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합천의 기풍을 되살리자! _임재근 전 합천부군수
합천의 기풍을 되살리자!
“불심의 자비와 호국, 유학의 효제충서, 선비의 기개, 독립의 혼”

_임재근 전 합천부군수
합천의 유구한 역사와 정신적 자산 재조명하며 미래 도약 강조
합천의 뿌리 불심과 유학 그리고 선비 정신
우리 합천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 그리고 선비의 기개(氣槪)와 독립(獨立)의 혼(魂)이 살아 숨 쉬는 유서(由緖) 깊은 고장이다. 천하 명산 가야산(伽倻山)의 그윽한 품속에 자리한 해인사(海印寺)와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은 천년 세월 나라를 지켜온 호국의 요람이며, 합천읍 응봉산 연호사(烟湖寺)의 범종 소리는 민초(民草)들의 심장에 늘 맑은 기상을 길러왔다. 또한 가회 둔내 영암사지 삼층석탑 쌍사자탑이나 대양 백암(상촌) 대동사지 석가여래 좌상, 석등 등의 유물은 삼국시대부터 이 고장 사람들의 불심을 웅변해 주고 있다.
예부터 불심은 신앙을 넘어 어려울 때 서로를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었고, 고을을 넘어 나라의 운명을 바꾸는 원동력이 되었다. 대병 출신의 무학대사(속명: 朴自超)는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개국하고 도읍을 한양으로 정하는 데 큰 혜안을 발휘하였다. 이는 곧 불심이 단지 산사의 기도에 머물지 않고 새 나라의 기틀을 여는 큰 빛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역사를 수놓은 합천의 인물과 기개
이에 앞서 신라 가야금의 명인 우륵(于勒) 또한 대양 오산 출신으로 대가야(大加耶) 가실왕의 명을 받아 열두 줄 가야금을 만들었고, 후일 신라 진흥왕 대에 악성(樂聖)으로 추앙받았다. 그가 탄주(彈奏)한 탄금대(彈琴臺)가 충주에 있다. 또한, 삼국시대(서기 642년) 백제 윤충 장군이 군사 1만으로 신라를 침공한 대야성(大耶城) 전투에서 성주 김품석(金品釋)은 전의를 잃고 항복하자 했으나, 이 고을 출신 부장 죽죽(竹竹) 용석은 용감히 결사 항전하다 전사함으로써 합천인의 기개를 천명(闡明)하였다. 이로써 김춘추(金春秋)의 나당(羅唐) 군사동맹의 불씨를 지펴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학문(學文) 또한 합천에서 자라났다. 율곡면 출신 신재(愼齋) 주세봉(周世鵬) 선생은 어린 시절 고향 문림에서 학문을 닦아 유학의 기틀을 세우고 훗날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열어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賜額書院)인 소수서원(紹修書院)으로 사액(賜額) 받아 성리학 진흥에 크게 기여했다. 삼가 출신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은 “학문은 몸을 닦고 뜻은 나라를 구한다”는 실천궁행(實踐躬行)을 강학한 올곧은 학자로 명종(明宗) 임금께 “단성소(丹城疏)”를 올리는 등 선비의 기개(氣槪)를 높였고, 제자인 야로 출신 내암(來庵) 정인홍(鄭仁弘)은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의병장으로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지켜내고 구국의 선봉장으로 역할을 다하였으며 광해군 대에 영의정으로 개혁 정치를 펼쳤다.
구국의 혼으로 타오른 독립운동의 성지
이처럼 합천의 선현(先賢)들은 정의(正義)에 살고 불의(不義)에 완강히 저항하며 나라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기개(氣槪)로 애국애족의 불씨가 되었다. 근세에는 가야 출신 효동(曉東) 임환경(林幻鏡) 스님이 해인사(海印寺) 주지(住持)로 해인총림(海印叢林)을 구성해 법보종찰의 위상을 높였고, 일제하에 독립운동을 꾸준히 펼쳤었다. 퇴옹 성철(性徹; 李英柱) 스님은 이웃 고을 태생이나 출가 이후 줄곧 가야산(伽倻山) 해인사(海印寺)에서 평생을 수도(修道)에 정진(精進)하여 대한불교조계종 종정(6~7대)을 역임하였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란 법어로 분별을 내려놓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라는 가르침을 주었다. 헤진 가사 한 벌로 평생 무소유를 실천한 현대불교에서 가장 영향력 높은 스님으로 추앙받고 있다. 이 큰 스님을 배출한 성지(聖地)가 바로 가야산(伽倻山)이요 우리 합천(陜川)이다.
