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의미 – 노덕경 수필가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희미해진다. 어제에 있었던 일도, 손끝에서 흩어져 버린다. 시간은 우리를 앞으로 밀고, 기억은 서서히 달아나 버린다.
요즘은 기록의 시대다. 기록은 단순한 메모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흔적을 남기는 일이요, 나 자신이 세상에 잠시 머물렀다는 증거다. 언어의 말은 바람에 흩어지지만, 글은 남는다. 기록은 침묵 속의 목소리이며, 시간이 흘러도 나를 대신하여 존재하는 또 하나의 나다.
세월이 너무나 빠르다. 개인의 일상생활부터 가족사, 지역, 단체와 국가 단위까지 기록의 세상과 가치로 더없이 넓고 깊어지고 있다.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시대의 역사요, 문화다. 과거의 역사와 새로운 관점에서 새로움이 나타난다.
어릴 적, 방학 숙제로 과목의 과제와 일기 쓰기를 꼭 해야 했었다. 일기 쓰기는 ‘왜’ 써야 하는지? 가르쳐주지 않았다. 방학 때는 죽마고우들과 산과 들에 골목길에서 놀이에 심취하다 보면 해가 서산에 기울었고, 저녁 먹고는 녹초가 되어 숙제도 일기 쓰기도 미루었다.
난중일기는 이순신 장군의 일기다. 1592년 선조 25년 5월 1일 전사하기 전까지 매일 쓴 7책 필사본이다. 조선 14대 선조실록에는 임진왜란이 끝난 뒤인 1604년에 전공 심사에서 이순신, 원균, 권율이 나란히 선무공신 1등급에 책봉되었다.
이순신은 해군 전술의 기술인 거북선을 건조하여, 바다 물의 흐름을 이용하여 승리로 이끈 불굴의 해전에 승리했었다. 전쟁 중, 하루의 전황을 낱낱이 기록했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 어머니를 걱정했고, 아내를 그리워했고, 자식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히 담겨있다. 당시 장수의 심정이 담긴 사실에 대하여 난중일기와 유성룡의 징비록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면 오늘의 영웅은 없었을 것이다.
시대의 격변기마다 그를 영웅시하여 그가 태어난 고향, 전황이 있었던 곳곳마다 동상과 기념관이 들어서고 화폐에도 새겨지고 세종로에도 동상도 세워졌다. 그러나 원균, 권율 장군은 기록이 없어 국민에게 서서히 잊어져 가고 있다.
한 시대의 역사를 주름잡던 영웅도, 한 가정의 소시민도 세월의 뒤안길에서 그 빛은 퇴색되고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사이고, 가야 할 길목에서 자신의 모습을 뒤돌아보며 무엇인가 삶의 흔적이 필요하다.
오늘 아침 운동하려 나서니, 노랗게 물든 낙엽이 거미줄에 걸려 있었다. 잠시 걸음을 몸 취, 바라보니 바람이 불 때마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한때는 저 낙엽도 푸르렀겠지. 낙엽도 사라지는 순간에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오늘 아침에 한 장의 낙엽이 내게 가르쳐 준다.
하루의 작은 사건이나 느낌을 하나 고르고, 그 속에서 생각이나 변화에 깨달음을 담고, 마지막 문장에 울림을 남기면 된다. 오늘 하루를 기억에서 남기도록 하자. 일기 쓰기는 자아 성찰과 정서 함양, 기억력 향상, 글쓰기로 매일의 생각을 기록하는 일기의 중요성 일깨워 준다.
호사유피 인사유명(虎死留皮 人死留名)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삶의 흔적을 남기는 일을 소중히 여겼다는 이야기다. 이젠 노후 생활을 준비의 하나로 일기 쓰기와 글쓰기를 하고 있다.
세상에 그냥 왔다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분신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깊이 심어주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목숨은 언젠가는 사라지지만, 자신의 분신 分身은 영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땅에 태어나 삶의 발자취를 남기고 가야 하지 않을까? 자기 적성에 맞는 것을 선택하여 일기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생각하는 글을 남기고, 서예를 배워 자녀들에게 가훈이라도 한 장 남기고 떠나야 하지 싶다. 오늘 내가 남기는 한 줄이 언젠가 누군가의 마음을 비칠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자녀와 친지, 이웃에게 무엇을 남기고 떠날까? 생각을 거듭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