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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흘리던 밥솥 – 문경자 수필가

쌀과 압맥 보리쌀과 서리태를 넣고, 팍팍 문질러 씻어 깨끗하게 헹구었다. 작은아들이 새로 사준 ㅇㅇ압력 밥솥에 씻은 쌀을 붓고 물량을 숫자에 맞추고 뚜껑을 닫았다. 집게손가락으로 버튼을 누르면 예쁜 아가씨가 꾀꼬리 같은 음성으로 안내를 한다. 신기하다. 남녀노소 누구나 손쉽게 밥을 해먹을 수 있는 좋은 세상이다. 이렇게 간단한 밥짓기도 어느때는 하기 싫고, 게으름을 피울 때도 있다.
집게손가락으로 취사를 눌렀다. ‘보온이 취소되었습니다.’ 백미쾌속 압력취사를 누르면 ‘백미 ㅇㅇ가 맛있는 취사를 시작합니다.’ 딸그락 딸그락 하다가 ‘뜸들이기를 시작합니다.’(피쉬이~ 김 빼는 소리 칙~칙칙) 기차가 기적을 울리며 가는 소리에 웃음이 나왔다. 듣기만 해도 재미있다. ‘증기배출이 시작됩니다.’ 삑~삑삑 ‘ㅇㅇ가 맛있는 밥을 완성하였습니다.’뻐꾹~뻐꾹 ‘밥을 잘 저어주세요.’ ‘ㅇㅇ하세요. ㅇㅇㅇ’ 1분 정도 있다가 밥솥 뚜껑을 열었다. 와~ 기름기가 좌르르 흐르고, 콩은 반지르르하고, 보기만 해도 침이 고였다. 하얀색 플라스틱 주걱으로 밥을 살살 저어주었다. 주걱에 붙은 밥알을 먹었다. 숟가락으로 먹는 밥보다 더 맛있었다.
아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들아 네가 사준 압력밥솥이 아주 재미나게 밥을 하는구나. 고맙다. 덕분에 편안하게 맛있는 밥을 할 수가 있어 콧노래를 불렀다.’아들은 ‘네. 어머니 맛있게 드세요. 다음에는 더 좋은 밥솥을 사드릴 테니 언제든지 알려주세요.’하는 답장을 받고 ‘고마워 아들. 수고해’하고 끝맺었다. 기차가 가는 소리, 뻐꾹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에 아주 오래된 기억들이 솔솔 되살아났다. 밥솥을 만든 기술자는 정말 칭찬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적소리와 뻐꾸기 소리를 들려주니 엄마 생각이 났다. 그때 가족들을 위해 밥을 짓던 엄마의 모습이 김속에서 모락모락 피어났다.
꽁보리밥만 먹어도 행복한 웃음이 절로 나왔다. 콩기름을 무명천에 묻혀 닦은 무쇠솥은 반질반질하여 엄마의 깔끔한 살림살이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아궁이에 불을 때서 삼시 세끼 밥을 지었다. 밥을 할 때마다 항상 엄마는 얼굴이 환했다. 밥을 지을 때는 먼저 보리쌀을 삶는다. 삶은 보리쌀을 솥 밑바닥에 깔고, 가운데 쌀을 넣고, 손등에 물이 올라올 정도로 잘 맞춘 다음, 솥 뚜껑을 닫았다. 엄마의 밥하는 모습도 예술이었다. 내가 화가였으면 그때 그 모습을 한번 그려 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리운 순간이다. 솔가지를 꺾어 아궁이에 넣으면, 타닥타닥 타는 소리와 솔향기가 좋았다. 아궁이 속 불빛에 비친 엄마의 얼굴은 천사 같았다. 볼그레한 얼굴이 너무 고왔다. 연기 때문에 눈물이 나오면 무명치마 끝을 잡아당겨 닦았다. 엄마가 우는 줄 알았다. 나도 눈물이 조금 나와 무명저고리 소매로 눌렀다. 