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향교(陜川鄕校) 유림(儒林) 돈암서원(遯巖書院) 탐방(探訪)
하재효
논설위원
합천향교(전교 신문섭) 유림회에서는 9월23일 충남 논산시 연산면에 있는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선생을 모신 돈암서원을 탐방하였다.
신문섭 전교, 차기전교 이장열, 지회장 이찬균, 차기 지회장 권병근, 여성회장 김창남, 분회장 허석기(가야면), 하재효(야로면), 황덕용(묘산면), 노태섭(봉산면), 이근필, 박오영 감사, 하수갑 총무를 비롯한 60여명의 신구 장의분들이 원로님들을 모시고 합천향교가 있는 야로면 소재지에서 두 대의 버스에 편승하여 08시40분 해인사 톨게이트를 통과하여 잘 정돈된 광구고속도로에 진입하였다. 연이어 만나는 야로대교(오작교)를 지날 때에는 마치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기분을 연상케 한다고 입을 모았다. 여기에서 야로대교를 일명 “오작교(烏鵲橋)”로 표현하게 된 것은 [130m 높이의 두 주탑 꼭대기에서 뻗어내린 32가닥의 밧줄이 교판(橋板)을 끌어당겨 하중(荷重)을 지탱(支撑)하고 있는데 합천군에서는 이 밧줄의 상단부를 검은색으로 하단부를 흰색으로 칠하여 까치의 날개를 삼고 주탑을 몸체로 삼아 합천군조(陜川郡鳥)인 까치를 형상화 하였으므로 필자는 스스로 이다리를 오작교로 이미지화 하여 관광자원화하자는 사견(私見)임을 밝혀 둔다.]
오작교를 지나 전개되는 황금 들판에서 풍요로운 조국강산을 자유로이 만끽(滿喫)하면서 자유 발언시간을 통하여 자기를 소개하고 사계선생의 본받을 점을 미리 들을 수 있었다.목적지 인근 간경에서 오찬을 하고 13시30분경 돈암서원에 도착하였다.
서원 입구에서 마중나온 해설사가 서기 660년 황산벌전투(黃山伐戰鬪)에서 백제의 계백장군이 군사 5000명을 이끌고 신라의 김유신,흠춘,품일,관창의 5만 대군과 맞서 싸우다 4차례의 대승을 거두면서도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전사한 현장을 실감나게 설명할 때 신라 지역에서 온 우리 일행에게 야릇한 전율,즉 ‘그 때부터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을 피할 수 없었던가!’ 하는 생각을 하였다.이 서원의 주요 내용을 다음과 같이 살펴본다.
돈암서원(遯巖書院)
돈암서원은 1634년(인조12)에 창건되었다.조선중기의 대표적인 유학자 사계 김장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기호유학의 대표적인 서원이다. 이 서원은 예학의 종장인 사계 김장생 사후에 그의 제자들과 유림들이 창건하였으며 조선 중기 이후 우리나라 예학(禮學)의 산실이 되었다.(사적 제383호) 사계 선생은 1548(명종3)년 서울에서 태어나 1631(인조9)년에 졸하셨다.
응도당(凝道堂)
응도당은 학문을 갈고 닦던 강당으로 서원 옛터에 남아있던 것을 1971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으며 ,강학공간 전면에 직각방향으로 틀어서 배치되었다. 돈암서원에서 가장 빼어난 건물로 다른 서원 건축양식에서 볼 수 없는 양 옆면에 하나를 덧댄 가첨지붕(눈썹처마) 구조와 지붕형태를 가지고 있다. 대들보는 크고 웅장하며,생동감있는 비늘 무늬는 살아있는 용이 꿈틀대는 듯 익공의 화려함과 화반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건물이다.창방위에 놓인 화반형 조각은 기둥사이마다 1개씩 얹었다.
내삼문(內三門)
내삼문은 숭례사에 제향을 지내기 위해 출입하는 문으로, 사당앞의 어칸과 양 협칸을 별도로 하나씩 세우고 문과 문 사이에는 담장이 쳐져 있다. 담장에는 지부해함,박문약레,서일화풍 등 김장생과 그의 후손들의 예학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12개의 글자를 새겨 놓았다. 지부해함(地負海涵)ㅡ 땅이 온갖 것을 등에 지고 바다가 모든 물을 받아 주듯 포용하라.
박문약례(博文約禮)ㅡ 지식은 넓히고, 행동은 예의에 맞게 하라.
서일화풍(瑞日和風)ㅡ 좋은 날씨 상스러운 구름,부드러운 바람과 단비 즉,다른 사람을 편 안하게 해주고 웃는 얼굴로 대하라.
숭례사(崇禮祀)
충남도 유형문하제 제55호인 사당은 저면 3칸,측면 3칸으로 앞쪽 열은 퇴칸이다.주칸의 앞면에만 사분합 띠실문을 달고,옆면은 회벽을 쳤다. 사당 내부에는 주향(主享)인 김장생,신독재 (愼獨齋)김집(金集),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동춘당 (同春堂) 송준길(宋浚吉)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이들 네 분은 모두 문묘에 종사하였기 때문에 돈암서원은 선정서원이기도 하다.
장판각(藏板閣)
<사계전서> <신독재전서> <황강실기> <사계유고> <신독재유고> 등이 목판으로,김장생.김집.김계휘의 문집.< 가례집람> 왕실의 하사품인 벼루.전적 등과 책판이 보존되어 있다.
<이론적 배경>
사계 선생의 예학론(禮學論)은 임란 후 혼란해진 국가 기강을 바로 잡고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정통주의적 예학론에 중점을 두었으며,집권 세력의 정치이념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이(율곡)선생에게 주자학을 전수받아 그 학통을 계승하고 이기심학관(理氣心學觀)을 견지(堅持)하였다.
탐방소감(探訪所感)
학문(學問)과 예(禮)를 깊이 연구하여 세상을 이롭게 한 조상들에 감사하며 오늘날에 이어받아 실천하여 올바른 인성을 갖춘 후손이 되도록 조금이나마 느끼게 되어 무엇보다 감사하며, 북부 4개면의 유림들과 친분을 다지고 합천향교의 뿌리깊은 전통을 더욱 발전시켜 나갔으면 좋겠다. 오늘 뒷바라지한 여성 유도회 문총무님과 회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사계 선생의 예학 삼장
1.땅이 온갖 것을 등에 지고,바다가 모든 물을 받아주듯 포용하라.
2. 지식은 넓히고 행동은 예의에 맞게 하라.
3.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고,웃는 얼굴로 대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