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뽀|최덕규 가야농협조합장 퇴임에 즈음하여-이성동
최덕규 가야농협조합장 퇴임식이 지난달 28일 오후 2시 가야면 가야체육관에서 허식 농협중앙회 부회장을 비롯한 임원 및 70여명의 전국 농협조합장과 하창환 군수, 문준희 전 도의원, 조삼술 군의회 부의장, 박홍제, 박중무, 배몽희 의원 등 지역기관장과 주민 등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히 열렸다.
가야면과 야로면 조합원을 비롯한 지역주민들을 초청하여 정오부터 떡국과 돼지고기, 술과 음료 등 푸짐한 음식을 대접하는 잔치마당이 행사장 밖 주변에서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열린 이날 행사는 합천예총 황가람회 백남극 선생의 감미로운 색소폰 연주로 퇴임식 막을 열면서 먼저 포상 순서로 가야농협 초대 정상우 조합장과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의 감사패, 하창환 군수의 공로패를 비롯하여 가야농협이사회장, 가야농협 영농회장, 부녀회장, 실버대학동창회장, 여성대학동창회장 등의 감사패 수여와 축하화환 증정, 강석진 국회의원이 보내준 축전낭독으로 식장축하분위기가 시작부터 화기애애하게 달구어졌다.
허식 농협중앙회 부회장은 치사에서 최덕규 조합장이 39세의 젊은 나이로 민선1기 조합장을 시작으로 7선 조합장과 세 차례 농협중앙회 이사를 역임하면서 파프리카 영농과 동물병원을 개설하고 직원보다 항상 먼저 출근하여 근면 성실한 모습을 직원들에게 모범으로 보였고, 주말과 공휴일 무휴의 열린 조합 운영으로 가야농협운영을 선도하면서 전국 최우수 농협을 이끌었다고 높이 평가했다.
이어진 하창환 군수의 격려사에서는 1914년 합천이 초계와 삼가 3개군을 통합한 이래 전국의 최고로 많은 농업지도자들이 합천을 방문한 것을 경탄하며 환영한다는 서두 환영인사를 하고, 최덕규 조합장이 2011년 저술한 “길은 만들어가는 것이다”라는 책 제목처럼 1973년 1월 간판만 있던 가야농협을 전국 최고의 조합으로 만들며 그의 인생도 그렇게 만들어갔다고 칭송하고 가야농업의 생산과 소득, 복지향상을 위한 공동체 생활의식 함양을 리더십으로 지역민의 사랑과 신뢰를 한 몸에 받은 그의 그러한 열정과 신뢰가 지역에 오래 남을 것이며, 또한 그의 인생이 44년 올곧게 지켜갈 수 있도록 성원해주신 지역 농민들에게도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단상에 오른 최덕규 조합장은 퇴임사에서 1973년 가야농협 창립 시 지역농협 공채 1기로 입사하여 퇴임하는 이날까지 44년 동안 근속하면서 가야농협이 자기의 삶이자 인생이고, 하늘이 맺어준 인연으로 생각하고, 조합원과 동고동락하며 가야농협의 발전을 위해 몸을 바쳤다고 술회하면서 감회에 젖었다. 차분하고도 잔잔한 목소리로 15분 여 퇴임사를 읽어 내려가면서 감정이 북받칠 때마다 울먹여 청중들의 격려박수도 받았다.