또한, 양산 통도사(通度寺) 방장이자 대한불교조계종 제15대 종정(宗正)인 성파(性破) 스님도 합천 야로 출신으로 평화통일을 기원하여 십육만도자대장경(十六萬陶磁大藏經)을 만들었고 “깨달음은 멀리 있지 않고 일상에 있다”라는 법어로 오늘의 불자들을 이끌고 있다. 스님의 법호 중봉(重峰)이 가리키듯 가야산의 깊고 높은 기개가 그대로 스님의 삶과 가르침 속에 서려 있는 듯하다.
이처럼 합천의 기풍(氣風)은 도도히 흘러 임진왜란(1592-1598) 때에는 왜군(倭軍)들이 곡창 전라도(全羅道)로 가는 길목을 막아 저지하고,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지켜내기 위해 수많은 의병이 궐기해 싸웠다. 의병장 정인홍, 전치원, 이대기, 박사제, 김면, 곽재우 등 남명 조식 문하 학맥을 필두로 양반, 선비, 유생, 농민이 함께 일어나 필사적으로 싸워 지켜냈다. 이를 기려 “합천임란창의사(陜川壬亂倡義祠)”에 봉안된 위패 수가 족히 120위가 넘는다.
3.1 만세운동의 들불과 숭고한 희생
이로부터 320년이 지난 1919년 일제(日帝)하에서 합천은 또다시 일어섰다. 선비의 기개와 호국 불심은 독립운동의 깃발로 뭉쳤다. 기미년 3.1 대한독립만세(大韓獨立萬世) 운동이 서울(경성) 다음으로 우리 합천에서 제일 크게 일어났다. 합천, 삼가, 대병, 야로, 묘산, 초계 등에서 들불처럼 타올랐다.
삼가장날(3.18, 3.23)의 독립만세운동은 고종(高宗)의 인산(因山)과 3.1 독립운동에 참가한 김상준, 윤규현 지사(志士)가 가지고 온 독립선언서를 등사해 윤규현, 한필동, 허동규, 한식동, 윤구현, 윤승현, 허장 등이 거사(擧事)를 계획하고 김전의, 정방철, 김달희, 임종봉이 연사로 나서 장마당에서 청중을 향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 일경(日警)의 총탄에 임종봉이 쓰러지자, 분노한 군중이 주재소와 우편소로 돌진하다가 일경의 무자비한 총탄에 배숙원 등 13명이 순국(殉國)하고 30여 명이 부상한 참으로 끔찍한 의거로 참여 인원이 1만 명이 넘었다 한다.
3월 19일과 20일 합천장날 독립만세운동 역시 대양면의 강홍렬 지사가 고종의 인산과 3.1 독립운동에 참가하고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와 합천면의 주경천, 대양면의 심재기, 심진환, 김영기 등 12명과 이계리 수암정에서 거사를 모의하고 3월 19일 합천장날에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며 장터에 나서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니 일시에 500여 명의 군중이 크게 호응해 시가지를 누비자, 합천경찰서에서 출동한 일경(日警)들이 앞장선 심재기 등 16명을 긴급체포해 경찰서 유치장에 강제 구금시켰다. 이에 격분한 심재현, 손득용, 이용선, 김영기, 추용만, 이상우, 배상기, 강상무, 강주학, 강시만, 이용수, 심재인 등이 석방 결사대를 조직해 다음날 시위대에 앞장서 경찰서로 향하니 500여 명이 삽시에 동참해 군중의 힘으로 합천경찰서 정문 앞에서 거세게 석방을 요구하자, 당황한 일경(日警)의 무도한 사격에 총탄을 맞아 김영기, 추용만, 추용소, 김호수 등 4명이 현장에서 순국(殉國)하고 이용선, 손득용, 심재기, 이용수, 배상기, 강상무, 주경천, 심재인, 심진환, 이상우, 강주학 등 11명이 부상한 대단한 의거였다. 이날 시위로 체포된 심재현, 배상기, 이용수, 이용선, 손득용 등 4명은 2년 이상 징역을 살았고 강상무는 1년 징역을 살았다. 주경천 등 16명은 모진 고문을 당하고 석방되었다.
