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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식 향우, 정발 장군 호국정신 계승 헌신

정현식 향우, 정발 장군 호국정신 계승 헌신

부산광역시 초량동에서 동장으로 봉직하고 구청 총무과장 등을 역임한 후 4급(서기관)으로 승진한 뒤 퇴직한 합천(대병면 장단리) 출신 정현식(69세) 향우가 시민들에게 호국정신을 심어주는 사업에 헌신적으로 봉사하고 있어 화제가 되었다.

정현식 향우는 임진왜란 때 소서행장(고니시 유키나가)이 선봉장으로 부산을 침범한 적군을 막다가 장렬히 순국한 터에 있는 문화유산 정공단(850여 평의 제단과 비석, 초상화, 유물전시동, 사무동)을 보존하고, 부산진첨사(釜山鎭僉使) 충장공(忠壯公) 정발 장군(鄭撥 將軍)(추증(追贈) 병조판서, 의정부 좌찬성)의 호국 정신을 계승하는 사단법인 정공단보존회 이사 겸 사무국장을 맡았다. 그는 시민과 제53보병사단 126여단(충장흑의부대)과 적극 교류하며 장병들에게도 충장공의 호국정신을 계승하는 사업에 봉사하고 있다.

충장공 정발 장군은 임진왜란 최초의 전투이자 부산 3대 전투 중 하나인 부산진성 전투에서 병사 600여 명과 민간을 합친 1,000여 명, 그리고 병선 3척으로, 적군 18,700여 명과 700여 척의 병선으로 무장하여 침범한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소서행장)를 막다가 장렬히 순절한 임진왜란 초유의 조선군 장군이다. 그는 “나는 마땅히 마지막까지 이 성을 지킬 것이다”, “남아 대장부는 적을 앞에 두고 죽기로 싸울 뿐이다”라고 말했다. 전투 중 이미 화살이 모두 소진되자 비장(裨將)한 사람이 공을 끌며 도망하기를 청했을 때, 정 장군은 “사나이는 죽을 뿐이다. 감히 다시 말하는 자가 있으면 목을 벨 것이다”라고 하였다(충장공 관련 사료).

“나는 마땅히 이 성(城)의 귀신이 되리라. 떠나고 싶은 자는 모두 떠나라”고 하니, 시졸들이 모두 울며 떠나는 자 없이 싸우다 전사했고 성이 함락되었다. (충렬사지 충장공 유사 게재). [부산첨사 증 병조판서 정공 묘표, 은진 송시열 지음]

적군 소서행장도 임진왜란 때 가장 격렬하게 싸웠던 용감한 장수로 충장공을 꼽았다고 한다.

부산진성 전투는 임진왜란 최초의 전투로, 장군이 전사한 부산진성 남문 터에 임진왜란 순국영령 제단 등이 마련된 문화유산 정공단(鄭公檀)이 있다. 충장공이 순절한 날인 매년 음력 4월 14일 지자체의 지원과 보존회 자체 예산으로 사단법인 정공단보존회에서 제전을 봉행하고 있다. 그는 동래 충렬사에도 배향되어 있다.

동래 충렬사에는 제향과 춘제, 추제 등 3회에 걸쳐 제전을 봉행하고 있다.

정현식 향우는 “충장공 정발 장군의 호국 충정 정신을 널리 알려 계승해 나가고, 시민들이 이 정신을 이어받아 나라 사랑의 정신을 함양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기여하는 일이라면 당연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기자에게 밝혔다.

특히 부산을 방어하는 육군 제53보병사단 126여단(충장흑의부대)도 이 단체와 자료를 공유하고 있다. 여단은 지난해 6월 새로운 부대 정신을 정립하며, 부산을 수호하는 부대로서 임진왜란 때 부산을 지키다 순절한 충장공 정발 장군의 정신을 이어받고자 부대 명칭을 ‘충장흑의부대’로 명명했다. (충장공 정발 장군은 검은색 갑옷을 입고 전투하여 ‘흑의 장군’으로 불렸다). 봉행하는 제향에 장병들이 함께 참여했다. 정현식 향우는 “정공단보존회 이사회에서도 국군의 날 등 여단 각종 행사에 참여하여 장병들의 호국 역사관 확립을 위해 충장공 정발 장군의 호국정신을 이어 나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류재권 기자(재경향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