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는 이겼지만, 공장은 사라졌다(1) – 곽노연 시인·서예가·대병대지生
“노조는 이겼지만, 공장은 사라졌다.”이 짧은 문장이 오늘의 한국 산업 현실을 통째로 요약한다.노조는 임금과 처우 개선을 위해 싸웠고, 그 싸움은 정당했다.그러나 파업의 끝에는 일터의 소멸과 지역의 붕괴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는 누가 옳았는가보다, 누가 남았는가를 물어야 할 때다.
1.지금 한국은 산업이 떠나는 나라
최근 현대제철은 미국 루이지애나에 8조 5천억 원을 투자하며 연 270만 톤 규모의 전기로 제철소 건설을 결정했다. 그만큼 국내 설비와 인력은 줄어든다. 한화오션, 쌍용차, 한국GM, LG전자, STX조선, 성동조선 등 한때 국가 경제의 근간이었던 기업들이 연이어 해외로 공장을 옮기거나 문을 닫았다.
군산·평택·진해·통영 등 산업도시들은 불과 몇 년 사이에 ‘공단 도시’에서 ‘실업 도시’로 전락했다. 공장이 떠난 자리는 실업과 공실, 부동산폭락, 인구 감소로 채워졌다. 기업이 떠나면 도시는 버티지 못한다. 이 단순한 진리를 우리는 몇 번이나 되풀이해야 하는가?
2.끝나지 않는 노사 전쟁
지금의 한국은 전국적인 노사 갈등의 한복판에 서 있다. 민주노총이 주도하는 정치파업, 원청과 하청 간의 갈등, 주 4.5일제를 둘러싼 대립, 해고와 쟁의행위의 반복…, 끝나지 않는 노사 전쟁이 지속되고 있다. 노사 모두가 ‘정당한 권리’를 외치지만, 그 싸움이 장기화될 수록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의 몫이 된다.
기업은 더 이상 싸우지 않는다. 그들은 조용히 떠난다. 남겨진 것은 일자리 잃은 노동자, 불 꺼진 가게, 그리고 지역사회의 공허한 탄식뿐이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패배의 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3.무너지는 공동체의 기억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회사는 하나의 가족이나 다름없는 공동체였다. 사내 밴드부, 각종 스포츠 모임이 있었고, 퇴근 뒤 노래하고 웃던 문화가 있었다. 지금은 서로를 의심하고, 소송을 준비하는 조직이 되었다. 이익과 손해의 계산이 관계를 대신했고 공동체는 사라졌다.
노조와 사측은 서로를 적으로 여기고, 정치권은 그 갈등을 이용한다. 그 사이에서 산업의 경쟁력은 무너지고, 지역의 생명줄은 끊어져 가고 있다.
4.사라지는 도시, 멈춘 나라
강원 태백·삼척, 전북 김제·남원, 경북 문경, 경기 동두천…,이들 도시는 이미 인구 소멸의 문턱에 서 있다. 산업이 떠나면 일자리가 사라지고, 일자리가 사라지면 젊은 세대는 도시를 떠난다. 도시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고 종국에는 나라가 멈추게 될 것이다. 경제 기반 없는 출산 장려는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다.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이유는 복잡하지 않다. ‘살 만한 환경’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산업의 쇠퇴는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국가 존립의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5.이기기보다 함께 살아남는 법
노조의 투쟁이 불필요하다는 말이 아니다. 정당한 권리는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권리가 산업의 생존을 위협하는 방식으로 행사된다면, 결국 누구도 이기지 못한다.
기업과 노조, 정부는 이제 ‘공존’이라는 단어를 다시 배워야 한다. 누군가의 승리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살아남는 길을 찾아야 한다.
하고자 하는 말
산업이 떠나면 도시는 죽고, 도시가 죽으면 나라는 멈춘다. 이 단순한 진실이, 지금의 우리 사회가 외면하고 있는 경고다.
“노조가 이긴 뒤, 공장은 사라졌다.” 그 문장이 다시는 한국의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