시위뿐 아니다. 대양의 강홍렬(姜弘烈) 지사는 중국·만주와 국내에서, 박남권 지사는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잡혀 각각 1년간 옥고를 치렀다. 또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승리한다며 단말마적 기세를 떨치던 시기 일본을 다녀온 임봉상(林鳳祥) 지사는 나름 국제정세와 전황을 읽어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은 패망할 것이고 우리는 독립한다며 총동원 체제를 거부하고 강제공출에 응하지 말도록 지인들을 유도하고 다니다 체포되어 징역 6개월(1944.8.29. 수감 – 1945.3.1. 출옥)을 살았다. 그런데 수감일이 국치일(國恥日)이고 출옥일은 독립과 애국심 고취를 위한 국경일(國慶日)이라는 게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합천인의 정신과 현대의 국가 발전을 이끄는 인물들
우리 고장의 독립운동은 합천, 삼가를 비롯해 대병(권영두), 초계(노기용, 이직현), 야로 등 각지에서 들불처럼 일어났다. 합천의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은 호국불심(護國佛心)과 선비의 기개(氣槪), 민초(民草)의 기질(氣質)이 하나 되어 터져 나온 합천인의 정신(情神)이고 민족혼(民族魂)이었다. 수많은 청년이 의열단과 광복군으로 길을 나섰으며, 국외 국내서 독립운동을 한 강홍열, 김영기, 김호준, 박남권, 권영규, 정각규, 공재규, 이직현, 이계엽, 배상기, 심진환, 심재기, 강주학, 심재현, 이용선, 심재인, 주경천, 손득룡, 강상무, 박영모, 박운포 등 지사와 독립만세운동으로 투옥된 동지의 석방을 요구하다 일경(日警)의 총탄에 현장에서 순국(殉國)한 추용만, 김영기, 김호수, 강시만 지사를 비롯한 우리 고장 독립투사들은 항일(抗日)의 선봉에서 혹자는 죽고 혹자는 징역을 살고 혹자는 고문을 당한 사람이 타지에 비해 많은데, 이에 비해 국가보훈부에 등록된 합천의 독립 유공 서훈자는 104명에 불과해 유공자 발굴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하겠다.
이렇듯 합천은 불심(佛心)의 자비(慈悲)와 호국(護國), 유학(儒學)의 효제충서(孝悌忠恕), 대의(大義)에 목숨을 거는 선비의 기개(氣槪), 그리고 3.1 독립(獨立)의 혼(魂)을 오롯이 품어 왔었고, 현대는 기독교의 사랑과 봉사 정신까지 상호 융합(融合)함으로써 지역발전을 견인하고 국가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옛부터 우리 고장 선현(先賢)들은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면 승려와 선비, 그리고 서민들이 함께 일어나 누란(累卵)의 위기를 극복하고 이를 바로 세우는 일에 총총히 나섰다. 합천은 은둔하는 산골이 아니라 시대마다 애국애족의 기풍을 길러낸 살아있는 요람이고 기회의 땅이었다.
