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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신혼여행지에서 – 문경자 수필가

4월이 오면 신혼여행을 갔다 온 기억이 되살아난다. 친척의 소개로 만나 선을 보고 난 후 결혼날짜를 잡았다. 청량리 근처 b예식장에서 결혼식 하는 날. 하얀 드레스를 입고 신부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친정 고모는 “깅자가 신부화장 하고 드레스 입으니 나비 같이 예쁘구나.”하고 내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전날 밤에 연습한 대로 아버지는 딸의 팔짱을 끼고 음악에 맞춰 걸어갔다. 발자국을 뗄 때마다 아버지의 손 떨림이 느껴졌다. 그 순간 울컥하여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단체사진을 찍었다. 예식은 금방 끝이 났다. 양가 부모님과 친척들에게 인사를 하고 즐거운 신혼여행길에 올랐다.
택시를 타고 강남고속터미널에 도착해 속리산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 들어서자 승객들이 쳐다보았다. 여자는 고개를 숙이고 남자는 좌석 번호를 확인하고 자리에 앉았다. 같이 앉아가는 것이 어색하고 조금 부끄러웠다. 남자는 말이 없고 새신부처럼 조용했다. 언제 말을 붙일까 하고 남자를 쳐다보았다. 창밖을 보는 남자의 얼굴은 무표정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무슨 말을 했는지, ‘아니 옆에 있기나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혼여행을 간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모르는 남자 옆에 앉아 가는 느낌마저 들었다.
남자는 두 손을 가지런히 무릎 위에 올려놓고, 차창 밖을 보고만 있었다. 내가 맘에 안 들어서 후회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슴이 답답했다. 여자도 말이 없는 편이라 조용하였다. ‘안 맞아도 이렇게 안 맞냐!’ 속이 타서 차창 밖을 내다보니 산에는 진달래가 무리 지어 피었고, 도로변에는 개나리꽃이 커튼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여자는 지나가는 풍경들이 자꾸 따라와 밉살스럽게 보였다.
휴게소에서 잠깐 쉬어 간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그때 갑자기 남자가 모기소리만 한 목소리로 “뭐가 먹고 싶어요.”하고 말했다. 여자는 꾹 참고 조금 수줍어 하며“아무거나 사다 줘요.”하고 남자 얼굴을 보았다. 차 안에 사람들은 신혼부부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남이 보기에는 무척 행복해 보였나! 뭘 사다 주었는지 기억이 아지랑이처럼 가물가물하고 끼니를 때웠다는 사실이 다행이었다. 대화를 하지 않고 먹기만 했다.
터미널에 도착해서 대기하고 있는 택시기사에게 목적지를 알려주었다. 속리산 법주사에 도착. 우선 근처에 숙소를 정하자고 했다. 예약을 못하고 와서 계속 찾아 다니면서 방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남자는 빠르게 움직이며 몇 군데를 둘러보고 또 나오기를 반복했다. 여자는 오렌지색 원피스로 갈아입고 올림머리와 화장도 예식장 들어 갈 때 그 모습이었다. 여자는 남자의 눈치만 보면서 사월 햇살을 받으며 그냥 느림보처럼 따라다녔다. 간판도 그럴 듯하고 깨끗하게 보이는 곳에서 남자가 말을 하지 않고, 손을 높이 들고 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주인은 힐끗 쳐다보며 신혼부부라는 것을 알고 “어서 오세요.”하고 반겨주었다. 남자는 침대가 있는 방을 구한다고 애를 먹었다며, 여자를 쳐다보았다. 남자는 겸연쩍게 웃었다. 밉게 보이던 개나리꽃도 주변에 서있는 소나무 감나무도 예쁘고 멋있게 보였다.
