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홍제암에서 [거덕사]를 찾다.
하재효
논설위원
홍제암 주지스님(박종성)과 면담도중 [거덕사]의 실체(實體)에 대한 단서(端緖)를 잡게 되었다. [거덕사]는 대가야국(大伽倻國)의 월광태자(도설지왕)가 신라 진흥왕의 침략으로 멸망할 무렵 난을 피한 곳(야로면에 월광사를 창건할 때까지)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그 실체를 알 수 없어 가야사(伽倻史)를 연구하는 분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 이러한 사실이 고증을 거쳐 정사(正史)로 기록된다면 그 역사적 의의(意義)는 대단하다고 본다.
먼저, 해인사에는 사적지(史蹟址)가 한 곳 추가될 것이다. 다음 월광태자가 [거덕사]란 곳에서 난(亂)을 피하였다는 역사적 기록을 확실히 뒷받침하고 신빙성을 높일 것이다. 세 번째, 합천인과 더불어 대가야 문화권에 사는 모든 분들께 자긍심을 높일 것이다. 네 번째, 만수동(야로와 가야면 일원)은 더욱 안전한 피난처임을 자부할 수 있을 것이다.
홍제암 주지스님과 면담을 하게된 과정(過程)은 이러하다. 2016년 7월 23일 삼복(三伏)과 대서(大暑) 지절 오후, 필자는 사명대사에 대한 자료 수집을 위해 홍제암을 찾았다. 기도스님의 안내로 사명대사를 모신 표충사(表忠祠)에 참배한 후 주지스님 선방(禪房)으로 안내 받았으나 부재중이시라 1시간여 경내를 둘러본 후 면담이 이루어졌다.
필자는 합천신문에 게제할 “만수동(가야와 야로면 일원)의 역사 자료를 수집하는 중이며 홍제암에서 사명대사에 대해서 현장감 있는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라고 말씀드린 후 이어서 “야로면에는 피난을 온 역사적 인물로는 대가야의 월광태자와 고려말의 이미숭 장군을 들 수 있으며 신라 진흥왕 23년에 신라장군 이사부와 사다함이 5000여명의 기병을 앞세우고 대가야국을 침략해 옴에대가야국의 마지막 왕 월광태자(도설지왕)는 [거덕사]란 곳에서 난을 피하다가 후에 월광사를 세워 부왕의 명복을 빌었다는 데 [거덕사]의 실체가 미스테리로 남아있다”고 하자, 주지스님께서는 먼저 “사명대사의 홍제암 체류(滯留) 기간과 유물·왜병이 사명대사비를 파괴한 이유” 등에대해서 말씀하신 후 의외로 조금 전에 필자가 거론한 [거덕사]에 대해서 말씀을 잇기 시작했다. [거덕사]가 있었다는 방향을 가르키며 “홍제암으로부터 서북쪽 1.5Km 지점에 위치하며 스님께서 젊으실 때 허물어진 절 터에서 긴 축대와 주춧돌, 무너진 3층 석탑 등을 확인하였으며, 미루어 보아 웅장한 절 터로 짐작된다”고 하셨다. 말씀하시는 것으로 보아 [거덕사]는 해인사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하리라 짐작된다. 스님께서는 군내의 옛 절 터에 대해서 많이 알고 계시며 필자가 “언제 한 번 현장 답사에 동행하시자”고 여쭈었으나 “자신이 없다”고 하시는 것으로 보아 오늘의 만남이 얼마나 소중한 만남일까! 생각한다. 선방의 불빛이 더욱 밝아오기 시작할 무렵 하직 인사를 올렸다.스님께서는 “차를 가지고 왔느냐?”고 화답하셨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