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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 가야산을 찾아서 – 이병생 합천문화원향토사 연구소장

지난 한해 동안 해인사 소리길을 올라가면서 9회에 걸쳐 합천신문에 게재하고 그 이후 해인사에서 가장 먼저 창건한 원당암, 사명대사와 홍제암, 성철스님과 백련암, 희랑조사와 희랑대 등 암자를 찾아보았다.
이제 국립공원인 가야산으로 올라가 보고자 한다. 먼저 국립공원에 대해서 알아보면 미국의 제18대 대통령인 율리시스 그랜트(ulysses S. Grant)가 1872년 지구상 최초로 미국 옐로우 스톤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였다. 참고로 미국은 59개의 국립공원을 가지고 있으며, 그 면적은 210,577.833㎢(한반도 면적의 0.95배)이다.
우리나라는 1988. 6. 11까지는 총 20개의 국립공원이 있다가 2013년에는 도립공원이던 무등산이 국립공원으로, 2016년에는 태백산이 추가 지정되어 현재 전체 22개소의 국립공원이 있는데, 제1호로 지정된 곳은 지리산(1967. 12. 29지정)이다. 면적은 463.022㎢이며, 가야산은 아홉 번째로 1972. 10. 13 지정되어 현재 면적은 76.256㎢;이다. 지역은 합천, 거창, 성주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가야산을 올랐기에 어디 가야산에 대해 모를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나 가야산의 이곳저곳, 요모조모를 둘러보면서 좀 더 깊이 있게 알고자 한다.
조선 중기 유학자 노진 선생은 “땅은 반드시 사람을 통해 이름이 난다.” 고 했다. 산음의 난정은 왕희지가 없었다면 무성한 숲과 길쭉한 대나무에 불과할 뿐이었고, 황주의 적벽도 소동파가 없었다면 높은 산과 큰 강에 불과 할 따름이었을 것이다.
“합천 가야산은 최치원이 없었다면 붉은 언덕과 푸른 절벽에 불과할 따름이었을 것이니, 어찌 후세에 이름 날 수 있었겠는가?”하였다.
태백산, 소백산을 거쳐 달려온 한반도의 등줄기 백두대간은 김천 대덕산에서 두 줄기로 갈라진다. 한줄기는 덕유산으로 뻗어내려 지리산에서 포효를 터뜨리고, 다른 줄기는 낙동강을 향해 달리다 불끈 치솟아 가야산을 만들었다. 백두대간을 기준으로 하면 가야산은 동쪽으로 슬쩍 비켜 앉은 셈. 가야산 정상 상왕봉에 서면 서로는 덕유산, 남으로는 멀리 지리산이 보인다. 동으로는 낙동강, 남으로는 황강을 굽어보고 있다. 가야산의 전체 면적은 60.56㎢로 대구 달서구(62.27㎢)면적과 비슷하다. 가야산의 61%인 37㎢가 성주군에 속해있고 나머지는 합천군과 거창군에 걸쳐있다.
가야산의 주봉인 상왕봉은(해발1430m)이고, 칠불봉은(해발1433m)이다. 그래서 성주 사람들은 흔히 성주가야산이라고도 한다.
가야산과 더불어 남산제일봉, 의상봉 등을 포함 가야산국립공원의 면적은 훨씬 넓어진다. 경북의 성주, 경남의 합천과 거창 등 2도 3개군 4개면에 걸쳐있는 곳 ‘가야’란 산의 이름은 인도의 부다가야 근처에 있는 가야산에서 따온 명칭이란 설이 유력하다.
한국불교연구원이 펴낸 ‘해인사’에 따르면 “가야성 서남쪽에 가야산이 있으며, 정확하게는 가야시르사(Gayasirsa)라고 하는데, 이를 중국에서 간단히 가야(伽倻)라고 표기했고, 음역하여 상두(象頭)라고 쓰기도 했다”고한다. 그리고 범어로 가야는 소(牛)라는 뜻으로 산정상의 바위가 꼭 소의 머리 형상이어서 우두산(牛頭山), 상두산(象頭山)으로 불리는 등 불가에서 온 이름임을 유추 할 수 있다.
하지만 가야산 인근에 있던 가야국에서 따온 이름이란 설도 있다.
이 산이 옛날 가야국이 있던 이 지역에서 가장 높고 훌륭한 산이었기에 자연스럽게 ‘가야의 산’이라는 뜻으로 부르게 됐다는 얘기다.
가야산은 우두산, 상왕산, 상향산, 설산, 지항산 이라고도 불리 운다.
이중환이 지은 ‘택리지(擇里志)’는 우리나라의 산을 돌산과 토산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어 “경상도에는 ‘석화성(石火星) (돌 끝이 뾰족뾰족 늘어서 마치 불꽃이 피어오르는 형상)’이 없다. 오직 가야산만이 뾰족한 돌이 줄이 잇달아서 불꽃같으며 공중에 솟아서 극히 높고 빼어나다”고 적었다. 또 임진왜란 때 금강산, 지리산, 속리산, 덕유산 등이 모두 왜적의 화를 면치 못했으나 오직 오대산, 소백산, 가야산은 왜적이 들지 못한 옛부터의 ‘삼재불입지처(三災不入之處)’라고 했다. 병란을 피 할 수 있고(避兵), 먹고살기에 적합한 곳(生利)으로 복지(福地)라 일컫는 것이다. 가야산은 선사시대 이래 산악신앙의 대상이며, 고려의 팔만대장경을 간직한 해인사를 품에 안은 불교의 성지다.
그리고 선인들의 유람과 수도처로서 민족의 생활사가 살아 숨 쉬는 명산이며 영산이다. 또 자연경관이 수려해 예로부터 조선팔경의 하나 혹은 12명산의 하나로 꼽혔다.
옛 기록들은 산세를 두고 “산형(山形)은 천하에 으뜸이고, 지덕(地德)은 해동의 제일”이라 평했다.
가야산은 봄에는 신록, 여름에는 녹음,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설경으로 4계절 모두 인기를 끄는 관광과 휴식의 보물창고다. 봄가을에 해인사를 찾는 인파가 줄을 잇고, 여름이면 홍류동 계곡은 더위를 식히는 인파들로 붐빈다. 가야산의 단풍과 설경은 전국에서도 이름나 있다.
매년 100만명 이상이 가야산을 찾을 정도로 가야산은 우리 민족과 더불어 어제와 오늘을 함께했고, 그리고 미래를 같이 할 민족의 명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