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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의 관료등용을 보면서 – 이병생

이병생 논설위원

우리나라는 현재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후 정부의 내각을 꾸리기에 한창이다. 이미 지명된 관료들에게는 임명장을 받기도 하고 시험대에 올라 청문회 선상에서 평가를 받기도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인사등용은 대 탕평정책을 실시한다고 호언장담한 상태다. 그래서 본인은 영남사람이니까 국무총리는 호남사람을 등용하겠다고도 하였고, 여당·야당을 비롯하여 골고루 그 위치, 그 자리에 맞는 인재를 등용하겠다고 하였다. 끝까지 지켜보아야 할 일이지만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필자는 500년의 역사를 가진 조선왕조 스물일곱 왕 중에서 가장 정치를 잘하여 태평성대를 이루었다는 세종대왕을 생각해 보았다. 세종대왕은 어떻게 하여 그렇게 정치를 잘 할 수 있었을까? 원래 세종대왕은 어릴 때부터 “머리가 총명하고 학문에 독실하며 정치하는 방법도 잘 안다”면서 세자에 책봉됐다. 그래서 태종의 뒤를 이은 세종은 조선 역사상 가장 훌륭한 유교정치와 찬란한 민족 문화를 꽃피웠을 뿐만 아니라 후대에 모범이 되는 성군으로 기록되었다.
세종대왕은 태종이 이룩해 놓은 왕권의 안정을 바탕으로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전반에 걸쳐 기틀을 확립한 시기였다. 집현전을 통해 많은 인재가 배출되었고, 유교정치의 기반이 되는 의례제도가 정비되었으며, 다양하고 방대한 편찬사업이 이루어져 문화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또한 훈민정음의 보급, 농업과 과학기술의 발전, 의약기술과 음악 및 법제의 정치, 공법의 제정, 국토의 확장 등 모든 분야에 걸쳐 민족국가의 기틀을 확고히 다졌다.
세종은 일찍이 건강이 좋지 않았고, 젊은 시절부터 소갈병(당뇨병)을 앓고 있었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잘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인재등용을 잘하였던 결과라고 생각된다.
왕이 아무리 뛰어난 자질과 인성을 지녔다 하더라도 그 왕을 보필하고 이끌어줄 신하가 없다면 왕도정치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세종시대는 세종이라는 마부와 황희와 맹사성이라는 두 마리 말이 끌고 가는 쌍두마차에 비유할 수 있다. 이들은 둘 다 철저한 선비이자 뛰어난 재상이었고 관리의 모범이 되는 청백리였다. 조선사를 통틀어 황희와 맹사성에 비견할 만한 뛰어난 재상이 또 있을까? 이들은 세종시대의 정치적 안정과 문화적 융성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황희가 분명하고 정확하고 강직했다면, 맹사성은 어질고 부드럽고 섬세했다. 또한 황희가 학자적 인물이었다면, 맹사성은 예술가적 인물이었다. 그래서 황희는 주로 병조 등 정확성이 필요한 업무에 능했고, 맹사성은 예조, 공조 등 유연성이 필요한 업무에 능했다. 이들의 이러한 다른 일면은 세종의 왕도정치 구현에 크나큰 도움이 되었다. 세종시대를 성종시대와 더불어 조선 역사상 가장 영화롭고 안락한 시대로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또한 세종시대에 과학혁명을 기술적인 측면에서 주도한 사람은 단연 장영실이었다. 세종의 과학적 열정이 아무리 대단했다 하더라도 장영실 같은 인물이 없이는 그것을 현실화 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세종은 조선시대가 사대부 중심의 사회였던 때에도 천민출신인 장영실을 과학측면에 뛰어난 수재였기 때문에 등용하였던 것이다. 세종대의 빛나는 업적 중에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당시까지 산만하게 흩어져 있던 음악체계를 바로 정리할 수 있는 음악의 귀재 박연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박연은 조선시대 최고의 음악 이론가였다. 조선의 음악을 최고의 경지로 끌어올린 사람이 박연이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세종시대 영화를 가능케 한 가장 근원적인 요인은 경제적 안정이었다. 당시의 사회가 농경사회였던 만큼 경제적 안정은 곧 농업과 기술의 발전을 의미한다. 이 두가지 요소의 발전은 이에 관한 실용 이론서의 간행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 대표적인 책이 「칠정산 내·외편」과 「농사직설」이었다. 이 농사직설은 정초가 집필하여 만듦으로써 실용적인 농학서가 됐다.
튼튼한 국방력 없이 국가의 안정을 기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세종시대의 영화 역시 예외는 아니다. 세종시대의 국방을 담당하였던 대표적인 일물은 대마도를 정벌하여 왜구의 노략질을 일소시킨 이종무와 육진을 개척하여 변방의 안정을 정착시킨 김종서였다. 이들 두 사람은 서로 30년의 격차를 두고서 이종무는 전반기, 김종서는 후반기의 국방을 도맡았다.
결론적으로 보면 세종의 주위에는 정치적 안정을 이끌었던 황희와 맹사성이 있었고, 과학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장영실이 또한 음악분야에서는 박연이, 농사분야에는 정초가, 국방을 튼튼히 하는데 이종무와 김종서가 있었으니 그렇게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나 세종은 대탕평을 이룩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천민출신인 장영실을 등용했고, 황희는 양녕대군을 폐위하는데 반대했던 사람이고 또한 정초는 자기를 따르지 않던 사람이다. 옛말에 정심경단(井深綆短)이란 말이 있다. “우물은 깊은데 두레박 줄은 짧다”란 말로서 사람의 역량이 모자라 맡은 바 직무를 감당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그릇의 크기에 따라 쓰임새가 각각 다르듯이 사람도 국량에 따라 그에 걸맞은 일을 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어느 시대나 인재가 모자란 때는 없었다. 단지 임용권자가 인재를 얼마나 잘 골라서 적재적소에 안배하느냐에 따라 치세(治世)도 되고 난세(亂世)도 된다. 태평성대란 새들이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물고기는 물속을 마음껏 헤엄쳐 다니듯이 개개인의 역량을 도처에서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사회를 말한다.
옛날 농경사회에서도 쥐를 잡는 일은 고양이에게 맡기고 새벽을 알리는 일은 닭에게 맡겼듯이 각자의 장점과 역량에 따라 적절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자리 배치가 되어야 하였다.
어쨌든 현 정부에서는 정말 그 위치에 맞는 적임자가 임명되어 시끄러운 세상에서 평화롭고 살기 좋은 태평성대의 시대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참고문헌 : 조선왕조실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