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야의 힘은 야로 야철(冶鐵)에 있었다 (1) – 이성동
인류역사를 변동시킨 원동력은 철(鐵)의 기술이었다. 돌보다 단단하고 청동보다 강한 철의 사용은 인류문명을 혁명적으로 발전시켜 이제까지 인류 역사에서 군사 및 경제생활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친 물질이었다는 것은 이미 주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삼국과 병존하면서 철을 소재로 해상무역을 하며 경제적, 군사적으로 강성해진 전기 가야국 맹주 격이었던 김해의 금관가야가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남정(南征)으로 해체되고 이어서 대가야가 후기 가야연맹의 실질적인 맹주국으로서 지역연맹체를 형성하고 4세기 합천 다라국과 결합하여 5세기 거창, 진안, 장수, 남원, 구례, 순천, 여수 등지의 지역을 장악하여 맹주권을 확대해나가는 동시에 남제(南齊)에 사신을 파견하고 일본과 대외교역을 통해 선진문물을 전달하면서 금관가야보다 오히려 150년 이상 번영하며 강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야로를 중심으로 한 주변의 철산지 확보와 가야 철인(鐵人)들의 고대 제철기술의 지혜와 장인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철인들의 장인정신이 면면히 이어지고 모아져서 오늘날의 세계적인 대기업 포스코를 이루는 토대가 되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소중한 문화유산이 있어도 현장에 와서 직접 보고 그 가치를 체험하지 않으면, 아무리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지 않고 방치해 두면 보배가 되지 않는 것과 같다. 철을 생산하고 불매로 그것을 무기와 농기구로 제작하여 이용함으로써 강성한 대가야의 힘의 원천이 되었던 야로는 조선 세종 때 철을 매년 9500근을 국가에 세금으로 바칠 정도로 철을 많이 생산한 고장이다.
야로는 해인사를 찾는 관광객이 반드시 경유하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 야로야철지 개발사업은 이미 가야문화권개발사업으로 포함시켜 승인되었지만, 예산지원이 없어 일시 중단된 상태에 있다. 그러던 야로야철지개발사업이 앞으로 곧 시행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지난 6월 1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한 문재인 대통령이 모두발언 말미에 꺼낸 말이 가야사(伽耶史) 복원 이야기였다.
야로(冶爐)의 이름이 원래 적화(赤火)인 것을 생각하면 우리나라 근대화의 요원한 불길이 꺼지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 포항제철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1950년대 6.25전쟁을 겪으며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였던 한국이 오늘날 세계 10위권의 경제부국으로 부상(浮上)할 수 있었던 모티브는 산업화 과정에 국력을 집중한 중화학공업(重化學工業)이 있었고 그 핵심은 제철산업이다. 광양제철을 아우르는 포스코가 현대제철과 함께 오늘날 세계 1위의 제철 왕국으로 입지(立地)를 굳히는 동력이 되었다.
오늘날 세계를 선도하고 있는 정보기술산업(IT산업)과 함께 여기서 생산된 제철을 소재로 한 자동차산업이 우리나라 지속성장의 양대 축으로서 수출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하며 머지않아 국민소득 3만불 시대를 열어갈 한국이 21세기 아세아 태평양 시대의 주역으로서의 성장을 전망할 수 있는 것은 그 원천적인 힘이 바로 1700년 전 가야국 시대에 철을 풀무, 즉 야로(冶爐)에서 주조하고 제련했던 선조들의 슬기와 장인정신이 오늘날에 계승되어 온 우리 민족의 저력으로 보아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하에서는 고령의 가라국이 반로국에서 야로의 철을 소재로 대가야로 발전하는 가야 역사의 전개과정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후 이러한 발전 과정에 대가야의 정치구조와 사회구조가 어떻게 변화해갔는가를 살펴보고, 다음으로 철기생산과 농업생산력의 증대, 선진문물의 수용 및 대외교역을 중심으로 대가야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경제적 기반이 무엇인가도 알아보고 마지막으로 야로를 영역으로 했던 대가야가 멸망하게 된 과정을 대내적인 조건과 외적인 조건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Ⅰ. 대가야의 흥망성쇠
1. 반로국의 성장과 지역연맹체 형성
오늘날 흔히 가야 제국들을 분류해서 부산, 김해를 중심으로 한 금관(金官)가야권, 고령의 대가야 및 합천의 다라국 등 서부경남의 산악지역을 중심으로 한 대가야권, 함안 지역을 중심으로 한 아라(阿羅)가야권, 일찍부터 신라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던 창녕 중심의 비화(非火)가야권, 경북 성주 지역을 중심으로 한 성산(星山)가야권 등 중추적인 대지역권역의 낙동강 연안 지역의 그리 높지 않은 산 능선마다 가야시대의 무덤들에서 깨진 채 널부러져 있는 토기(土器)조각과 심하게 녹슨 철기(鐵器)파편들이 발견된다. 이와 같은 지역색의 해명은 가야지역 각 소국끼리의 개별적인 변천상은 물론 집단 상호간의 연관성 및 주변 고대국가들과의 교섭관계 등을 이해할 수 있는 연구기반이 된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빽빽하게 들어선 고층 아파트들로 다운타운을 이룬 부산, 창원과 같은 대도심의 한가운데에서도 고대의 유물들이 가끔 발굴되어 고고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기도 한다. 이들 지역은 지금부터 약 1500여년전 삼국시대와 함께 병존했던 가야(加耶)라고 하는 고대왕국이 있었던 지역이다. 잊혀질 뻔 했던 왕국, 1970년대 고령 지산동 고분군이 발굴됨으로써 비로소 그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 이들 고대 왕국, 가야란 도대체 어떤 나라들인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