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졌던 왕국 합천 “다라국(多羅國)” (1) – 이성동 논설위원
고령의 대가야가 서부 경남지역으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던 다라국(多羅國)은 어떤 나라였을까, 1980년대 합천댐 건설에 앞서 실시한 합천군 쌍책면 성산리 옥전마을 구릉지대 발굴조사에서 베일 속에 묻혀있던 다라국의 정체(正體)가 드러났다. 그리고 그 정체가 무엇인지 밝혀본다.
낙동강과 합류하는 황강 하구에서 북쪽으로 6km정도 떨어진 황강연안에 돌출한 구릉지대, 울룩불룩 치솟은 거대한 무덤들이 고분군을 이루고 있고, 여기에서 동남쪽 인근에 흙으로 쌓인 토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경남 합천군 쌍책면 성산리 옥전(玉田)마을에 인접한 옥전고분군이다. 지난 1985년 이곳에서 고고학계를 뒤흔든 옥전고분군이 발견된 것이다. 이 무덤들 중 300년대 전반의 무덤에서는 철기가 일부 출토되다가 400년대부터는 수십 점씩 무더기로 나왔다. 특히 M3호(봉분에 부여된 식별번호) 무덤에서는 다량의 철기와 함께 망치, 집게, 숫돌 등 철 재료를 불에 달궈 두드려 가공할 때 쓰는 단야구(鍛冶具)들이 나와 철기 제작 집단이 합천에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이것들뿐만 아니라 이곳에서는 토기와 금동제 유물, 그리고 구슬과 옥 등 모두 2000여점의 유물이 그야말로 쏟아져 나오듯이 나왔다. 거의 원형에 가까운 유물들이 역사의 빛을 보게 된 것이다.
그 중에 특히 눈길을 끈 유물 하나, 그것은 칼이었다. 완연한 용과 봉황 문양을 새긴 용봉문환두대도(龍鳳文換頭大刀)가 출토된 것이다. 용과 봉은 왕을 상징하는 것들이다. 백제의 무령왕릉에서도 왕의 허리 옆에서 용봉문환두대도가 발견되었다. 따라서 합천군 쌍책면 옥전, 이곳은 가야국 시대에 하나의 소가야국이 있었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는 것이다.
만일 합천 옥전에 가야국이 존재했었더라면 그 흔적이나 근거가 반드시 어디에라도 남아 있을 것이다. 기록도 없고 거의 흔적조차도 없는 베일에 가려진 가야 소국들이 고분을 통해서 그 자태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고분과 유물, 이들은 그 자체가 기록이고 역사이다. 특히 문헌기록이 부족한 시대의 고분과 유물은 그 가치가 더욱 커지게 마련이다.
합천댐 건설을 통해서 발굴된 옥전의 고분은 그것이 과연 다라국(多羅國)의 존재 가능성을 말하는 것인지, 옥전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에서 그 가능성을 추적해 본다.
우리는 그동안 숱한 고분을 발굴했었고, 또 그만큼의 흥분도 있었다. 그것은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으려는 노력이었다. 그러한 노력이 전부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는 아주 엄청난 우리의 고대사가 묻혀 있었다. 쏟아져 나온 2천여 점의 엄청난 유물, 그것은 보통 유물이 아니고 우리 역사의 여백을 메워줄 증거물이었다. 발굴된 지 30여 년, 학계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옥전 고분군, 그 현장으로 가 본다.
지난 1988년 완공된 합천댐, 이 댐은 황강 상류의 협곡을 막아 거대한 합천호를 만들었다. 황강, 댐을 만들면서 황강 상류지역에는 대규모 수몰지역이 발생했고, 수많은 유적지가 물에 잠겼다. 이보다 앞서 1984년 댐건설 전 합천 거창지역의 수몰 예정지에 대한 유적지 지표조사와 발굴이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