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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만수동(萬壽洞) 역사루트를 찾아(33) – 하재효 논설위원

8. 최치원 선생이 해인사에 남긴 흔적

(6) 고운(孤雲)을 위하여 수궁(壽宮, 사당)을 모신 분들
아국(我國)은 물론 타국(他國)에까지 고운 선생을 모시는 사당이 많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그 중 해인사 부근에서 이어져 온 사당을 찾아본다.
먼저 <독서당>이 있었다. 고운이 A.D 898년, 42세에 가족과 함께 가야산에 입산하여 52세가 되는 이후의 행적이 묘연하였다. “세상에 전하기를 최치원은 가야산에 숨어 살았는데, 어느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문을 나가 관(冠)과 짚신을 수풀 사이에 남겨 두고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어 해인사의 스님들이 그날을 받아 영정을 독서당에 봉안하고 제사를 지냈다.”(신증동국여지승람)
두 번째, <소멸된 각, 학사당>이 있었다. 고운이 평소 농산정에서 청량사로 오가는 길목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지금은 그 소로마저 묻힌 지 오래다.
세 번째, <학사당(學士堂)>이다. “최치원 선생의 영정을 봉안하고 이를 추모하여 오던 학사당 건물이 농산정 서편에 있다가 소멸되고, 최씨 일족 및 유림들에게 찬조를 요구하여 1937년경 해인사 소유의 ‘합천군 가야면 구원리 산 2-1에 현재의 학사당을 신축하고 영정을 모시고 향례를 올리다가 1997년경부터 중단되었다”(후손 최평열)
현재 이 ‘학사당’ 앞에는 고운을 기리는 ‘신도비’ 와 ‘유허비’가 양쪽에 있는데 그 사이 평지를 지나 45도 경사면의 51계단(오일단)을 오르면 홍도문(弘道門)이 있고 주위를 토담이 둘러 가로와 세로가 각각 20보씩이다. 학사당은 그 중앙에서 약간 뒤로 위치하였는데 맞배 3간이다. 영정은 보이지 않고 당 전체가 노후되어 보수가 시급하다. 후손의 말에 의하면 “영정은 사저에 모시고 있다. 그리고 ‘신도비’ 옆 가야서당(伽倻書堂)은 학사당, 농산정에서의 향례 등 행사를 위하여 1951년경 완공하였다.”고 한다.
네 번째, <합천향교>이다. 이 향교는 원래 현 합천군 소재지에 창건되었으나, 조선 고종 18년(1881) 수해 때에 야로면으로 군청을 이전할 당시에 함께 이건된 것이다. 이 곳에는 중국 5성 2현, 한국 18현이 모셔져 있으며 아국 18현 중에는 고운 선생이 포함되어 있다. 합천의 4개 향교에서는 관(官)과 유림에 의하여 매년 춘추로 향례를 올리고 있으며 매월 음력 초하루와 보름에는 촛불을 피워 예를 드리고 있다.
다섯 번째, 고려 현종 때에 선생을 문묘(文廟, 사당)에 종사(從祀, 제사지내다)케 하고 문창후(文昌侯)의 시호(諡號, 죽은 자의 생전 행적에 의하여 임금이 내려주는 칭호)를 내리시니 유학(儒學)의 최고봉이요, 문학의 시조라 존경하여 한 것이리라. 말년에 처자를 이끌고 가야산으로 들어가 도를 닦으시고 여년을 보내 우리나라 문학의 원조요, 시격(詩格)의 최고봉을 점령한 대문호(大文豪)이며, 세상을 초월한 성현(聖賢)이시다.(神道碑銘에서)
여섯 번째, <고운타운, 최치원 선생의 성지> 조성을 생각하자. 해인사가 ‘불교의 바이블’인 것처럼 부근에 ‘유학의 바이블’을 조성하자. 고운은 이곳에서 가장 많은 세월을 보내고 인연을 남겼다. 기념관, 교육기관, 풍류도 체험장, 시비공원, 정신문화의 도량 등 각종 콘텐츠를 개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