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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人터뷰| 김도호 장군, 그를 알고 싶다

지난 2012년 11월. 한 군인은 전투기 조종사의 꿈을 이룬 후, 33년에 가까운 시간을 대한민국 영공을 지키는 수호자로서의 임무를 마치고 새로운 비상을 꿈꾸며 명예로운 군복을 벗게 된다.
1956년 합천군 대양면 정양리에서 태어난 김도호 장군은 당시의 여느 아이들과 비슷하게 가난한 유년기를 보낸다. 하지만 합천초등학교와 합천중학교를 다니던 시절, 그는 부모님이 관(官)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모습들을 목격하면서 분노와 동시에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배려심을 키워나가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 펼쳐질 그의 삶을 관통하는 중요한 가치로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거창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어릴 적 꿈을 이루기 위해 공군사관학교(공사 28기)에 진학한 그는 1980년, 마침내 공군장교로 임관하여 대한민국의 하늘을 지키는 전투기 조종사가 된다. 그러나 어수선한 정치상황과 맞물려 험난한 군 생활을 이어나가게 된다. 당시엔 군부정권의 그늘 아래, 신성하고도 고귀한 투표조차 자유의지를 가지고 할 수 없었던 그는 불의를 참지 못하고 군인이 정치에 나서지 말아야 할 것을 주장하게 된다. 당연히 그로 인해 인사상의 불이익을 당하는 수모도 여러 차례 겪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통해 정의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되며, 군인으로서의 명령과 자신의 양심 사이에서 많은 갈등을 하게 된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어릴 적 부모님의 억울한 사연들과 정의를 찾아볼 수 없는 어지러운 시국(時局)을 겪게 되면서 군에서는 언제나 약자를 먼저 생각했고, 정의와 진실을 위한 대의(大義)라면 소신(小信)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그러한 행동을 보고서 주위의 사람들은 많은 걱정을 하였지만 그는 유불리(有不利)를 따진 다거나 이해득실을 생각하지 않고 올곧게 한 길을 걸어왔다.
얼마 전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던 육군 대장의 공관병에 대한 갑질사태와 관련하여 그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말한다. 이미 그는 2007년 11월 비행단장(준장 계급)으로 부임했을 때, 자신의 공관에 있던 공관병을 불러 “넌 여기에선 할 일이 없으니 원대복귀를 하여라.”라며 자대로 돌려보낸 일화가 있다. 아마도 전군 최초로 있었던 사상 초유의 일이 아니었던가 싶다. 그것은 늘 그가 주장하고 다니는 권위는 가지되, 귄위의식은 버려야 한다는 생각과 일맥상통한 것이라 하여도 무방하다.
또한 최근에 합천출신의 대장이 두 명이나 배출된 것에 대한 소회에 대해 물어보니 “우리 고향에서 육군과 공군에서 두 명의 대장이 탄생한 것은 아마도 황강의 기적을 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두 장성의 어깨는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무거울 것입니다.”라며 당부의 뜻을 전했다. 그리고 현대전은 전쟁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에 70년 동안 이어져 온 육군중심의 사고를 깨야 하는 것에 대한 기득권층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고 내다 봤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이 주창하고 있는 국방개혁은 단순한 의미의 개혁이 아니라 재 창군 수준의 개혁을 이루는 것이기에 소속된 군(軍)에 치우치지 않는 역사의식과 전쟁관을 직시하여 국민들로부터 신망받는 군으로 만들어 주길 부탁한다고 밝혔다.
한편 공군사관학교, 전투기 조종사, 장군 등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그는 보수론자 일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에 대해 김 장군은 보수의 가치인 ‘의무준수’, 자신에게 엄격하고 부끄러움을 아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의 품격과 공익추구의 마음 등을 생각하면 보수에 가깝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추구했던 ‘사람사는 세상’, ‘반칙없는 사회’에 매료되었고, 특히 문재인 대통령의 일관된 가치인 「사람이 먼저다」에 크게 공감하여 2012년에는 전역을 앞당겨 견마지로(犬馬之勞)의 마음으로 제18대 대통령 선거전에 뛰어들기도 하였다. 그것은 돈이나 권력 등이 어떤 가치로도 사람의 존엄성에 우선할 수 없다는 장군의 철학이 깃든 과단성 있는 행동이었다.
이러한 과단성과는 달리 따뜻하고 눈물이 많은 성품을 지닌 그는 사회기부활동에도 전력을 다하고 있다. 2009년인 제16전투비행단장 시절, 예천 인근의 베트남 출신 다문화가정의 힘든 생활상을 보고서 부대 장병들에게 호소하여 관심을 유발한 후, 1억원의 펀드를 조성함과 동시에 매달 기부하는 후원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매년 10여명에게 장학금을 수여하고 있다. 현재에도 김 장군과 당시의 참모들은 홈커밍데이(Homecoming Day) 행사를 매년 진행하고 있으며, 행사시 기부금을 꾸준히 전달하고 있다. 또한 하늘사랑 장학재단을 2010년부터 운영하고 있는데, 이는 82년에 순직한 공군사관학교 후배의 유족들이 의미있는 곳에 사용해 달라며 1억원의 종잣돈을 기부한 것이 밑거름이 되어 다양한 모금활동을 전개한 결과, 현재는 50억을 돌파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김도호 장군의 인생스토리를 들으면서 기자는 가슴을 꽉 채우는 뜨거운 무엇인가가 느껴졌다. 흔히들 “소신껏 살아라.”라고 쉽게 말한다. 하지만 이렇듯 평범하고도 위대한 말을 지키며 한평생을 열심히 투쟁하듯이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대부분은 현실과의 타협을 통해 매너리즘(mannerism)에 빠져서 소신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 다수일 것이다. 정의라고 생각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잃고 살아갈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나은 가치의 구현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에서 우리는 존경과 감탄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신껏 발언한 것 때문에 정책부서로의 진출이 제한적이어서인지 그는 무려 4천시간의 비행시간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조차 어릴 적 꿈이었기에 전투기를 비행할 때 가장 행복했었다며 회고한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지족불욕, 지지불태(知足不辱, 知止不殆)의 정신이 자신의 좌우명이라고 말하는 김 장군은 미래에 닥쳐올 일들에 대해서도 항상 만족하는 법을 안다면 모욕적인 일을 당하지 않고 필요할 때 멈출 줄 안다면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지 아니할 것이라는 마음으로 준비한다고 한다. 이러한 좌우명이 독자들에게도 공감이 되어 조금 더 의미있는 인생을 살아가는 자양분이 되기를 바라며 합천인터뷰를 마칠까 한다. /차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