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원폭희생자 추모제를 다녀와서 – 차성민 기자의 취재노트
1945년 8월의 염천(炎天).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리틀보이(little boy)와 팻맨(fat man)으로 불리는 두개의 원자폭탄이 투하된다.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일본에 머물고 있었던 한국인들은 영문도 모른 채 원자폭탄의 화염과 방사능의 오염 속에서 죽어가야만 했었다. 5만 명에 가까운 희생자들의 시신수습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2만5천여명(추정치)의 한국인들은 허겁지겁 그곳을 빠져나와야만 했다. 그리고선 1965년 한일회담에 의해 한일 양국 간의 국교가 정상화되고, 1970년이 되어서야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내에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가 설치되었으니 그들의 억울한 죽음을 달래기에는 너무나도 늦은 것이 아니었을까.
기자가 2017년 원폭희생자 추모제 취재를 했었던 지난 6일은 입고 있던 셔츠와 재킷이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몹시 무더운 날씨였다. 참석한 군민들과 취재진들은 연신 부채질을 하며 더위를 물리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순간, 연신 부채질을 하며 땀을 닦아내는 사람들을 보며 문득 뇌리를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우리들은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오로지 이 더위만을 위해 애쓰는 반면 72년 전 그날의 우리 민족들은 과연 어떠한 모습이었을까?
더위만이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고온의 열기, 널브러져 있는 불에 탄 시체들, 고통의 아우성을 쳐대는 사람들까지 말 그대로 아비규환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 모습을 상상하다가 결국 기자의 눈에는 등에서 흘러내리는 땀줄기만큼이나 뜨거운 이슬이 눈앞을 가로 막아서 앞을 제대로 보기가 힘들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과거를 쉽게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지금이라고 말하는 현재도 머지않은 미래에 과거가 될 것이기에 겸손한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를 보람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폭피해 1세대들의 아픈 과거가 있었기에 우리는 보다 나은 현재를 살고 있으며 조금 더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다. 그러하기에 그들의 아픔이나 상처는 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우리 모두가 함께 생각하고 관찰해 보아야 할 아픔인 것이다. 나의 일이 아니면 그만이지라는 좁은 시각보단 좀 더 다양한 시각과 이해의 폭을 넓힐 필요가 있는 것이다. 굳이 한민족이라는 공동체의식을 결부하지 않더라도 타인의 아픔이 혹시라도 가까운 미래에 나와 내 가족의 아픔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그들을 바라봐준다면 당사자인 그들에게도 큰 용기가 될 듯하다.
원자폭탄은 전쟁을 통해서만 국한되어지는 문제는 아니다. 이따금씩 우리 주변에는 천재지변이나 인재(人災)를 통하여 원전사고가 여전히 발생되고 있다. 그로 인한 피해는 수십 년을 걸쳐 지속되고 있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1986년 발생한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의 원전사고는 3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사고현장으로부터 30Km지역은 통제구역이고, 고농도의 방사선이 나오는 위험한 곳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30년 전의 비극은 2011년 후쿠시마 참사로 또다시 반복되었다. 이렇듯 언제라도 혹은 누구에게라도 맞닥뜨릴 수 있는 핵으로부터의 안전지대는 없음을 인식하고 과거 그들의 아픔을 우리도 함께 감싸 안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한 가지 더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억울하고도 비참한 영혼들을 달래기 위한 위령제를 주관한 한국원폭2세환우회는 원폭후유증을 앓고 있는 피폭 1세대들의 후손들이 만든 단체이다. 1만 명에 가까운 자녀들 중에서 1300여명의 회원들은 다양한 원폭후유증을 앓고 있으며, 평생을 질병과 장애로 인해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지원책은 전무한 실정이며, 사실상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있기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지원이 이어졌으면 한다.
끝으로 지난 6일, 마찬가지로 일본 히로시마에서도 추모제가 열렸는데 그날 행사에 직접 참여한 한국원폭피해자협회 이사 이광기 씨의 추도사 중에서 일부를 소개하며 글을 마칠까 한다.
《 … 그날 피폭으로 처참하게 파괴되어버린 폐허 속에서 한 사람이라도 생존자를 확인하려는 살아남은 자들의 노력은 밤을 새우고 또 새웠습니다. 끝내는 많은 사람들이 비참한 모습으로 숨져갔습니다. (중략) 이제는 억눌렸던 울분과 서러움일랑 떨쳐 버리시고 전쟁도 핵무기도 없는 하늘나라에서 편안히 잠드소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