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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외갓집 – 문경자 논설위원

생각만 해도 가고 싶은 집. 봄이면 딸기 꽃이 피어나고 여름에는 멍석을 깔고 누워 옥수수 알만큼 촘촘한 별을 헤던 집. 가을이면 곡식이 가득한 집. 겨울에는 온돌방에 군불을 지피던 집. 늘 내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집. 지금이야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집. 걸어가는 거리도 차를 타고 가는 집. 시집간 딸이 언제든지 와서 쉬는 집. 큰 티브이가 있어 춤도 추고 만화도 볼 수 있는 집. 베란다에 꽃이 피어있는 집.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꺼내 먹을 수 있는 큰 냉장고가 있는 집. 무엇이던 뚝딱 마술사가 나와 해결을 하는 집. 이런 집보다 외갓집이 더 좋았다.
어머니가 열일곱 해를 살았던 집. 외갓집은 우리 동네와 가까운 마을이었다. 언젠가 어머니는 손수 만든 옥색의 한복을 입고 친정나들이에 나섰다.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거리지만 힘든 시집살이에 친정가는 일은 어려웠다. 모든 어머니들이 참고 사는 것이 몸에 베어있던 시절이었다. 나는 외갓집 간다는 것이 큰 기쁨이었다. 동네 아이들도 외갓집에 갔다 오면 자랑이 대단하였다. 어떤 아이는 자기가 외갓집에 갔는데 밤이 되니까 그곳에도 둥근 달이 밝게 떠있는데 달은 분명 두 개라고 손가락을 브이자로 만들었다. 나도 달이 두 개인 줄 알았다.
어머니의 까슬까슬한 손을 잡고 흔들며 기분이 좋아 콧노래도 불렀다. 어머니는 웃으며 나를 업고 외갓집에 가면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에게 인사하는 법도 가르쳐주었다. 외갓집에 가는 일은 신나고 즐거웠다. 어머니의 웃음 띤 얼굴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았다. 동네 아낙들은 친정가는 어머니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외갓집에 가면 내가 어머니보다 더 인기가 많았다. 외할머니는 아무도 없는 틈을 노려 사랑채 마루에 걸터앉게 하였다. 큰 황소가 눈을 돌려 쳐다보고는 여물을 먹었다. 조금은 무섭기도 했다. 외할머니는 주먹을 쥔 내 손을 펴서는 뭔가 손에 꼬옥 쥐어 주었다. 나는 그 느낌이 좋았다. 살짝 보이는 종이 귀퉁이를 보면서 보조개를 만들었다. 다리를 지그재그로 만들며 외할머니를 따라갔다. 외할머니, 어머니는 오랜만에 만나 작은 소리로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있는 쪽을 보고 웃곤 하였다. 어머니의 행복한 꽃이 온 얼굴에 피어났다.
외동딸을 시집 보내놓고 얼마나 걱정을 했을까! 가까운 거리라 해도 하룻밤을 자고 가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되돌아가야 했다. 딸을 보내며 외할머니는 치마를 들어 얼굴을 가렸다. 해거름에 친정집을 나선 어머니는 발걸음이 잘 떼어지지 않은지 느릿하게 걸었다. 나도 입을 꼭 다물고 외할머니에게 인사하고 돌아섰다. 어머니 어깨가 들썩거렸다. 그때 나는 어머니도 울보구나 하고 눈물이 조르르 흘러서 주먹으로 훔쳤다.
어머니는 외할머니 보고 싶다고 조르는 나에게 혼자 갈 수 있겠나 하고 물어보았다. 우리 동네만 벗어나면 외갓집이 보이니까. 어머니가 싸준 보자기를 머리에 이고 삽작을 나섰다. 걱정이 되는지 몇 번이고 주의할 점을 일러주었다. 그 말은 귓전까지 오지도 않았다. 우리 동네 지킴이 큰 은행나무를 지나가는 나를 내려다보았다. 바람에 잎이 팔랑거렸다. 그 곳을 지나면 합천읍 가는 길이 보였다. 뱀처럼 꾸불꾸불하게 혼자서 기어 다니고 있었다. 지금은 그 길이 없어졌다. 읍을 가는 반대방향을 돌아간다. 들길을 따라 가다 보면 들일을 하고 돌아오는 이웃들도 만난다. “깅자야. 밍가(문림) 외갓집에 가나?” 하고 엉덩이에 쇠똥이 묻은 황소를 몰고 지나간다. 길가에 매어둔 깡마른 염소는 음매 하고 울었다. 염소도 외갓집에 가고 싶은가 보다.
이 길은 들판에 눈이 쌓여 하얀 광목을 늘어놓았으며, 봄에는 살구꽃, 복숭아꽃들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결에 날리어 꽃길을 만들었다. 먼데서는 아지랑이가 가물거렸다. 앞서 가는 사람도 가물거렸다. 참새들도 찔레나무 숲에서 저희들끼리 놀이를 하고 있었다. 뱀이 겨울잠을 자고 간 자리에는 허물이 걸려있었다. 장마가 지면 홍수가 나기도 한다. 가을이면 누런 벌판에 황금물결이 춤을 추고 우리들은 뚱뚱하게 배가 불렀다. 외갓집 가는 길은 동무가 되어주는 것들이 있어 심심하지 않았다.
큰 신작로를 지나 전방이 있는 길을 지나서 걸어가면 작은 골목이 나오고 길모퉁이를 돌아가며 탱자나무울타리가 있는 큰 마당이 눈에 들어온다. 기와집이 보였다. 집 처마 끝이 낮아 비가 오면 빗방울이 홈을 만드는 집. 외갓집은 작은 정원이었다.
봄이면 집 뒤 안에 꽃들이 피어난다. 감나무, 석류나무, 모과나무, 딸기꽃, 봉숭아, 맨드라미, 돌미나리, 돌나물 등 이름 모를 잡초들까지 꽃이 피고, 담장 아래로는 맑은 물이 흘렀다. 물을 내려다보면 파란 하늘, 하얀 구름이 흘러간다. 바람이 불어 물이 일렁이면 움직이는 화면과도 같았다.
외할머니는 아침 해가 솟아오르면 하얀 고무신을 신고 뒤 안으로 가서 딸기를 딴다. 딸기는 모양이 비정상이다. 예쁜 것을 골라서 맑은 물에 헹구어 복자가 새겨진 그릇에 담았다. 마루 끝에 앉아 다리를 흔들고 있는 나에게 딸기를 내밀었다. 푸릇푸릇하고 누렇게 생긴 것, 반쪽만 익은 것 등 색이 참 다양했다. 보기는 그래도 맛은 달고 달았다. 아직도 그런 달디 단 딸기는 먹어보지 못했다.
외할머니의 얼굴은 달처럼 둥글다. 동백기름을 바른 외할머니의 쪽진 머리는 햇빛에 반짝였다. 볼은 통통하고 귀여운 여인상이었다. 내 어머니 모습과 닮았다. 나를 예뻐해주신 외할머니. 내가 외갓집에 가면 버선발로 마루 끝에 나와 포근하게 안아주던 집. 외삼촌 내외분의 따듯한 마음도 같이 살아가던 외갓집. 옥수수며 참외 줄무늬의 수박을 오일장에 내다 팔려고 지게에 담아 놓으면 밤사이 달님 별님이 지켜주던 집. 저녁 연기가 하얗게 올라가는 집. 외할머니 벗어 놓은 고무신 안에 말이 뛰노는 집. 외갓집은 어머니와 같은 집. 지금은 없는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