한때 합천군은 인구 20만에 육박하던 웅군(雄郡)이었고 가히 인물의 고장이라 할 수 있었다. 입법부(立法府)인 국회의원에 이원홍(1대), 김효석(1대), 최창섭(1.3.4대), 노기용(2대), 김명수(2대), 유봉순(3.4대), 정길영(5대), 이상신(5.8.9대), 변종봉(6대), 김삼상(7대), 유상호(11.12대), 권해옥(13.14대), 김용균(16대) 의원 등 13명이 있고, 출향 인사 중에도 유흥수(부산), 안경률(부산), 윤재옥(대구) 의원이 있어 총 16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하였다.
행정부(行政府)에도,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탁월한 능력으로 국가 발전을 견인함과 더불어 고향 발전에도 큰 관심을 주었고,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과학기술 발전을 이끌며 미래산업의 토대를 닦았다. 더구나, 내리 삼선 연임을 한 김혁규 경남도지사는 선진 경영행정을 도입하여 경남의 경제부흥을 일궈 낸 인물이다. 정구창 성평등가족부 차관은 경남도에서 잔뼈를 키운 인물로 장래가 더욱 촉망된다. 그리고 율곡농협장에서 제25대 농협중앙회장에 당선되어 농업 농촌 부흥을 위해 노력하는 강호동 회장도 있다. 군장성(軍將星)으로도 권영기, 김운용 육군대장과 송선용, 류제승 육군중장, 윤광운 해군중장, 정정숙 육군소장, 이환철 육군준장 등 믿음직한 나라의 간성(干城)을 배출하였다.
무엇보다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8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逝去)로 극도로 혼란한 정국을 수습하고 대통령으로 취임하여 7년 단임을 실행,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올림픽을 유치해 국위를 크게 선양한 전두환 대통령(全斗煥 大統領)을 배출한 자랑스러운 고장이 아닌가. 이렇듯 합천은 비록 산골이지만 나라와 시대가 필요로 할 때마다 유능한 인물을 배출해 국가 발전에 큰 족적(足跡)을 남긴 고장임을 자랑하지 않을 수 없다.
소멸의 위기에서 도약의 기회로
그런데, 지방자치 이후로 합천의 군세(郡勢)는 점점 위축되어 가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땅과 하늘 강과 산은 여전한데, 인구(人口)는 해마다 줄어 소멸 지역 명단 상단에 오르고 있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군민들이여! 향우들이여! 우리 합천은 옥전고분(玉田古墳群)의 찬란한 유적 발굴로 이미 삼국시대 이전부터 찬란한 문화를 누렸던 다라국(多羅國)이 있었다는 역사 깊고 영예로운 지역입니다. 근년에는 고 임판규(林判奎) 선생과 임춘지 의원 등의 집념의 소산물로 2020년 동아시아에서 두 번째 국제적 인증을 받은 “초계·적중 운석충돌구”는 매우 귀중한 자원으로 이를 잘 활용한다면 교육⋅연구⋅관광의 중심지로 크게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금년 말 개통 예정인 함양-울산고속도로, 합천호가 있음에 가능한 무두산·오도산 양수발전소 조기 건설, 2031년 개통될 남부내륙철도 합천역세권 개발, 황강변 스포츠시설 등등 우리 지역 자원(資源)이 결코 타지에 못지않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정체의 늪에서 빠져나와 미래를 열어 가야 할 때입니다. 우리 고장은 여느 곳보다 풍부한 역사적 자원과 강한 정신적 유산을 가졌습니다. 해인사의 범종 소리, 남명의 경의지학(敬義之學), 독립운동의 함성, 성철⋅성파 스님의 법문이 합천인의 가슴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불심(佛心)은 우리를 맑히고, 유학(儒學)의 수기치인(修己治人) 그리고 선비정신(情神)은 우리를 바로 세우며 독립(獨立)의 혼(魂)은 우리를 강하게 만듭니다. 이 삼대 가치를 함께 한 고을이 우리 합천이기에 우리에게는 내일을 향해 웅비(雄飛)할 힘과 희망(希望)이 있습니다. 오늘의 합천은 과거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우리 다 함께 힘을 합쳐 합천의 기풍을 되살리고 미래를 향해 도약합시다. 합천의 역사와 기풍을 이어받아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전진합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