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수제비 – 문경자 수필가
쨍쨍한 햇빛을 받아 누렇게 익어가는 밀밭을 보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익어 갈 때는 수염이 하늘을 찔렀다. 억세고 고집이 센 것처럼 보여 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속에는 아주 비단결 같은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밀 타작을 하여 동네 방앗간에 가서 빻아 오면 까칠한 성격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매미소리 시원한 여름은 밀가루 음식이 제격이다. 콩국수, 막국수, 냉면, 밀면, 칼국수, 비빔 국수, 물 국수, 수제비 등이다. 식당마다 계절에 맞는 것을 팔기도 한다. 수제비는 여름철 별미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다. 휴일에는 가족들이 모여 별미로 수제비를 많이 해먹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칼 수제비는 모양도 똑같아 칼국수와 수제비를 동시에 맛을 볼 수 있는 제품도 개발이 되었다. 그대로 누구나 요리를 해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다.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둥둥 떠서 흘러간다. 이런 날에는 따끈한 수제비가 생각난다. 비가 내리는 날도 좋지만, 심심한데 점심은 수제비를 해먹어 볼까! 한 그릇을 만드나, 열 그릇을 만드나, 손이 가는 것은 똑같다. 햇감자를 아주 얇게 껍질을 벗겼다. 시어머니는 감자를 벗기는 데도 무척 신경을 썼다. 두껍게 벗겨내면 먹을 것이 없다며, 칼로 얇게 벗겨 이대로 하라고 하던 말이 떠올랐다. 껍질을 보니 정말 얇게 분리가 되어 감자는 하얗게 변신을 하였다. 멸치 똥을 빼고 맑은 물에 헹구어 냄비에 넣고 끓였다. 멸치의 비릿한 냄새가 오랫동안 끓이니 구수한 냄새가 났다. 혼자 먹을 만큼의 밀가루 양을 반죽하였다. 같이 먹을 사람도 없고, 많이 하면 수제비가 불어 터져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왕년에 하던 솜씨를 한 번 발휘하자. 반죽을 만드는 일도 아이들이 찰흙놀이 하는 것처럼 재미있다. 놀이가 따로 있나! 당근을 갈아 넣고 반죽을 하니 예쁜 색으로 변했다. 이것도 어른들만의 놀이라 생각하고 내 맘대로 반들반들하게 반죽을 만들었다. 마늘, 청양고추, 부추를 준비하고, 감자는 굵게 썰어 다시 물에 넣어 미리 익혔다. 혼자 먹어도 맛있는 요리를 하는 것은 나만의 즐거움이다. 팔팔 끓고 있는 다시 물은 간이 잘 맞았다.
왼손바닥에 동그란 반죽을 올린다. 똑바로 서서 오른손으로 반죽을 얇게 밀어낸다. 반질반질하게 잘 밀어 똑똑 떼어 퐁당퐁당 넣는다. 너무 두껍게 해서 넣으면 떡을 먹는 것처럼 맛이 덜하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것을 보니 맛있게 익어간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가스레인지는 연기도 나지 않고, 불을 잘 조절할 수 있어 요리하는 재미도 있다. 거의 익을 무렵 준비한 재료를 다 넣고 뚜껑을 닫았다. 한대접을 퍼서 식탁에 올려놓고 보니 너무 맛있게 보였다. 잘 익은 열무김치와 궁합이 잘 맞았다. 이렇게 맛있는 ‘깅자표’수제비를 얼마만에 먹는 거야! 수제비를 좋아하던 남편이 함께 숟가락을 들고 있는 모습이 국물 속에 흐리게 다가왔다.