최덕규 조합장은 1950년 가야농협과 가까운 가야면 해인사 자락에서 태어나 1973년 농협공채 1기로 가야농협에 입사했고, 1990년 민선 가야농협조합장으로 선출되어 평생을 가야농협과 농민들을 위한 삶을 살아갔다. 민선 1기 가야농협조합장에 취임하던 때는 헛간이나 다름없었던 지금의 해동이발관 자리에 두 개의 책상을 둔 사무소에서 직원 5명과 함께 출자금을 조성하기 위해 나락과 보리 등 농민의 생산물을 거두어 리어카를 직접 끌고 다녔다고 한다. 그 당시 재정과 사업이 전무한 무일푼의 조합을 이끌면서 신용사업을 시작으로 경제 사업을 일으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으나 중도에 사업실패로 난관에 처하기도 했다. 그러나 민선 1기 조합장에 당선되면서 젊은 패기로 재도전하여 파산 직전에 몰렸던 조합을 불과 5년 만에 다시 일으켜 세워 농협 최고의 상인 ‘총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행정소송까지 불사하며 농협 최초로 동물병원을 개설하여 축협전문 영역이었던 동물병원 운영을 농협에서도 운영도 할 수 있는 시원(始源)을 마련하기도 했다. 365일 문을 여는 ‘열린 농협’을 전국 최초로 실현하여 지역민에게 공휴일 편의를 제공하고, 여성대학과 실버문화대학을 개설하여 문맹의 노인들에게 배움의 한을 풀어주기도 했다.
지역의 특성을 이용한 친환경 황토브랜드 사업을 성공적으로 정착시켜 합천 가야의 명성을 전국에 알렸고, 불모지 가야면 마장지역의 땅을 개간하여 파프리카 대규모 생산지를 조성하고 생산된 파프리카를 전량 일본에 수출하게 함으로써 산간벽촌 농가에 고소득을 창출하는 뛰어난 사업수완과 리더십을 발휘하였다. 그러한 일련의 사업들의 성공을 바탕으로 농산물 저장과 유통에 필요한 시설도 확대시켰다. ‘농산물 산지 유통센터’와 대단위 ‘하나로마트’를 신축하고, 청사도 새롭게 단장하여 도시 조합에 버금가는 ‘가야농협 타운’을 건립하여 전국 최우수 조합을 만들었다.
만일 그에게 항간에서 떠도는 부실운영이 없고 그 기록계정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실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것이다. 황무지에서 옥토를 일구어가는 뉴프론티어의 정신을 발휘하여 시련과 난관을 극복하고 드디어 전국 최우수의 농협이라는 금자탑을 이루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신화를 만들기까지는 숱한 애로와 험란, 그리고 정신적 고통이 따랐다고 한다. 파산 직전의 상태에서 초대 조합장에 취임하여 조합 정상화를 추진할 당시, 신뢰보다는 불신을 받았던 나날들, ‘밤길 조심하라’는 협박, 흉기를 들고 조합장실에 들어와 위협을 받기도 했고, 파프리카 마을 조성 시에는 실패할 사업을 밀어붙인다고 손가락질 받던 시간들, 가야농협타운 추진과정에서도 격려보다는 비난, 농협통합에 대한 반대와 유언비어로 가슴 아팠던 일들,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느껴왔다고 술회했다.
퇴임사 말미에서 그는 지금까지 자신과 함께 해준 가야농협 임직원과 조합원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오늘의 자신이 있게 된 것은 ‘농토를 내 몸같이 여기고 공부하라’는 부모님의 가르침의 덕이었고, 평생 농협일로 가정을 돌보지 못한 긴 세월동안 자신을 대신해서 가정을 꾸려가며 말없이 내조해준 아내와 무탈하게 성장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해준 자식들에게도 고맙다고 말했다. 자기의 남은 소망은 순정한 농민들의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면서 한국농협의 발전을 위해 여생을 바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그는 그동안 가야농협장 직무를 수행하면서 한편으로는 농협중앙회의 이사와 감사위원, 개혁위원, 이사협의회장, 사업구조개편중앙위원회공동위원장, 농협전국APC협의회장, 농협파프리카 수출협의회장 등 중책을 역임하며 한국농협개혁에 앞장서왔다. 그의 좌우명은 “평생 흙에서 살고 흙에서 죽는다”이며 가족으로는 막내아들이 KDI(한국개발연구원) 연구원이며, 며느리는 치과의사이고, 큰딸은 공군 중령으로 현재 미국에 유학 중에 있는 다복한 집안이다.
저서로 2011년 저술한 “길은 만들어 가는 것이다”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