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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만수동(萬壽洞) 역사루트를 찾아(30) – 하재효

8. 최치원 선생의 해인사에 남은 흔적

(1) 농산정(籠山亭)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72호, 합천군 가야면 구원리 산 1-1번지 소재. 이곳은 신라 말의 거유(巨儒) 고운 최치원 선생이 은둔하여 수도하던 곳이다. 본래 정자의 창건시기는 알 수 없으며, 지금의 것은 고운 선생의 후손과 유림에 의해 1936년에 중건된 것이다. 이후 1990년에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하였으며 2016년에도 기와를 갈고, 부분 보수공사를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이지관 스님’은 그의 저서 ‘해인사지(海印寺誌)’에서 합천군수 ‘임치재(任致宰)’ 건립으로 밝히고 있다. 정자 현판에는 김영한(金寧漢)이 쓴 ‘농산정기와 찬양사(讚揚辭)’ 4수가 기록되어 있고 고운선생의 둔세시를 차운(次韻)한 시 8수가 있다. 시 중에는 점필재 김종직(佔畢齋金宗直)선생의 차운시도 들어 있다. ‘농산정(籠山亭)’이란 편액(扁額)은 고운선생의 둔세시(遯世詩) 말구중(末句中) 농산2자(籠山二字)를 따서 이름하였다. 이 정자의 바로 옆에는 ‘고운 최선생 둔세지(遯世地), 고운선생의 제시석처(題詩石處)’란 비석 2기가 있다.
(2) 둔세시(遯世詩)와 제시석(題詩石)
최고운의 둔세시(遯世詩) [광분첩석후중만(狂奔疊石吼重巒) / 인어난분지척간(人語難分咫尺間) / 상공시비성도이(常恐是非聲到耳) / 고교유수진농산(故敎流水盡籠山)] 이란 28자를 자필로 써서 농산정 옆 ‘분옥폭포 방석면(傍石面)’에 새겨 두었는데 이 암벽을 ‘제시석’이라 한다. 홍수로 마모되어 지금은 흔적이 없으나 선조의 손자인 ‘이오(李吳,1637~1693)’가 탁집(托集)한 ‘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에는 광분고교(狂奔故敎) 등 4자만 남아있는 것을 탁본하여 실었다. 농산정 건너편 암벽에는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1607~1689)’선생이 이 시를 자필로 써서 새긴 것이 현존하고 있다.
고운 선생이 견당유학(遣唐留學)하면서 얻은 정치이념을 신라에 돌아와 펴고자 하였으나 이루어지지 않아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해인사에서 은둔하면서, 본인의 심경을 함축한 시 한 수를 홍류동 ‘제시석’에 남겼는데, 이 시를 ‘은둔시(隱遯詩)’라 하며 그 원문(위)과 번역문(이지관 스님편)을 소개한다.

미친 듯이 치닫는 물 바위를 쳐 첩첩산골 울리니 / 지척에서 하는 말도 분간 할 수 없네
행여나 세상의 시비소리 귀에 들릴까 두려워 / 흐르는 물로 산을 감싸게 했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