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군 행정동우회원 단종의 유배지 영월을 찾아서 (2)
이병생
합천문화원향토사 연구소장
세월이 흐른 뒤 영월에 부임하는 군수들이 줄줄이 죽는 괴이한 일이 발생했다. 누구도 영월군수로 오려고 하지 않았는데 ‘박충원’이라는 사람이 용기를 내어 부임했다. 어느 날 박충원의 꿈에 단종의 혼령이 나타나 산속에 묻힌 사실을 알려주었고, 그곳을 수색한 결과 단종의 시신이 발견되어 봉분을 정성스레 조성했다. 그 후로 영월군수가 변을 당하는 일이 없어졌고 영월 땅도 평안했다고 한다.
중종 이후 조정에서 단종의 제사와 무덤 조영에 대한 의견이 나와 선조 13년(1580년) 김성일, 정철 등의 장계로 영역을 수축하고 상석, 표석, 장명 등 망주석을 세웠다. 숙종 24년(1698년)에는 단종을 복위시켜 그의 무덤을 장릉이라 했다. 죽어서도 한을 풀지 못했던 단종이 숙종에 의해 241년 만에 제자리를 찾은 곳이다. 다시 발걸음을 옮겨 청령포를 찾았다. 영월군 남면 광천리 남한강 상류에 위치한 단종의 유배지도 2008년 12월 국가지정 명승 제50호로 지정되었다.
선착장에서 배를 타면 청령포까지 3분 남짓 걸린다. 맑은 강물과 빽빽하게 늘어선 소나무가 유배지가 아닌 유원지 같은 느낌을 준다.
어디까지나 청령포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이곳에 갇혀 꼼짝할 수 없었던 단종에게는 그야말로 창살 없는 감옥과도 같았을터, 배에서 내려 소나무 숲에 발을 디디면 단종을 따라온 궁녀와 관노가 생활하던 행랑채가 보인다. 그 옆에 단종어소가 있다.
단종어소는 육간대청처럼 큰 기와집이다. 유배생활을 하던 단종이 이처럼 좋은 집에서 기거했다는 것이 어쩐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마도 홍수로 떠내려간 건물을 2000년에 새로 지으면서 제대로 된 고증없이 올린 느낌이다.
단종어소 방안에는 단종의 유배생활을 짐작하게 해주는 인형과 물품이 전시되어 있다. 단종어소 앞에 ‘단묘재본부시유지’라는 글자가 새겨진 단묘유지비가 있으며, 담장 밖에는 단종어소를 향해 절을 하듯 굽은 모양새가 눈길을 끈다.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 지금의 장릉에 묻은 엄흥도의 충절을 기려 ‘엄흥도소나무’라고 불린다.
단종어소를 나오면 수령 600년으로 추정되는 관음송이 웅장하게 서 있다. 키가 30m에 달하는 이 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소나무 중 가장 키가 크다. 단종의 비참한 모습을 보고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다하여 볼관(觀), 소리음(音)자를 써서 관음송이라 이름 붙였다.
뒷산 계단을 따라 오르면 단종이 정순왕후를 그리며 막돌을 주워 쌓아 올렸다는 망향탑이 층암절벽 위에 애처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단종이 유배생활의 한을 달래기 위해 자주 오르던 노산대도 볼 수 있다. 계단을 내려오면 “동서로 300척, 남북으로 490척은 왕이 계시던 곳이니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쓰인 청령포금표비가 있다.
다시 오는 길에 한반도 지형 명승지를 찾았는데 국가지정문화제 명승 제75호인 한반도 지형은 삼면이 바다인 우리 땅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풍경으로 서강 변에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다. 강을 끼고 동쪽은 높은 절벽에 나무가 울창한 백두산, 남쪽으로 포항의 호미곶과도 같은 산과 곶이 오묘하게도 자리하고 있다. 계획했던 대로의 일정을 모두 끝내고 오후 늦게 귀가 했지만, 오늘 영월을 찾은 것은 단종의 유배생활을 마음속으로 그려 보는 하루가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내년에는 더 좋은 유적지를 찾아 갈 것을 약속하며 아무런 문제없이 유익한 하루를 보낸 것 같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