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허가 건물을 철거하다
이호석
논설위원
10월에 들면서 행사, 모임 등이 잦아 조금 바빴다.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 일주일여 만에 집 뒤 텃밭엘 나갔다. 텃밭에는 봄부터 여름내 반찬거리를 제공하던 채소들의 모습은 사라지고, 새로 심은 가을 채소와 겨울나기 채소들이 파릇파릇 자라고 있고, 그 주위를 막 단풍이 들기 시작한 살구나무 한 그루와 누른 잎에 주황빛 감들이 듬성듬성 달린 감나무 네 그루가 제법 싸늘한 아침 날씨에 움츠리며 서 있다.
그런데 며칠 나가보지 않은 사이에 집 뒤 텃밭에 무허가 건물(거미집) 수십 채가 지어져 있었다. 나무 위 건물들은 영롱한 아침이슬이 햇빛에 반짝이며 마치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예쁘다. 그러나 아무런 계획성 없이 막무가내로 지어진 무허가 건물들이라 내가 다니는 밭골 길, 곳곳을 가로막고 있어 기분을 잡치게 했다. 잠시 물러나 무허가 건물 철거 작전을 세운 뒤 대빗자루를 찾아들고 나가 닥치는 대로 무허가 건물을 철거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알을 품어 배가 볼록한 건물주들이 엉금엉금 기어 나와 나에게 항의를 했지만, 나는 들은 체도 않고 철거작업을 서둘렀다. 여름 내내 처마 밑과 집 주변 구석구석에서 집을 짓고 살면서 나를 곁눈질하며 봐왔을 터인데, 이처럼 악랄한 줄은 미처 몰랐을 것이다.
여름내 집 주위 공터마다 무허가 건물을 수시로 지어도 못 본 체하던 집주인이 추위가 닥쳐오는 이때 이렇게 매정하게 건물을 부술 줄이야 알았겠는가. 땅으로 떨어진 놈들이 계속 항의를 하였지만, 나는 들은 척도 않고 대빗자루로 무자비하게 끝까지 해치워 버렸다. 그들의 항의에도 일리가 있다. 우리 집은 앞뒤가 텃밭과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여름 내내 곳곳에 그들이 집을 지었고, 거기에 모기 같은 작은 해충들이 걸려 있어 고소하게 생각하며, 나무라지 않고 내버려 두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건 그때의 일이고, 당장 내가 감을 따고 채소를 가꾸는 데 지장을 주는 무허가 건물을 그대로 둘 수 없었다.
이렇게 무허가 건물을 사정없이 철거하면서, 문득 내가 공직생활을 하면서 비슷한 악행(?)을 한 일들이 떠올랐다. 나는 고향의 군청과 읍사무소에서 30여 년간 공직생활을 하면서, 건설 업무를 담당하는 기술직 공무원으로 건축 관련 업무를 비롯하여 하천, 도로 관리 등 업무를 수행하였다. 이러한 업무 중에는 불법 건축물철거, 노점상 단속 등 대개가 민원인과 충돌하는 일이라 여간 성가시고 어렵지 않았다. 그중에도 무허가 건축물 발생 현장에 나가 이를 중단시키고 조치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 물론 이러한 일은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동료 직원들과 함께 나가지만 담당자인 내가 항상 앞장서야 했기 때문에 고충이 더 심했다. 현장을 나가보면 정말 사정이 딱해 오히려 도와주고 싶은 집도 있고, 또 고향이다 보니 평소 잘 아는 지인들도 있어 못 본체 하고 그대로 두고 싶을 때도 있었으나 공직자로서 직무를 회피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이러한 일은 대개가 인근 주민 신고나 고발로 시작되기 때문에 끝까지 처리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당하는 사람들 자기들의 잘못은 전혀 인정하지 않고 나에게 온갖 험담과 욕설을 하기도 해, 정말 공직을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리고 노점상 단속도 그랬다. 시내 큰 도로변의 인도에 수시로 올망졸망 채소 등을 늘어놓고 판매하는데 그 사람들을 강제로 다른 곳으로 내쫓아야 했다. 특히 매일 오후 4~6시경 저녁 찬거리를 준비할 시간이 되면 제자 골목 앞 도로변에는 채소 시장을 방불케 하므로 이 시간만 되면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했다. 노점상 단속 역시 대개가 통행에 불편을 겪는 주민들이나 인접한 가게 주인들의 전화고발 때문이므로 나가서 조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이러한 단속 여부를 상부에서 자주 확인하였고, 지적을 받으면 문책을 받거나 불려가 꾸중도 들어야 했다.
이 두 가지 일이 모두 어려웠지만, 당시 담당자로서의 생각은 노점상은 시내 좁은 보도에서 많은 통행인에게 불편을 줄 뿐 아니라 교통사고 위험이 있어 공익적 명분이 컸지만, 무허가 건축물은 대부분이 자기 집안에서 이루어지는 일로 남에게 별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에 단속의 명분이 덜한 것 같았다. 퇴직 후 지자체 기초의원 선거에 출마하였다가 보기 좋게 낙선하였는데, 공직생활 때 그러한 단속을 당한 사람들의 비난도 큰 요인이 되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집 뒤 텃밭의 무허가 건물 철거는 너무 쉬웠다. 큰 저항 한번 받지 않고 마무리하였다. 대빗자루 끝에 추풍낙엽처럼 떨어지는 거미들이 좀 불쌍했지만, 감도 따야 하고 채소밭도 관리해야 하는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양해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놈들의 무허가 건물 철거로, 별로 즐겁지 못했던 공직생활 한때의 추억을 떠올린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