방은 깨끗하여 마음에 들었다. 짐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왔다. 사월의 오후 햇빛이 좋았다. 손을 잡고 걷고 싶은데 그럴 생각조차 없는지 떨어져 걸었다. 잠바차림을 하고 카메라를 멘 아저씨가 숙소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우리를 위해 신혼여행기념 사진을 찍는다고 했다. 여자는 속으로 ‘어머나, 말도 하지 않고 무뚝뚝하더니 우째 이런 일이!’하고 남자의 옆모습을 보고 웃었다. 관광객들이 아름다운 봄의 숲길을 걷고 있었다. 뒤따라오던 오십 대 아주머니들이‘우리도 저런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나이가 이렇게 먹었네.’했다. 여자가 멋쩍어 남자손을 잡는 순간“사람들이 보는데 그냥 손 놓고 걸어요.”해서 얼른 놓았다. 여자는 다시 손을 잡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애교도 없다고 하면 어떡하나 혼자 생각하다 말았다.
뒤따라오던 아저씨가 개나리꽃이 핀 곳으로 안내를 하였다. 한 쌍의 신혼부부가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저씨는 “신랑신부 손잡고 마주보고 웃어요. 그리고 ‘사랑해요’ 하고 살짝 안아주세요. 예. 좋아요. 그리고 신부가 ‘나 잡아봐라’ 하면 신랑이 잡으러 가는 장면을 찍을 거예요. 예. 연기도 잘 하시네요. 영화에서 유행하던 장면을 남자와 여자가 찍으니 웃음이 나왔다. 플라타너스 나무 뒤에서 서로 얼굴을 내밀고 ‘까꿍’하세요. 예 좋아요. 다음은 이마에다 뽀 하세여. 하나, 둘, 셋하고 계속 사진을 찍었다. 남자는 익숙하게 하라는 대로 잘 했다. 버스안에서 말없던 그 남자가 맞나! 포즈를 취하는데 여자보다 더 적극적이었다. “신부님 개나리꽃이 핀 가지를 잡고 ‘방긋’ 웃어요. 예 예쁩니다. 웃으니 더 예뻐요. 이젠 그만 찍을 게요” 했다. 계속 걷다 보니 새구두를 신은 발이 조여 들었다. 오른쪽 새끼발가락이 아프고, 발뒤꿈치도 살이 벗겨졌다. 절룩거리며 따라다니다 보니 지쳐 말도 나오지 않았다. 신혼여행도 즐거움이 사라졌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안쓰러운지 손을 잡으라며 오른손을 내밀었다. 여자는 남자의 손을 꼭 잡고 더 아픈 척하였다. 여자는 애교가 있어야 남자에게 사랑도 받고 귀염을 받는 다는 말이 맞았다. 남자손이 봄날이라 따듯한 게 아니고 따듯한 마음의 남자 손이었다. 둘이 걸으니 길가에 핀 개나리 진달래 꽃이 봄바람에 살랑거리며 뒤를 따라왔다.
낯선 곳에서 지내는 일은 복잡하고 익숙하지 않았다. 조용한 아침이었다. 남자는 부지런하여 어느새 말끔하게 단장을 하고 있었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니 살짝 부끄러운 맘이 들었다. 1박을 하고 서울 친정집에 왔다. 아버지는 엄마 없이 자란 딸이 시집가서 잘 살아야 하는 맘에서 “이 서방 벌써 왔냐?”하며 조금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혹시 둘이 언짢은 일이라도 있어 일찍 왔나 물어보는 눈치였다. 딸 가진 부모의 마음이었다. 아직도 그때의 아버지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말이 없어 심심한 결혼생활이었다. 친정아버지는 이 서방이 쓸모 있는 말만 하니까 더 믿음이 간다며 칭찬을 해주었다. 살아보니 정말 말이 없었다. 시어머니 말씀대로 시아버지의 성격을 닮았다는 말이 딱 들어 맞았다. 친정에 갈 때도 내 손을 잡았다가 앞에서 누군가 오면 얼른 손을 놓았다. 아직도 변하지 않은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한편으로 마음은 따듯하고 여자를 아껴주는 편이었다.
봄이 오면 개나리는 피지만 남편은 벌써 몇 번째 봄이 와도 만날 수가 없는 곳에 있다. 앨범 속에 있는 사진을 꺼내 본다. 신혼여행 사진과 두 아들을 안고 있는 사진도 봤다. 사진 속 여자와 남자는 손을 잡고 있었다. 올봄에는 개나리꽃을 한아름 안고 남편이 잠든 그곳으로 달려가 신혼여행 이야기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