시집을 가서 첫 해 여름은 나에게 엄청난 고통이 따랐다. 대가족의 끼니를 준비하는 것은 힘이 들었다. 전기시설이나 주방도 제대로 갖추어 지지 않았다. 아궁이에 불을 떼고 밥을 한다는 일은 너무 힘들었다. 장독간이 있는 옆에 그늘막도 없이 큰 양은 솥이 걸려있었다. 완전 햇빛이 머리위에 내려앉아 있고, 아궁이속 불은 훨훨 타오르니 새댁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밥을 하다가 도망을 갈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마루에 앉아 지켜보는 눈들 때문에 겉으로 웃으며 부글부글 끓고 있는 속내를 누가 알아줄까! 도회지에서 시집을 와서 산다는 것은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장마철에는 주로 집안에서 별미를 해먹거나 밀렸던 낮잠을 자기도 하였다. 긴 여름 낮은 왜 그리 더디게 가는지 빨리 밤이 오기를 기다리며 마루도 닦고, 양말도 꿰맸다. 어머니는 슬슬 며느리의 눈치를 보면서 “따끈한 수제비를 한번 해보면 우떻노?”하면서 안경너머로 눈을 맞추었다. “예”하고 벌떡 일어났다. 섬돌아래 벗어 놓은 신발이 8켤레다. 두 그릇을 먹는 다해도 어느 집 생일잔치 만큼은 준비를 해야 한다. ‘아이구 머리야’ 시집가면 사랑받고 귀여움 받으며 새댁의 예쁨을 한 몸에 받아 좋은 시댁이라 했던 어른들의 말이 실망을 안겨주었다. 호호~ 어머니는 커다란 양푼에 밀가루를 담아 내 앞에 내놓았다. 이걸 어째! 걱정이 태산보다 높았다. 장손의 며느리 답게 용기를 내서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 일단 소매를 걷어 부치고 부엌으로 들고 들어갔다. 물을 붓고 반죽을 하기 시작했다. 미리 반죽을 준비해두면 부드러워 수제비가 쫄깃하고 구수하다. 다시국물을 우려내는 멸치도 신나게 자기 할 일을 잘하고 있었다. 멸치야 고마워. 구수한 냄새가 증명을 해주었다. 다음은 수제비에 들어 갈 여러 가지 채소와 양념을 준비하였다. 어머니는 지붕에서 갓 따온 애호박이며, 부추, 풋고추, 마늘 등을 손질하여 갖다 주었다. 가끔 연기가 눈앞을 가려 눈물이 나지만 꾹 참았다.
솔가지를 발로 밀어 넣고 다시 끓기 시작하는 솥 뚜껑을 열었다. 허리를 굽히고 반죽을 뜯어서 하나하나 붙지 않게 던져 넣었다. 시집살이가 이래서 힘이 드는구나. 이 많은 양을 끝내는데 시간이 꽤나 오래 걸렸다. 더위도 미안한지 슬쩍 구름속으로 숨었다. 양푼의 밑바닥이 보여 안심이 되었다. 남아있는 반죽을 모조리 하나도 남김없이 다 날려버렸다. 마지막엔 불타는 내 맘속의 수제비를 집어 넣었다. 신이 났다. 그때 어머니는 “다 됐나?”며느리의 눈치를 슬쩍 보았다. 한 그릇, 두 그릇 퍼는 일도 장난이 아니었다. 시아버지는 “더운데 며느리 죽인다”하며 어머니께 뭐라고 하였다. 수제비는 왕대접을 받으며 여름철 별미의 일등 공신을 하였다. 두레상에 둘러 앉아 먹는 가족들의 얼굴엔 땀이 송송 맺혔다. 만족한 듯 맛있게 먹었다. 장손의 며느리 만세! 하고 속으로 웃었다. 가족들은 도시 며느리가 수제비를 끓일 줄 알까? 모를까? 하는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무엇이던 할 수 있어 하고 스스로 자부심을 가졌다. 어머니는 설거지를 하고 나온 며느리에게 “어쩌면 그렇게 밀가루 반죽 하나 흘리지 않고 깨끗하게 잘 했노”하며 칭찬을 해주었다. 이래서 시집을 와서 살아도 고단함을 잊고 살았제 하는 생각을 하며 마지막 남은 수제비 한 그릇을 먹었다.
여름 한철 배고플 때/쉽게 해 먹을 수 있는/한 끼 식사로 그만//어머니 솔가지 꺾어 아궁이에 넣고/멸치가 우려내 주는 바다 내음/구수한 국물 맛/동네방네 마실 간다//손금이 새겨진 반죽을 손바닥에 펴 놓고/밀대처럼 생긴 손으로 최대한 늘려서/부모 것 자식 것/수제비 뜯어 넣는다//지나가던 이웃집 아지매 아제들도/스스럼없이 끼어들어 부담없이 먹는 맛/주근깨 큰 사발에 멸치 똥 한 개 남겼다
<어디 감히 여성의 개미허리를 밟아?>’멸치똥’ 중에서 (2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