순간 솥뚜껑이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엄마 솥이 너무 뜨거워 운다.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솥도 엄마 생각 하나?” 그 말에 엄마는“깅자야 밥이 되려면 눈물도 흘려야 하고 또 물이 끓어야 밥도 맛있게 된다.”며 “깅자도 밥 하는 거 잘 배워서 엄마에게 맛있는 밥도 해주라”하고 귀엽다며“아이구 우리 깅자 이뿌다. 오늘은 보리밥보다는 쌀밥을 쪼매 더 주께 잘 무라.”했다. 기분이 좋아 빨리 밥이 되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솥뚜껑을 드르륵 열었다. 구수한 밥냄새에 침이 꼴깍 넘어갔다. “깅자가 배고픈갑다. 자아 묵어라 어서” “응 엄마”온 가족이 두레상에 둘러 앉아 먹는 밥은 지금의 황금 밥솥에 지은 밥보다 더 맛있었다. 밥숟가락을 입안에 넣었다. 고슬고슬한 밥알을 씹을 때 기분이 좋아 단맛이 났다. 갓 지은 밥과 겉절이 맛은 지금 생각해도 엄마의 손맛이 최고였다. 엄마는 밥을 얼른 먹고 난 후, 정지로 가서 받아 놓은 쌀뜨물을 밥솥에 붓고 숭늉을 끓였다. 구수한 숭늉은 몸속에 들어 가면 든든하였다. 밥 먹은 그릇들을 씻어 실강 위에 순서대로 잘 엎어 두었다. 솥 안을 깨끗하게 행주로 닦았다. 참기름을 두른 듯 반질거렸다. 지금 살아 계시면 뻐꾹이 노래하는 예쁜 밥솥을 하나 선물해드릴 텐데 흐린 하늘을 올려 다 본다.
시댁에서 어른들이 쓰시던 가마솥은 뒤주 옆에 붉게 녹이 슨채로 세월의 무게를 담고 있다. 무쇠솥 하나만 있으면 찌거나 삶거나 거의 모든 요리를 집에서도 다 만들어 먹을 수 있다. 만능 요리사다. 밥을 지을 때 호박잎, 방아잎 장떡, 감자, 옥수수, 고구마 등을 밥솥 안에 넣고 쪄서 먹기도 하였다. 명절이나 제사 때는 솥뚜껑을 뒤집어 지짐을 하기도 했다. 돼지기름으로 파전, 고추전, 무전, 깻잎전, 배추전, 고구마전, 부추전을 부치시던 엄마 모습도 눈에 선하다. 매콤한 연기에 눈물까지 흘리며 지짐은 고소하고 맛이 좋았다. 부침을 뒤집어 노릇하게 굽는 모습은 기술자같이 보였다. 프라이 펜이 나오고 부터 솥뚜껑도 자취를 감추었다. 지금은 솥뚜껑 삼겹살을 굽는 식당도 있다.
엄마는 뽀글뽀글 파마머리를 하고 내 앞에 앉아 있는 듯 대화를 한다. ‘깅자야 엄마하고 밥도 묵고, 설거지는 그만두고 공원에 나가 산책을 하자. 식당에 들어가 고소한 삼겹살에 상추를 싸고 마늘과 양파를 넣고 싸서 서로 먹여주며 맛있게 시켜 묵자. 찻집에 들어가 달달한 대추차도 마시자. 오늘은 엄마가 한턱 쏠게. 뭐든지 주문해라. 내가 우리 딸 맛있는 거 많이 묵게 해줄 게.’ 하는 엄마의 음성이 귓가에 달라붙어 말을 걸어왔다. 식당에 가면 엄마와 딸들이 같이 밥을 먹는 모습을 보며 나도 엄마와 함께 저런 시간을 가져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무쇠솥 밥이나 압력솥밥이나 상관없이 따끈한 밥을 엄마와 함께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밥을 퍼서 혼자 먹는데 엄마와 함께 밥을 먹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오늘따라 엄마를 생각하니 밥알이 목에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