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합천면을 되돌아본다 – 이호석 수필가
자동차 대수 1960년 18대, 2023년 7,412대
단기 4293(1960)년은 지방 기초단체가 면이었다. 당시는 각 면에서 매년 연말이 되면 연혁과 일 년간 면정 수행 실적과 각종 통계자료를 정리하여 「면세일람」이라는 소책자 형식의 유인물을 만들어 상부와 면 의회에 보고하였다.
1974년 1월1일부로 합천면서기로 공무원을 시작하면서 총무계에 발령을 받았다. 며칠 되지 않아 선배 공무원을 따라 문서고에 들어가 보존 기한이 넘은 문서를 폐기하는 작업을 했다. 이 과정에서 4293년도 「면세일람」이 폐기 대상이었지만 나 같은 초보 면서기가 공부해야 할 자료로 생각하고 폐기하지 않고 집으로 가져와 읽어보고는 책장 안에 넣어둔 것이 오늘까지 보관되고 있었다.

며칠 전 소장하고 있던 합천면 「면세일람」을 보니 지금과는 너무나 많은 차이가 있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먼 과거로 돌아가 현실을 보는 것처럼 기분이 묘하다. 「면세일람」에는 목차와 연혁을 비롯하여 면사무소 기구표, 역대 면장일람을 비롯하여 법정리로 구분하여 각종 통계가 수록되어 있다. 당시는 행정 기초단위가 법정리였다. 합천면은 지금의 법정리와 같다. 합천리 외 서산, 영창, 금양, 용계, 내곡, 외곡, 장계, 인곡리 등 9개리로 행정이 수행되었다.
먼저 행정구역 항목에서 9개리에 72개 반이 있었고, 면사무소에서 각 리까지의 거리와 리별 남녀 인구수가 수록되어 있다. 당년 합천면 전체 인구는 15,199명이며 합천리 인구가 7,805명(52.4%)으로 가장 많았고, 용계리가 702명(4.55%)으로 가정 적었다.
면 전체 인구를 5세 단위로 연령별 통계가 나와 있다. 0~4세까지가 2,308명(전체 인구의 15.2%)으로 가장 많고 60세 이상이 849명(5.5%)으로 가장 적었다. 출생률이 가장 높고 고령자의 수명이 짧았음을 알 수 있다.
당년 학교 및 학생 수는 초등학교 3개교 2,242명, 중학교 1개교 550명, 고등학교 1개교 138명이었고 전체 면민 중에서 문맹자가 5,516명, 국졸 3,266명, 대졸 60명 이었다.
당년 인구동태를 보면 출생 497명, 사망 108명, 혼인 101, 이혼 2명 등이었고, 상설 흥행장으로 4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읍민관 1개소가 있었다. 또 소방 관련 현황을 보면 지역 의용소방대원 50명, 환용펌프 1대, 바켓스 10개, 쇠갈퀴 등 기타 10점이 전부다. 지금의 소방서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리별 농지면적 및 각종 농산물 품목별 재배면적 및 수확량이 게재되어 있고, 면내에서 생산되는 고공품으로는 연간 가마니 7,500매 새끼 799타래를 생산 판매하는 것이 전부였다. 각면 소재지에 있는 재래시장은 모두 합천군 소유였으며, 가장 큰 합천면 시장 사용료 연간 수입액 1,560,000환, 시장 유지관리비 555,000환이었다.
보건 의료 관련으로는 병원 2곳에 의사 2명, 조수 2명, 간호원 1명, 치과의사 2명, 한의사 2명이 있었으며, 약 업자로 약종상 3, 한약 2명이 있었다.
추곡 수납은 1,464가마, 하곡 수납은 236가마였고, 합천면내 전체 차량은 관용 지프차 2대, 화물차 4대와 개별 영업용 화물차 12대 등 모두 18대였다. 그리고 연간 도세 부담 5,578,444환, 면 세입·세출은 20,332,000환이었다.
면의회 의원이 12명이었으며, 면사무소 직원은 면장을 비롯하여 부면장1, 지방주사2, 지방기사1, 지방서기 5, 임시서기4, 노무원2, 징세원3, 부녀촉탁1, 사환1, 급사1명 등 모두 22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