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열무김치를 담그며 – 문경자 논설위원
동네 재래시장에 갔다. 이른 시간이라 한산했다. 큰 슈퍼도 있지만 인정이 넘치는 이곳을 나는 자주 찾는다. 야채가게 주인은 언제 봐도 인사성이 바르고 얼굴이 밝아서 만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시어머니와 야채를 팔았는데 이제는 남편과 같이 운영을 하고 있다.
그녀는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뒤로 묶고 얼굴에 윤기가 흘렀다. 웃는 얼굴을 하고 오늘 들어온 야채가 싱싱하고 값도 저렴하다며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준다. 한 두 사람도 아니고 이렇게 고객에게 친절을 베푸는 일도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여태껏 밭에 나가 열무 밭을 매거나 가꾸어 본적은 없다. 심어놓은 열무를 뽑는 일도 수월하지가 않았다. 씨를 뿌리고 새순이 나오면 어머니는 아기를 돌보듯 부지런하게 밭에 나갔다. 여린 잎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자라는 만큼 기쁨은 커갔다. 나도 어머니를 따라 그곳에 가는 일이 즐거웠다. 들꽃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노랑나비들은 꽃잎에 앉아 날개를 접었다 폈다 춤을 추었다. 그 뿐이 아니다. 파란 하늘에 떠가는 흰구름은 작은 구름들을 데리고 우리 동네를 지나 이웃동네를 순찰하러 간다. 지금도 흘러가는 구름을 보면 어머니와 같이 보던 그 때가 생각난다.
호미로 열무 밭을 매고 사이사이 콩밭도 김을 매준다. 땀이 맺힌 얼굴은 피곤해 보였고 하루 종일 밭일을 하는 것은 남자들도 힘이 들었다. 호미를 잡은 손은 그을려서 시커멓고 손톱 밑은 까맣게 때가 끼었다. 열무가 잘 자라면 돈도 마련할 수가 있어 더 정성을 드렸다. 어머니는 잘 자란 열무를 뽑아 부채살같이 작은 열무는 아래로 큰 것은 위에다가 포개어서 짝 펴서 지푸라기로 단을 묶었다. 물을 뿌려서 무명천으로 덮어두었다가 이튿날 오일장에 내다 팔았다. 그런 날은 갈치, 고등어들이 상에 올랐다. 달콤한 왕 사탕도 맛을 볼 수가 있었다. 열무가 잘 자라 주어서 고마울 뿐이다.
나는 열무를 사는 데도 신경을 썼다. 재료가 좋아야 하니까. 잘못 사면 뻣뻣하거나 잎이 뜨거운 열에 떠서 물러지기 때문이다. 한번은 다른 곳에서 싼 값에 열무를 사왔다. 다듬으려고 나일론 끈을 풀고 보니 가운데가 다 뭉개지고 썩은 악취에 놀랐다. 가게가 멀어서 물릴 수도 없어 하는 수 없이 그것을 재다 버렸다. 이런 난감한 일이 생기다니.
그 후로는 야채 고르는 것을 신중하게 보고 골랐다. 단으로 묶은 열무보다는 박스에 들어 있는 열무가 좋아 보였다. 한 박스에 1만원을 주고 샀다. 나는 큰 비닐봉지에 열무를 넣어서 들고 오는데 무척 힘이 들었다. 봉지를 질질 끌고 겨우 집으로 왔다. 맛있게 담으려면 빨리 씻어서 저려야 했다. 열무를 다듬다 보면 까칠한 것이 팔에 닿으면 가렵고 살갗이 붉어진다. 열무김치 담는 일도 하루 종일 걸렸다. 갖은 양념을 넣고 잘 버무려서 김치 통에 넣고 밀가루를 넣어 끓인 물을 붓고 뚜껑을 닫았다. 한참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 흐뭇해했다. 열무김치가 익으면 고추장에 바글바글 끓인 된장에 보리밥을 넣고 비비면 끝. 쌀밥 보다는 거친 보리밥과 궁합이 잘 맞다. 아무리 연해도 열무특유의 까칠한 성격은 그대로 들어있다. 잘 익은 열무는 입맛을 나게 하고 배도 부르게 만드는 요술도 부린다. 지금은 열무김치도 식당의 특별 메뉴로 한 몫을 하는 추세다. 열무김치는 먹을수록 그 맛이 오래간다. 식당에서 주는 열무김치는 우선 먹으면 그 맛이 입에 착 달라붙는다. 하지만 뒷맛은 별로 개운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담은 김치는 가족이 먹을 생각에 정성을 다해서 담았으니 어디에도 비할 수가 없다.
올 여름은 자주 열무김치를 담아 먹었다. 어떤 때는 김치통을 열어보면 다 먹고 열무 몇 가닥만 붙어 있었다. 맛있게 잘 먹어주니 고마울 뿐이었다. 주부들은 다른 일도 많이 하지만 김치를 담는 일이 제일 번거롭고 힘이 들었다. 친정어머니는 시집 간 딸에게 준다면서 택배로 보내기도 한다. 마트에 가면 밀폐된 용기에 열무김치를 담아서 맛있다는 것도 설명까지 표시되어 있었다. 믿음이 가지 않아 열무김치를 사먹는 일도 한계가 있다.
소 불고기, 돼지 삼겹살도 맛있지만 열무김치 비빔밥이 더 맛있다. 어머니가 담아준 열무김치 맛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열무김치 익어 가는 소리에 입안에 군침이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