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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만수동(萬壽洞) 역사루트를 찾아(34) – 하재효 논설위원

8. 최치원 선생이 해인사에 남긴 흔적

(7) 운양대길상탑(雲陽臺吉祥塔)과 최고운 선생

1) 해인사 성철스님의 사리탑을 지나 일주문을 향하여 오르면 사적비(寺蹟碑) 북측에 3층 석탑이 있다. 이 탑의 안내판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간 이 탑의 내용을 알지 못하였으나 지난 1965년 본 탑 중에서 발견된 고운 최치원이 지은 해인사 운양대 묘길상탑지(妙吉祥塔誌)에 의하면 신라 진성여왕 9년(895)을 전후하여 7년간에 걸쳐 궁예(弓裔)와 견훤(甄萱)의 싸움에 흉년으로 굶주린 장병들을 위해 당시 해인사의 대덕(大德) 훈혁(訓衋)스님이 농촌으로 다니면서 벼 한 단식을 희사시켜 군량(軍糧)에 충당하고 그 나머지로 이 삼층석탑을 세웠으니, 이는 오로지 전란에 죄없이 목숨을 잃은 고혼들의 명복(冥福)과 국태민안(國泰民安)을 빌기 위하여 세우게 되었는 바 조각담당은 란교(蘭交)스님이었고 탑의 높이는 13측, 소요 물품은 황금 3푼, 수은 11푼, 동 9정(鋌), 철 260칭(秤), 탄(炭) 80石, 벼가 120石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탑이 비록 사리탑은 아니지만 국가를 위하는 애국적 견지에서 본다면 애국충정(愛國忠情)을 담아온 민족혼(民族魂)의 탑인 것이다.
1972년 10월 10일, 해인사 주지 이지관(李智冠) 기(記) ]

2) 해인사 석탑에서 발견된 신라 말 전란(戰亂)의 길상탑지(吉祥塔誌)
이홍식 고려대 박물관장은 ‘해인사지’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 3년 전인 1966년 여름에 수년 내에 전국적으로 횡행한 도굴단이 검거되어 그들이 그동안 도취한 1부품을 검찰당국에 내 놓아 아직껏 국립박물관에 보관되어 그 완전한 처리를 보지 못하고 있는데 그 중에 해인사 부근의 어느 석탑 속에서 끄집어냈다고 자백한 4매의 지석이 있다. 중략….. 그 4매 중 1매가 곧 고운 최치원 선생이 찬(撰:짓다)한 해인사묘길상탑기(표). 운양대길상탑기(리) ] 이다.

3) 운양대묘길상탑에 생명을 불어넣은 최고운 선생
고운선생이 지은 탑지가 발견되기 전의 길상탑은 / 돌로 만든 하나의 작품이었다 / 석공의 혼과 공이 깃든 예술이었다 / 불자들이 합장하는 곳으로 / 쉬 떠나는 이 많았지만 / 고운의 탑지가 발견된 후의 길상탑은 / 몇 가지 더 보게 되었다 / 험난한 역사가 휩쓸고 간 자리에 머물며 / 대덕 스님과 고운 선생을 보면서 / 모두가 떠나기를 아쉬워한다. (계속)