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오피니언)칼럼

용서가 있는 사회

서정한
편집국장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하나님 사랑의 가장 큰 원칙은 ‘용서’다.
불교에서도 108번뇌를 ‘참회’한다고 한다. 대부분의 종교에서는 용서의 교리를 가르친다.
“레미제라블”소설의 주인공 “장발장”은 신부 사제로부터 금촛대와 은쟁반을 훔치고 경찰에 붙들려 왔으나 “선물로 주었다.”는 사제의 말 한마디에 경찰로부터 풀려나고 19년 동안 사회를 증오하는 미움을 용서로 바꾸고 새사람이 된다.
필자는 1950년 한국전쟁 후 합천애육원을 부모님이 개설하여 800명의 전쟁고아와 가정이 파탄되고 사회로 버림받은 아동들을 건전한 국민으로 키우는데 어릴 때 와서 청년이 될 때까지 수많은 사고와 실수를 저질러 몸은 건강하나 애정결핍으로 사회를 증오하는 아동들의 심리치료를 위해 최고의 비결은 ‘용서’였다. 수십 번 잘못한 아동도 끝까지 용서하면서 새로운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동복지시설의 사명이다. 우리는 그 아이들이 공무원, 회사대표, 기술자, 직업군인, 사회 각 분야에서 성공하여 찾아올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
저출산 고령화 바람으로 시설이 조금 감소하지만(전국800개소가 지금은 266개소로 감소) 그래도 아동학대와 가정파괴는 핵가정일수록 더 많이 발생한다. 아동들은 건강(정신건강, 육체건강)과 교육이 제일 중요하다. 그 중에 용서는 빠질 수 없다. 개구쟁이 아동들이 장난으로 하는 일들에 대하여 일일이 꾸중할 수 없고 용서해야 한다.
추석연휴에 “벤허”라는 영화를 감상했는데 주인공이 자기를 노예로 만든 로마인을 마지막에 죽이고 파멸시키는 것이 옛날 처음 상영한 “벤허”인데 새로 나온 영화는 원수를 용서한다는 내용이다. 기독교의 사랑 정신은 ‘용서하는 것’이라고 한다. 추석연휴에 합천영상테마파크에서 촬영한 “밀정”이라는 영화도 보았다. 일제 강점기 일본의 조선총독부 경무국 경무부장 이정출이 일본의 경찰로 의열단(독립운동단체)을 탄압하고 박해하다가 밀정으로서 독립운동을 도우고 공을 세운다. 2시간10분 동안 원수를 용서하면서 독립운동을 도우게 된다. 중국의 “랑야방”드라마도 마찬가지다. 황제를 만드는 정보기관에서 죽고 죽이면서 원수를 용서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우리의 주위에는 몰래카메라(CCTV), 사람을 통한 정보수집으로 정보의 중요성을 알려주면서 항상 사람을 의심하고 경계하게 한다.
그러나 국가를 위한 일이든, 기업과 사회를 위한 일이든, 가정을 위한 일이라도 사람이 주역이다. 사람의 실수와 배신에 용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전두환 前대통령도 국민들이 용서할 때가 되었다. 아동들 교육이나 인간관계, 직장생활, 군대조직에서 잘못을 법으로 다스리고 처벌하는 것도 순리다. 심리학에서 잘못된 말과 행동을 계속 반복하면 성격이 되어버린다.
기독교 목사인 손양원 목사기념관이 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다. 한국전쟁(6.25) 당시 자기 두 아들을 총으로 죽인 좌익청년을 용서하고 자기 양아들로 삼고 신학을 공부시키는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의 이야기도 있다. 용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용서는 기독교 교리 성경에서 일흔번씩 일곱 번(70×7= 490)이상 용서하라 했다. 끝없이 용서하라는 것이다. 개인, 가정, 국가에서 잘못한 것만 거론하지 말고 좋은 면만 보고 용서하라는 것이다. 용서의 결과는 아름답다. 용서는 몇 번 할 것인가? 미국의 서부극에서는 가차 없이 총으로 쏘고 복수해버린다. 본인은 서부극에서 생명이 소중하다는 것을 느낀다.
둘째, 용서는 진심으로 해야 한다. 위장으로 마지못해 하는 것이 아니고 진심으로 용서해야한다. “빙점”이라는 영화에서 진실한 용서가 원수의 마음을 녹인다. 마지막으로 용서에는 사랑이 따른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용서할 수 없다.
최근 우리나라 이혼률이 결혼가정의 ⅓정도로 차지한다. 용서가 없기 때문에 쉽게 헤어지는 것이다. 부부간 부모 자식간에 용서가 필요하다. 말 한마디에도 용서를 못하고 비극이 일어난다. 다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사랑에는 용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