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AI가 가져온 노동의 종말, ‘서부경남’엔 인구 분산의 기회다 _이종학 (사단법인 인구및지방소멸대응협회 부회장)
[특별기고] AI가 가져온 노동의 종말, ‘서부경남’엔 인구 분산의 기회다
_이종학 (사단법인 인구및지방소멸대응협회 부회장)

지방 소멸을 앞당기는 지자체의 모순된 ‘인재 유출’ 정책
지방 소멸의 파고가 거세지자 전국의 자치단체들은 앞다투어 출산 장려금을 올리고 현금성 지원을 늘리는 등 사활을 걸고 있다. 물론 고사 직전인 지역 경제와 인구 구조를 고려할 때 필요한 조치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모순된 행정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소위 ‘공부 잘하는’ 지역 인재들이 서울로 대학을 가면 장학금을 수여하고, 이들이 대도시에서 안심하고 공부할 수 있도록 서울에 기숙사 시설까지 제공하며 정착을 돕는다.
지역을 살리겠다는 지자체가 오히려 지역의 미래인 청년들에게 “성공하려면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가라”고 등을 떠밀고, 떠나는 것을 당연한 훈장처럼 여기게 하는 셈이다. 서울로 떠난 인재들이 일자리 없는 고향으로 돌아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결국 지방 스스로 소멸을 앞당기는 자가당착에 빠진 셈이다.
이제 지식과 정보를 얻기 위해 반드시 고향을 떠나야 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AI가 지식과 정보를 어디서든 제공하는 시대가 열리면서, 더 이상 교육 때문에 고향을 떠날 이유는 없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저출생 극복이나 떠나는 인재를 향한 박수가 아니라, 이미 밀집된 수도권 인구를 지방으로 다시 흐르게 하는 ‘인구의 전략적 분산’이다.

인구절벽, 추락 후의 생존이 아닌 ‘추락하는 순간’의 잔혹함
‘인구절벽(Demographic Cliff)’은 말 그대로 절벽 끝에서 잡고 있던 손을 놓는 순간 떨어져 죽어야 하는 생존의 위기다. 하지만 AI가 산업 전반을 장악하며 ‘노동의 종말’을 가속화하는 지금은 더욱 잔혹하다. 과거의 위기가 추락 후의 고통이었다면, 지금은 절벽에서 떨어져 땅바닥에 닿기까지 단 1초의 여유조차 허용하지 않는 속도의 위기다. 민물고기를 곧바로 바다에 풀면 환경 변화를 견디지 못하듯, 급격한 인구 감소와 고용 쇼크에 무방비로 노출된 대한민국, 특히 우리 서부경남 지역은 집단적 소멸의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
필자는 그 해답의 첫 번째가 앞서 언급한 ‘인구의 지방 분산’에 있다고 보며, 서부경남 지역이 이를 실증할 국가적 모델로서 자생력을 갖추는 것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생존 카드라고 확신한다.
통계로 본 경남 소멸의 경고등: ‘소멸 고위험’의 직격탄
최근 발표되는 다양한 통계지표와 ‘경남 소멸 리포트’에 따르면 경남의 위기는 이미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 경남 18개 시·군 중 절반 이상이 인구소멸 위험지역에 진입했으며, 특히 합천, 산청, 함양, 거창 등 서부경남 군 단위 지역은 ‘소멸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되어 존립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젊은 층이 떠난 자리를 고령 인구가 채우지 못하는 인구 역전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응급실 접근성 부족과 필수의료 인프라 붕괴, 문화예술 향유 기회의 박탈 등 ‘삶의 질’에 대한 총체적 결핍이 청년들을 수도권이라는 블랙홀로 내몰고 있다.

