절절히 호소

한국원폭피해자 후손회(회장 이태재)가 주최하고, 한국원폭피해자 환우회(회장 한정순)가 주관한 원폭피해자 2세대 환우의 인권과 진상규명을 외치며 떠난 고(故) 김형률 반핵평화운동가 19주기 추모제가 지난 25일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 강당 및 추모비에서 열렸다.
이날 신성범 국회의원 당선자, 이한신 군의원, 이태재 한국원폭피해자 후손회장, 한정순 한국원폭2세 환우회장, 정원술 한국원폭피해자협회장, 심진태 합천지부장(원폭자료관장), 이남재 합천평화의 집 원장, 이용수 위안부 할머니, 서옥자 미국워싱턴 정신대문제 위원회 이사장, 최봉태 변호사,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한일반핵평화연대, 유족 및 후손회 등 50여명이 참석해 고인의 정신을 기리며 헌화 했다.
추모식은 박갑술 합천지회 부지회장이 사회로 고 김형률 생시 모습 영상 자료 상영, 대금연주, 국민의례, 비핵평화를 위해 애쓰신 영령을 위한 헌화 및 묵념, 한정순 환우회장의 고인 생애 소개 및 경과보고, 이태재 회장 인사에 이어, 정원술 협회장, 신성범 당선자, 심진태 지부장, 이용수 할머니, 서옥자 이사장, 최봉태 변호사, 이남재 원장 추모사, 유족 인사 순으로 진행됐다.
김형률 반핵평화운동가는 “어머니 이곡지 여사와 아버지 김봉대 선생의 차남으로 1970년 6월 25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김 씨는 태어나면서 ‘선청성 면역 글로블린 결핍증’이라는 희귀병을 앓으면서 자신의 병이 피폭으로 인한 사실을 알고 2003년 3월 ‘원폭피해자에게도 인권이 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기자회견을 하고 원폭피해자 2세 환우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남은 생을 바쳤다.
그는 ‘한국원폭2세 환우회’를 조직하여 초대회장으로 활동하면서 “한국원폭피해자 2세 환우들의 진상규명 및 인권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과 실태조사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던 중 2005년 3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사후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추모사업회를 만들고 매년 추모식을 거행하고 있다.
한정순 환우회장은 “한국원폭피해자 2세로서 최초로 커밍아웃을 하고 우리 사회에 한국원폭피해자 2세 문제를 알려 온 고인의 염원을 되새기며 아직도 병마에 시달리는 수많은 한국원폭피해자와 언폭피해자 2세, 3세 등 후손들의 아픔을 함께하면서 핵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 뜻을 기리는 추모식을 맞아 고인의 명복을 빌며 고인의 뜻이 하루빨리 실현되기를 빈다”면서 “환우회 2세들이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많은 힘을 모아 주시길 바란다”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호소했다.
이태재 후손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고 김형률과 인연은 2000년 시작 무렵부터 줄곧 만나서 아픔을 듣고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자리를 하곤 했으며, 2005년 5월 29일 부산대병원에서 마지막 모습과 함께 정신을 이어오고 있다”며 “특히 환우회에서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정신을 이어 지금까지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회장은 추모식 준비와 고인을 생각하면서 《피는 꽃, 피는 잎들이 다 그리움 당신입니다. 당신이 죽어 우리 가슴을 때려 울려 이렇게 꽃 피우고 잎 피우는가 봅니다. ······》라는 추모 헌시 낭독으로 고인의 삶과 정신을 기맀다.
이어 정원술 회장, 신성범 당선자, 심진태 지부장, 이남재 원장 등은 추모사를 통해 “정부는 진상규명 및 피해 공동 조사, 역학조사 등이 이루어 져야한다”며 강력히 주장했다.
김 씨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그의 일생을 다룬 책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평화의 불꽃이 된 핵의 아이 형률이」과 그의 유고집 「나는 반핵인권에 목숨을 걸었다」 그리고, 원폭피해자 2세 아픔과 상처를 다룬 다큐멘터리 「리틀보이」 등이 공개되었다. 원폭피해자 2세들과 후손들의 잔인한 내림은 계속되고 있다. /이효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