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세 동갑내기 부부, 화목과 배려로 일군 인생 이야기
91세 동갑내기 부부, 화목과 배려로 일군 인생 이야기
자녀 잘 키우며, 마을 공동체에 헌신하며 살아온 조인경·심필순 부부의 삶

같은 마을에서 태어나 자라 결혼까지 이어진 91세 동갑내기 부부가 있다. 조인경(1934년생) 할아버지와 신필순(1935년생) 할머니는 70여 년을 함께하며 오남매를 키우고, 마을을 위해 봉사하며 화목한 삶을 이어왔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오늘날 젊은 세대에도 배려와 협력의 가치에 대한 깊은 울림을 준다.
교육의 한(恨)과 자녀를 위한 헌신
신필순 할머니는 칠남매 막내로 태어나 초등학교까지는 졸업했지만, 당시 사회 분위기 탓에 중학교 진학은 허락되지 않았다. 수학에 뛰어나고 공부에 뜻이 있었지만, “딸은 그 정도 배우면 됐다”는 아버지의 말에 더는 학업을 이어갈 수 없었다. 할머니는 “내가 배우지 못한 한이 있어서 자식들만큼은 꼭 공부를 시키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조인경 할아버지는 신혼 초 해군에 자원 입대해 3년 6개월을 복무했다. 군 복무 이후에는 농사와 함께 사방사업 현장 감독으로 일하며 자녀들의 학비를 마련했다. 소를 두 마리 키우고 농사를 지어도 수입이 거의 없던 시절, 맞벌이 대신 부부가 협력해 생계를 꾸려나갔다. 결국 다섯 자녀를 모두 대학까지 보냈다.
봉사와 공동체 정신
부부는 마을을 위해서도 적극적으로 봉사했다. 남편이 이장을 맡았을 때 아내는 새마을 지도자를 10년 넘게 역임했고, 이후 동네 회장까지 맡았다. 당시에는 한 집에서 부부가 동시에 마을 지도자 역할을 맡는 일이 드물었지만, 두 사람은 함께 힘을 합쳐 마을 일에 헌신했다. 면사무소 직원들이 출장 오면 집에서 식사를 대접하고, 동네 모임 장소 역할까지 도맡으며 공동체의 구심점이 됐다.
해외 사는 아들을 만나기 위해 홀로 미국까지 간 신필순 할머니
부부의 자녀들 중 아들은 LG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사표를 내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일리노이 공대를 졸업한 그는 현재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며 뉴욕타임스에도 소개될 만큼 성공적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신필순 할머니는 아들을 보기 위해 71세, 75세, 그리고 80세에 홀로 미국을 방문했다. 특히 80세에 혼자 비행기를 타고 아들을 찾아간 경험은 주변을 놀라게 했다. 할머니는 “비행기 타고 가면 아들이 공항에서 마중 나오는데 뭐가 어렵냐”고 담담히 말했다. 그는 미국 16개 주를 여행하며 노년에 새로운 경험을 쌓기도 했다.
건강과 화목의 비결
두 사람은 90을 넘긴 나이에도 큰 병 없이 건강하게 지낸다. 된장, 김치 등 전통 음식을 즐기며, 약을 거의 복용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부부간의 갈등이 없었다는 점을 장수의 비결로 꼽는다. “싸울 일이 없었고, 욕심을 버리고 양보하며 살아왔다”는 말에서 부부의 삶의 철학이 드러난다.
91세까지 함께 살아온 두 사람의 삶은 개인의 행복을 넘어 가족과 공동체에 기여한 모범적인 사례다. 배움의 한을 자녀 교육으로 풀어내고, 서로를 배려하며 화목을 유지한 이들의 이야기는 오늘날 가족과 사회가 잊기 쉬운 가치들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박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