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합천의 20년 숙원 풀었다… 철도 착공 뒤엔 강만수 전 장관의 ‘고향 사랑’ 있었다
합천의 20년 숙원 풀었다… 철도 착공 뒤엔 강만수 전 장관의 ‘고향 사랑’ 있었다
-기고자: 강원수 재구향우(대양장학회 이사장)

합천의 숙원사업 그 이면에 담긴 애향심과 헌신
나는 대구와 합천을 오가며 사업을 하는 대양면 향우로서 지난 13년간 합천신문을 한결같이 애독해 왔다. 신문이 배달되는 날이면 아침 일찍 출근해 8면 전면을 꼼꼼히 살핀다. 바쁜 사업 일정에 다 읽지 못하는 날에는 중요한 기사를 따로 오려 두었다가 여유가 생길 때마다 꺼내 읽는 것이 나의 오랜 일과다.
거처는 대구에 두고 있으나 매주 금요일이나 토요일이면 아내와 함께 어김없이 고향 합천을 찾는다. 선영을 돌보고 농사일도 거들며 마을 사람들과 두런두런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공휴일이 훌쩍 지나간다. 길흉사가 있을 때면 직접 참석해 정을 나누고, 부득이한 경우 직원을 통해서라도 꼭 마음을 전하려 애쓴다. 50만 재외 향우 중에서도 나만큼 고향 땅을 자주 밟는 사람도 드물 것이라 자부할 만큼 나의 발길은 늘 고향으로 향해 있다.
오늘 이렇게 펜을 든 것은 20여 년간 우리 합천의 간절한 숙원이었던 남부내륙고속철도 사업이 지난 2월6일 드디어 기공식을 하고 첫 삽을 떴기 때문이다. 일개 소시민이 거대한 국책사업에 대해 기고하는 것을 생경하게 여길 수도 있겠으나, 이 사업을 본 궤도에 올린 숨은 주역이 바로 합천 출신의 강만수 전 대통령경제특보라는 사실을 꼭 알리고 싶다. 그는 기획재정부 장관과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을 역임하며 대한민국 경제의 기틀을 닦았고, 현재도 대기업 총괄고문으로서 왕성하게 활동 중인 합천의 인물이다.
나와 강 전 장관은 집안간으로 각자 객지 유학을 한 탓에 청년기에는 교류가 없었으나, 그가 부가가치세 제정으로 분주하던 1971년 초 서울 광화문 사무실에서 만난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이후 우리는 형제와 다름없는 관포지교의 정을 나누며 수십 년 세월을 함께해 왔다.
최근 언론을 통해 김윤철 합천군수와 국토교통부 장관, 박완수 경남지사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보며 강 전 장관은 분명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대형 국책사업을 입안하는 과정에서 함께 고생한 부하 직원들을 떠올렸을 것이며, 고향을 위한 약속을 마침내 지켜냈다는 환희 속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을 것이다.
이는 곁에서 직접 지켜본 사람으로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실이다. 나는 이 공사와 관련해 합천군과 강 전 장관 사이에서 무수한 심부름을 도맡아 했다. 특히 이명박 정부 시절, 합천군민의 염원을 전달하는 전령 역할을 수행하며 그의 남다른 애향심을 확인했다. 그는 고향을 방문할 때마다 김윤철 군수를 만나 지역 현안을 묻고 도울 방법을 찾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김 군수 또한 선배에 대한 예우를 넘어 고향 발전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어 늘 든든한 믿음이 간다. 강 전 장관이 정부에 몸담을 당시 함께했던 관료들이 여전히 중앙 부처의 핵심에 있기에, 작은 시골 자치단체인 합천군이 이들과 연계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매우 현명하고 당연한 행보다.
합천의 미래를 여는 철길 군민의 단합으로 완성하자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앞으로 몇 년간 군수가 든든한 교두보가 되고 합천군민이 철통같이 뭉쳐 협력할 때, 합천은 전국 어느 지자체보다 앞서나갈 것이다. 그리하여 훗날 후손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했느냐고 물을 때, 그들의 부귀영화를 위해 산을 허물어 들판을 만들고 빌딩을 세워 자손만대로 물려줄 터전을 일구었노라고 떳떳이 말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단합해야 한다.
*강원수 향우는 1952년 합천군 대양면 출신으로 대구지산 신용협동조합 이사장과 신협중앙회 법률개정추진위원장 · 이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대구에서 (주)창재건설, (주)원재건설 등을 운영하고 있다. 남다른 애향심으로 30여 년간 고향 마을 지원, 장학금 기탁 등 나눔을 실천해 왔으며, 이러한 공로로 2021년 ‘자랑스러운 합천인상’ 대상을 수상했다. 또한 합천군 고향사랑기부제 제1호 기부자로 이름을 올리며 고향 사랑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대양장학회 이사장으로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