심리적 장벽을 허무는 단계별 정착 전략: ‘경험’이 ‘이주’가 되기까지
수도권의 청년과 장년층에게 무턱대고 농촌으로의 이주를 권하는 것은 공허한 외침이다. 도시 생활에 익숙해진 이들에게 지방은 미지의 공간이자 두려움의 대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매우 세밀하고 단계적인 접근을 통해 그들의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 첫 시작은 서부경남과 도시민 사이에 정서적 유대감을 쌓는 ‘라포(Rapport) 형성’이다. 농촌이 낙후된 곳이라는 편견을 깨고, AI, 디지털 매체를 활용하여 서부경남에서도 세련된 삶이 가능하다는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 이렇게 쌓인 호기심은 직접적인 ‘체험’으로 이어져야 한다. 팸투어나 ‘한 달 살기’ 프로그램을 통해 도시민들이 지역민과 어울리며 물리적 거리를 심리적 거리로 좁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말로 듣는 것보다 직접 경험하는 것이 훨씬 큰 확신을 준다. 이후 농촌 생활에 매력을 느낀 이들이 스스로 삶을 선택하여 연착륙할 수 있도록 주거와 활동 기반을 지원할 때, 비로소 자발적인 정착이라는 결실을 볼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는 지역을 알리는 데 적극적으로 예산을 투자해야 한다.
콘텐츠가 있는 지방: AI와 예술이 숨 쉬는 공간
단순히 공기가 좋다는 이유만으로는 사람들이 이주하지 않는다. 지방으로 이주했을 때 무엇을 하며 먹고살고, 어떤 즐거움을 누릴 것인가에 대한 답이 있어야 한다. 서부경남은 청년들이 AI를 활용해 고부가가치 콘텐츠를 생산하고, 예술가들이 집단적으로 활동하며 새로운 문화를 창조할 수 있는 거점이 되어야 한다. 디지털 유목민들이 자치단체에서 제공해주는 고사양 인프라 속에서 작업하며 자연의 여유를 누리는 ‘기술과 예술의 복합 서비스 여건’을 갖추는 것이 핵심이다.
또한, 이러한 여건을 가장 잘 알릴 주체는 현지인들이다. 특히 우리 지역의 청년들을 미디어 전문가로 교육하여, 이들이 직접 제작한 ‘지역 사용설명서’를 통해 고향의 진정한 가치를 생생하게 전달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외국인들이 다양한 SNS 채널의 콘텐츠를 통해 자연스럽게 대한민국의 농촌을 경험하는 것을 보고 있다. 수도권 인구를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일은 충분히 가능하다.

경계를 허무는 초광역 협력: 서부경남 4개 군의 연합 전선
인구 분산 전략의 성공을 위해서는 ‘지자체 간의 초광역 협력’이 필수적이다. 이제 합천, 거창, 함양, 산청은 각자도생의 길을 멈추고 하나의 ‘정주 생활권’으로 묶여야 한다. 각 군의 문화 자원과 의료, 교육 인프라를 상호 보완적으로 공유하는 ‘서부경남 통합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예를 들어, 각 지역이 AI 창작 거점, 힐링 주거 중심지, 교육·의료 허브 등으로 역할을 분담하고 ‘통합 워케이션 패스’나 ‘공동 주거 단지’를 조성한다면, 도시민들에게 단일 군 단위가 줄 수 없는 풍부한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다. 이는 예산 낭비를 막고 수도권 집중에 맞설 수 있는 강력한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낼 것이다.
결언: 준비된 지방만이 살아남는다
AI 도입으로 일자리 구조가 급변하면서 서울과 인근 광역도시에서 ‘여유로운 삶’을 꿈꾸는 워케이션과 이주 수요가 넘쳐날 것이다. 누가 먼저 이들을 적극적으로 우리 지역에 정착할 대상자로 바라보고 선제적으로 기반을 마련하느냐에 서부경남의 운명이 달렸다. 노동의 시대가 지고 지능의 시대가 오는 지금, 서부경남은 단순히 ‘버티는 지방’, ‘인구절벽’의 벼랑 끝에 매달린 지역이 아니라 대한민국 인구 문제의 해법을 제시하는 ‘인구 분산의 전초기지’로 거듭나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 결국 준비된 지방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핑백: “합천 출신 이종학 부대변인, 10주간의 기고 통해 ‘지방 시대’ 실천적 이정표 세운다” – 합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